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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Feb 16. 2020

영어의 애매함 (하)

9. 상대방에 따른 높낮이 조절하기 

저(저) 번 글에 이어 쓰는 영어의 애매함에 대한 이야기. 사실 처음부터 이 영어의 애매한 높낮이를 눈치챈 건 아니었다. 초반에 나는 영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어떻게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학업을 끝내기 위해 감정은 묻어두고, 영어를 씀에 있어서 실수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매일을 보냈다. 그때의 내게 영어는 전공 공부와 더불어 같이 공부해야 하는 분야 중 하나였고, 당시 내 영어공부의 관심은 모두 어떻게 하면 더 영어를 잘 쓸 수 있을까 (Academic English - 논문을 써야 했으니까..), 어떻게 하면 차분히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학회나 세미나 등에서 발표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어떻게 하면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수업이나 학회에 참가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어야 했었으니까...), 그런 쪽으로 중심이 맞춰져 있었다. 그렇게 일방향의 영어에 익숙해지고 이만하면 내 영어실력도 나쁘진 않다,라고 생각했을 때쯤 취업준비를 하면서 여러 번의 실패를 맛본 뒤, 사회생활에 필요한 영어는 또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렇게 영국에서 어찌어찌 사회초년생의 시기를 보내고, 여러 분야의 직정 문화도 체험해보고, 다른 지역으로 여러 번 이사도 하면서 서서히 영국 생활에서의 짬밥이 쌓이고, 그러다 어느 순간 사회초년생들을 내가 만나야 하는 입장에 처하고 보니 가끔 나도 모르게 뭔가 위화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러니까 문장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문법이 이상한 것도 아닌데, 뭔가 묘하게 어긋난, 그래서 가끔은 묘하게 불쾌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말들이 있는 거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왜 그런 것들이 그런 위화감을 느끼게 했는지 대략 형태가 잡히게 되었고, 그러다 지금은 위계질서가 분명한 공무원 사회에 속하다 보니 이젠 그런 것들을 구분해서 상황 따라 조절하는 것에 좀 더 익숙해졌을 뿐이다. 물론 그래 봐야 개인의 경험이지만... ^^


그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가끔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말들을 얘기하자면... 영어에도 상대방의 나이/직급 등에 따라 높낮이를 조절해서 써야 할 말이나 접근방식들이 있긴 하다. 


예를 들면... 내가 무언가를 '요구'해야 할 상황에 있는 경우. 아무리 그 요구사항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초면인 관계이거나, 상대방이 나보다 직위가 높은 위치에 있다면, "I want you to..."같은 말은 살짝 무례하게 들린다. 그리고 이걸 "I would like you to"하고 바꾼다 하더라도 느껴지는 무례함의 강도는 비슷하다. 왜냐면 글 간 의미상 상대방에게 '이걸 해달라'하고 명령하는 걸로 느껴지기 때문에;; 초반에 쓰는 건 아무래도 별로고, 업무상에서 이렇게 써도 그나마 괜찮은 관계는 상대방이 나보다 직위가 낮을 때, 업무 지시할 때 정도랄까... (예, I would like you to send an email to XX by tomorrow morning, is it ok?) 


무언가 제안을 할 때도 비슷하다. 역시 상하관계에 있는데,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You should....'라는 말을 쓰면 무례하게 느껴진다. 역시 명령한다고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럴 때는 상대방이, 내가 뭘 하든 그건 네가 뭐라고 할 종류의 것이 아니다, 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심하는 게 좋다. 물론 어떤 사람은 'You may want to consider...'정도는 적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이마저도 무례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말도 나보다 직위가 낮거나 친한 관계에서 쓰는 건 괜찮게 받아들여진다. 그래도 should는 강하니, 가능하다면 주어를 일 자체로 만드는 게 더 안전하긴 하지만... (e.g. you should finish this report by tomorrow > This report should be finished by tomorrow. Can you do it please?) 


그럼 나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한테는 요구도 말고 제안도 하지 말라는 소리냐 하면 그건 아니다. 당연히 해야 한다. 다만 그게 어떤 단어를 쓰거나 문장을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에 말한 것처럼 그 사람의 성향 파악이 중요하단 거다. 예를 들면, 요구할 일이 있으면 일단 상황설명을 해야 하고, 나는 당신이 이걸 하길 원한다, 라는 것보다, "I woud appreciate it if you could help me with...."같은 식으로 당신이 내게 이런 종류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하겠다, 뭐 그런 식으로 가는 거다. 제안을 할 때도 비슷하게 그 사람 성향 따라, 직위 따라 완급을 조절해서 가능하다면 사람이 주어로 들어가는 건 피하면서 'wouldn't it be better...' 하는 식으로 돌아가거나 차라리 스스로를 주어로 두고, 'I woner..'같은 식으로 물어보는 척하며 간접적으로 제안하는 게 안전하기도 하고... 


그 외,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할 때 쓰는 말도 직위에 따라 살짝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직역해서 알고 있는 'I do not agree with you/what you said'같은 건 보통 비슷한 직위의 사람들 사이에서, 혹은 직위 상관없이 토론을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쓸 수 있지만 (그래도 저렇게 대놓고 'I don't agree with you'라고 말하기보다는, 보다 순화해서 'I understand your point, but I'm not sure if I agree with what you said' -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동의한다고는 할 수 없어 - 정도로 얘기하긴 하지만...), 나와 직위가 다른 수직관계에서는 잘 안 쓰는 게 좋다. 당연히 나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대놓고 딴지 거는 것처럼 들리니 피하는 게 좋고... 나보다 직위가 낮은 사람이라도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게 좋고...  이럴 때 개인적으로 가장 잘 쓰는 방법은... 나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I see your point, but I am slightly concerned...' (당신 말의 요점을 이해하긴 하지만, 그럴 경우 이런저런 경우의 수가 발생하지 않을까 좀 염려스럽네요) 하는 식으로 말을 돌려 말하고 (그러니까 지금 이 방식 그대로 하면 이런 위험 요소들이 있을 텐데, 그리고 그 책임도 너에게 갈 텐데 그래도 괜찮겠냐, 하는 의미를 담고서 하는 말일 때가 많다. 왜냐면 직위가 높기 때문에 어차피 결정권도 그 사람에게 있으니 상대방이 그래도 밀고 나가겠다면 결정권이 없는 입장에서는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나보다 직위가 낮은 사람에게는, 'I see your point, but I wonder if you also considered...' (당신 말의 요점을 이해하긴 하지만, 혹시 이런 쪽으로는 생각을 해봤는지..) 하는 식으로 역시나 돌려 말하지만, 그래도 방향을 제시하거나 제안하는 쪽으로 말을 한다 (앞서 말했듯이 나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이 먼저 의견을 묻지도 않았는데 대놓고 제안부터 하면, 역시나 무례하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피하는 게 나은 반면, 직위가 낮은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행동의 책임을 내가 지게 될 때도 있고, 결정권도 내게 있는 경우가 많으니, 가능하면 내가 뭘 원하는지 상대방에게 잘 전달해서 조절하는 게 나으니까...).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뭐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이니, 알아서 걸러들으시면 될 것 같네요;; 아무래도 사람 따라 성향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게 언어고 말하는 방식이니까요. 그런데 하나 분명한 건 언어를 떠나서 적당한 선을 맞춰야 하는 건 직장인들의 공통점이 아닐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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