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진줄 알았던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

by 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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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세상에서 내 이름 석 자가 지워진 것 같다는 서늘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지쳐 쓰러져 잠들기까지, 나의 하루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수많은 일과와 책임 속에서 정작 ‘나’라는 존재는 증발해 버린 듯했다. 40대가 되니, 내 이름은 ‘아버지’도 아닌, ‘남편’도 아닌, ‘팀장’도 아닌, 오롯한 ‘나’라는 고유명사로 불리거나 찾아지는 일이 기적처럼 드물어졌다. 내 이름은 그저 본인 인증을 위해 이름을 입력하는 순간 다시 기억해낼 뿐인 것처럼. 오늘도 무대 위에서 나의 배역에 최선을 다하고 땀 흘리며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지만, 분장을 지운 무대 뒤의 진짜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잊어버린 배우의 삶 같았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정작 내 삶의 운전석에 나는 없고 누군가 설정해 놓은 ‘자동 주행 모드’로만 달리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함과 공허함, 그리고 나를 잊어가는 듯한.. 가끔은 억울함도 느껴진다.


20대와 30대 시절, 나는 성취와 직장에서의 인정, 그리고 경제적 안정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며 그것들로 나의 자존감을 차곡차곡 채워왔다. 성장하는 자녀들을 바라보며 내 인생의 의미를 거기에서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40대라는 삶의 한가운데 다다르자, “과연 나는 지금 중요한 사람일까?”라는 서글픈 질문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가정에서는 두 아이의 ‘아빠’, 아내의 ‘남편’, 그리고 연로하신 부모님의 ‘아들’로서 짊어져야 할 거대한 책임과 기대가 어깨를 짓누른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직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는 다시 ‘팀장’이라는 빳빳한 직함을 달고, 끊임없이 성과를 증명해야 하며 위아래의 갈등을 조율해야 하는 건조한 ‘역할’로 변신한다. 그 숨 막히는 틈바구니 어디에도 ‘나’라는 개인의 이름이나, 내가 남몰래 품고 있던 작은 버킷리스트, 혹은 나만의 순수한 즐거움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은 잊어간 지 오래고, 삶을 지탱하는 기준은 어느새 돈과 책임감이라는 차가운 단어들로 굳어져 있었다. 거대한 역할들이 점차 덩치를 키워가며, 급기야 나라는 사람 자체를 통째로 집어삼킨 것이다.


커리어는 어느 정도 정점에 다다랐지만 동시에 ‘하향 안정감’이라는 이름의 쓸쓸한 정체를 맞이했고, 집에서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크고 작은 요구사항들을 처리하는 해결사가 되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무렵, 무심코 마주한 거울 속에는 생기 잃고 푸석한 얼굴을 한 낯선 중년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그 지친 눈빛이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중년 남성을 대상으로 한 독서치료 연구들을 살펴보면, 40대 남성들은 자존감 상실과 은퇴에 대한 불안을 겪으며 “삶이 끝없이 하강하는 것 같고,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것 같다”는 짙은 공허함을 토로한다고 한다. 가정과 직장에서 “이제 더 이상 내가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는 체념이 가슴을 칠 때, 우리는 정체성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상실감을 겪는다. 내가 그토록 아등바등 청춘을 바쳐 지켜온 세계 속에서, 정작 ‘나’의 지분은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다는 지독한 허무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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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깊고 어두운 우울의 바닥에서, 심리학과 철학은 내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의 논리를 건넨다. 심리학의 ‘이인증(Depersonalization)’ 증상을 겪는 이들은 자신이 낯설고 세상과 분리된 존재처럼 느껴진다고 고통을 호소하지만, 임상적으로 그들의 의식은 여전히 명료하게 존재하며 실제로 ‘사라진 자아’란 없다. 자존감 향상 연구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내 존재가 희미해진 것 같더라도, 그것은 자존감의 상실일 뿐 나라는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소멸된 것은 결코 아니라고 강조한다. 자존감은 무너진 그 자리에서 다시 회복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사라진 게 아니다. 단지 ‘역할’이라는 녀석들이 무대 앞으로 너무 거세게 나선 바람에, 그 거대한 그림자 뒤에 가려진 진짜 ‘나’가 잠시 숨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 명백한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나는 40대의 시계에 맞춰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아가는 고요한 의식을 시작했다. 40대 이후의 삶에서는 과거의 화려했던 성공이나 타인의 인정보다, 현재의 자아를 이해하고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나는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내 안으로 향하게 했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조용히 책상에 앉아 두꺼운 수험서를 펼쳐 들고 밑줄을 그으며 새로운 배움이 주는 짜릿한 감각을 다시 일깨운다. 니체의 책을 뒤적이며 타인의 짐을 짊어진 낙타의 삶에서 벗어나, 내 삶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법에 대해 묵묵히 질문을 던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가짜 욕망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잘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상 속 작은 기쁨은 무엇인지, 반대로 내가 참을 수 없이 싫어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하나씩 적어 내려가며 나라는 존재의 윤곽을 더듬는다. 나만의 감정과 생각을 에세이로 엮어내는 이 글쓰기의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텅 빈 껍데기가 아닌 온기 넘치는 진짜 나와 마주한다. 나에게 힘을 주는 이러한 작은 과정들을 통해, 영영 없어진 것만 같던 나라는 존재를 다락방에서 꺼내듯 서서히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놓고 있다.


40대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우리는 종종 길을 잃고 비틀거린다. 어깨에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 그저 주저앉고 싶을 때, 거울 속의 늙어가는 내가 한없이 낯설고 처량해 눈물 날 때, 우리는 내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나라는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단순히 아버지, 남편, 아들, 그리고 팀장이라는 거대한 역할의 외투들이 너무 무겁고 두꺼워져서, 나를 잠시 깊게 덮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그 무거운 외투의 단추를 가만히, 하나씩 풀어본다. 그 안에 오랜 시간 웅크리고 있던 여리고도 단단한 ‘나’를 다시 꺼내어 따뜻하게 마주한다. 삶의 거친 파도가 치고 역할의 이름표가 앞으로 수백 번 더 바뀌더라도,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고유하고 유일한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 그 길고 외로웠던 기다림 끝에 숨어 있던 나와 가슴 벅찬 악수를 나눈다. 결코 늦지 않았다. 우리의 진짜 단단해진 인생은, 나를 잃어버렸음을 아프게 깨달은 바로 그 순간부터 다시 눈부시게 시작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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