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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Feb 10. 2020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위험하게 느껴질 때

8. 그래도 살아남기

얼마 전에 의사인 영국인 친구와 같이 운동을 하고 Steam room에 앉아 있는데 친구가 말했다. 요즘 병원 (정확히 말하자면 General Practice.  의료진료가 무료인 영국에서는 일반 진료는 대부분 여기서 하고, 복잡한 테스트가 필요하거나 수술을 해야 하거나 응급진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병원 - hospital'로 간다)에 오는 사람들 중 '얼마 전에 중국집 (Chinese takeaway)에서 저녁을 주문해 먹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는 거 아니냐'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그때는 그 말을 하는 친구도, 나도 어이없어하며 넘어갔는데... 주말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를 했는데, 첫 질문이 "너 괜찮니?"였다. 요즘 안 그래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중국인 기피현상이 만연하다던데, 외국에 살고 있는 너는 그런 차별을 받지 않고 괜찮으냐, 하고 물으시는 거였다... 


안 그래도 요즘 아주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긴 했다. 아이들 Half term(학기 중 방학 - 보통 1주일)이 다가오는데 3일간 휴가를 이미 쓰기로 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 다녀올까 했다가, 문득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아무래도 유명한 도시로 가면 관광객은 물론 사람들이 많으니 안 가는 게 좋겠지... 그랬다가 그럼 사람들이 적은 한적한 산이나 바다 그런 쪽으로 가볼까, 했는데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괜히 이방인도 적은 외진 곳에 갔다가 오해받아서 기분 상할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드니, 괜히 그런 스트레스받아가며 갈 필요 있나 싶어 마음을 또 바꿨다가... 차라리 비행기를 타고 유럽 어디로 갈까 했는데, 혹시 공항에서 동양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복잡한 상황에 휘말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또 드는 거다...


그간 영국에 살면서 이런저런 차별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집에서 나가기 좀 걱정된다,라고 느꼈던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Brexit 결과나 나온 금요일 (referendum이 목요일에 있었고, 금요일 새벽에 결과가 나왔다). 결과가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FB에 올라오기 시작한 글들이었다. 런던 금융권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친구는 출근길에 지나가는 차로부터 '꺼져라'는 소리를 들었고, 영국인과 결혼한 독일인 친구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했다가 늘 하는 대로 독일어를 썼다가 지나가는 이들에게 비슷한 소릴 들었다고 했다. 그 외에 친구들이 직접 겪은 이야기이거나 공유된 수많은 이야기들... 다들 국적을 불문하고 피부색이 다르거나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당한 이야기 들이였다. 심지어 같은 동네에 사는 영국인이고 이 곳에서 산지 이미 몇 년이 지난 친구도 자신이 인도계라는 이유만으로 아침에 슈퍼마켓에 갔다가 비슷한 소릴 들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이 브렉시트 결과가 나온 지 몇 시간 만에 주르륵 들려오기 시작하니... 충격은 실망과 분노로 변했고, 그 후에는 두려움이 되었다. 그때가 복직 전이였고, 둘째가 두 돌이 안된 시기였는데... 나는 이방인의 수가 현저히 적은 이 지역에서 몇 안 되는 동양인이었고 (사실 이곳에서 내가 만난 동양인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고, 심지어 중앙아시아계 영국인도 별로 없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집에서든 밖에서든 한국말을 썼기 때문에, 그 타깃이 된다는 모든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 거기다 어린아이들까지 있으니 - 처음으로 두려운 마음이 들어 밖에 나가기 주저되었다. 점심시간쯤에 전화 온 남편에게 그 소리를 하니, 남편은 내가 걱정이 너무 많은 거라고, 그런 생각하지 말라며 아무도 신경 안 쓸 거라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무시하면 되는 거라고 말했지만, 난 도리어 '백인인 네가 뭘 알아'하고 그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지금 상황에서도 영국인인 친구들은 내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건 무지한 사람들의 생각이니 그런 것 때문에 너무 영향받지 말아라'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어, 그건 네 상황이 아니니 할 수 있는 말이고..'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 맞는 말이다. 무지한 사람들이 뭐라 지껄이고 하는 행동들에 내가 굳이 내 생활을 방해받을 건 없지. 그런데 말이야, 가끔은 그 무지한 이들의 말도 안 된다고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실제로 내게 해를 입힐 수도 있으니 그렇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거든. 



타지에 사는 겉모습이 다른 이방인이라는 건 그런 거다. 가끔은 이해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체 오해받을 수 있고, 차별받을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눈에 띄는 존재, 그리고 이방인이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 



뭐 그렇다고 우울해 할 수만은 없지. 삶은 살라고 있는 거니까.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남으려면... 잘 섞어 들어가야 한다. 내 모습만으로는 변호받지 못할지 모르지만, 내 변호인, 보증인이 될 현지인을 많이 알아두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내 편을 많이 만들어 두려고 하면 그만큼 그들을 이해해야 하고... 좀 잔인한 말일 수도 있는데... 남의 나라 가서 어떻게든 먹고살려면 '왜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하고 투정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들의 이해가 필요한 건 나지, 그들은 나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오늘도 응원을 보내고, 현지에서 이방인을 마주치게 될 이들에게는 잠깐이라도 너그러움이 허락되길 바랍니다 


(원래 저번 글과 연결된 글을 올릴 생각이었는데,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져서 이것부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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