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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Feb 03. 2020

영어의 애매함 (상)

7. 영어는 수평적 언어가 아니다 

영어를 한창 배울 때 한국말과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건 영어에는 존댓말, 반말이 없다는 거였다. 거기다가 나이가 많든 직위가 높든 일단 상대방을 지칭할 때 'you'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걸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상사에게든 부모에게든 '너, 당신'이라고 부르는 셈이니 어떻게 보면 건방지다고도, 어떻게 보면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가 어디선가 읽었던 기사에서는 한국 기업에서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 부서 사람 모두 영어 이름을 만들어 부르기로 했다는 것도 같은데.... 


영국에서의 내 직장생활은 대부분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오피스 생활이다. 박사과정 때야 논문이니 학회지니 워낙 많이 읽고 쓰는 게 일상이었고, 컨설팅 회사에서 일할 때는 읽고 쓰기보다 읽고 분석하는 게 주된 일이라 숫자들을 접할 때가 더 많았고.. 대학에서 일할 때는 박사 생활과 비슷하지만 강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강의 자료를 만드는 일, 그리고 학과장을 맡기도 했기 때문에 수시로 날아오는 학생들의 질문들과 대학 곳곳에서 날아오는 학과 과정 관련된 이메일들을 처리하고 강의 아니면 회의에 들어가는 것들이 주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영국 중앙정부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국의 공무원 체계는 모르니 그냥 영국 공무원 구조만 따지자면 내 밑으로 직급이 5개가 있고, 내 직급은 Senior Leadership Team에 속하기 때문에, 하루의 대부분을 이런저런 회의에 들어가느라 보내거나, 이메일을 처리하고, 내가 담당하고 있는 Branch의 업무 처리, 관리 등등을 하느라 보내고 있다. 만나는 사람의 수는 대학에서 일할 때가 훨씬 많았지만, 일단 관계가 일방향일 때가 많았는데 (학생들이 대부분이거나, 대학 내에서도 행정처리와 관련된 사람들을 대할 때가 많았으니까... 그러니까 그들이 내게 뭘 묻는 경우), 지금 하는 일은 쌍방향은 물론 8차선에서 달리는 것 마냥 아주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대한다. 예를 들어, 내가 속한 Division 내에는 소수이긴 해도 나보다 직급이 높거나 같은 사람이 있고, 다수의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바로 내 소속인 사람들이 있고, 다른 Division 내의 다양한 직급의 사람들, 거기다 업무의 성격상 다른 정부기관을 포함한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의 대표들까지 업무로 만나는 사람들에 포함된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당연하게도 영국인이다 (완전 영국인들 소굴(!)에 들어온 기분;;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그들과 소통할 때 적당한 '선'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걸 계속하다 보면 영어가 그다지 수평적인 언어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한국말의 존댓말과 반말이 같은 내용이라도 상대방에 따라 말하거나 쓰는 '방식'을 달라지게 한다면, 영어에도 그런 것들이 존재하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누군가는 당신에게 태클을 걸거나 아니면 뒤에서 '무례하다'는 욕을 들을 거란 것도... 


다만 문제는 영어에는 한국말과 같은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특히 한국말처럼 호칭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성향과 직위 등에 따라 대화의 높낮이(!) 선을 잘 잡아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까다롭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할 때나 문의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야 할 경우에는 대체로 매뉴얼이란 게 정해져 있어서 상대방이 누가 되든 상관없이 비슷한 패턴을 따라가면 되지만... 지속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업무 관련된 관계에서는 높낮이 선을 잘 잡지 못하면 직장생활이 피곤해짐은 물론, 자칫하면 내 업무성과 평가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직장에서의 관계를 예로 들자면.... 적정선을 정하기 가장 애매하고 어려운 상대는 '업무관계로 중요하지만 자주 보는 건 아닌, 아직 성향 파악도 안 된,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다. 반대로 가장 쉬운 관계는 성향 파악이 된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 (성향을 파악했기 때문에 그 선에 맞추고 업무상에서의 완급만 조절하면 된다), 그다음은 성향 파악이 된 나와 직급이 같거나, 높더라도 업무상 아주 자주 보게 되는 사람 (그러면 혹시 선을 넘나들게 되어도 대략 커버가 되거나 만회할 기회가 생긴다), 그다음은 성향 파악은 안 되었지만 나와 직급이 비슷한 사람 (직급이 비슷하면 어차피 담당해야 할 업무의 성격이 비슷하거나 만나게 될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국 위의 경우로 흘러가게 된다), 그다음은 성향 파악이 아직 안 된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 (내가 업무를 지시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선을 잘 파악하지 못하면 내가 설사 그 선을 넘었다고 해도 상대방이 내게 그 사실을 말할 확률이 낮아서,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 그러니 빨리 파악하는 게 최선!), 그리고 그다음은 성향 파악은 되었지만 나와 안 맞는,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업무상 부딪쳐야 할 일이 있는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그러면 불가피하게 그 사람의 업무방식이나 지시 등에 대해 딴지를 걸어야 할 상황이 생기는 데... 선을 맞추면서 어떻게 내가 원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이냐, 가 문제가 된다...)이다. 


그럼 '업무관계로 중요하지만, 자주 보는 것도 아닌, 아직 성향 파악도 안 된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왜 가장 어렵냐면.... 성향 파악이 아직 안 되었기 때문에 글 간 의미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만약 내가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 업무가 내려올 때 그걸 반박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느 선에 맞춰야 하는지 짐작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을 제대로 못 맞출 확률도 높고, 선을 못 맞췄을 때의 위험도도 크니... 이런 이메일 같은 걸 받으면 최소 하루는 꼬박 고민하게 된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성향을 아는 사람의 조언을 구하거나 아니면 아예 얼굴을 보고 상대방 반응 따라 선을 조절해 가며 말하는 게 최곤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 같은 경우 워낙 바쁘거나 회의 스케줄이 많아 일대 일 만남을 갖기도 어렵고 (그리고 그 사람의 PA - personal assistant를 통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내가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나와 친밀도가 아주 높지 않다면 마치 그 사람의 뒤를 캔다거나, 그 사람 험담을 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으니 이것 역시 아주 주의해야 한다는 거지만... ㅜ_ㅜ 


그럼 도대체 어떻게 선을 맞추는 거냐, 하고 묻는다면.... 이걸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영어가 가진 애매함이라면 애매함이다..... 그리고 이건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치의 문제다. 한국인 사회초년생이 한국말을 몰라서 직장생활 초기에 어떻게 보고서를 쓰고 업무 관련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 배우는 게 아닌 것처럼... 그리고 그들도 직장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의 적정선을 유지해야 하는지, 호칭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존대를 해야 하는지 배우는 것처럼, 영국에서도 이런 건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도 굳이 어떤 식으로 선을 찾는 건지 예를 들라고 한다면.... 글이 너무 길어졌으니 다음 기회에!!!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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