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토리 Jan 29. 2020

국제연애도 흔한 연애 중 하나다

6. 국경을 초월했다고 유달리 특별한 게 아니라

국제 연애/결혼을 했기 때문에 가끔 의도치 않게 국제연애와 관련된 연애 상담(!)을 하게 될 때가 종종 있는데... 가장 많이 받는 질문들은 '이건 썸인가요?' 하는 연애 출발 신호인지 아닌지를 묻는 질문, 혹은 '헤어져야 할까요'하는 연애 결말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그리고 연애 결말과 관련해서 내가 개인적으로 보기에 이별의 발목을 가장 많이 잡고 있는 건 저 '국제'연애에 대한 부분이었다 - 세상의 반을 돌아 운명처럼 만나 사랑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헤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게 바로 내가 내 첫 국제 연애 상대였던 영국인 남자 친구와 오랫동안 헤어지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계속 남자 친구가 있었고, 그나마 솔로였던 시기가 최대 3개월을 못 넘길 만큼 연애는 꽤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을 넘긴 남자 친구가 없었던 이유는 내가 '헤어짐'에 있어서는 나름 칼 같은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학은 달랐지만 늘 자기 수업이 끝나면 내가 다니던 대학으로 와 같이 시간을 보내던 첫 번째 남자 친구는 언제부터인가 '방학 후 살을 빼고 엄청 예뻐져서 나타난 같은 학과의 누구'가 대화에 스쳐 지나가듯 등장한 이후부터 서서히 연락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내가 연락을 하지 않으면 일주일이 되도록 연락이 없었고, 그렇게 내가 먼저 이별을 고하면서 끝나버린 첫 연애 (물론 그는 그 이후 그 '누구'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 이후의 연애에서도 결말을 알리는 종소리는 어느 순간 들려왔고, 그 종소리가 들리면 난 찬찬히 감정의 가방을 싸서 연애의 기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고, 적당한 때를 맞춰 주저 없이 기차에서 내렸다. 그랬던 내가 종소리가 진작에 들렸음에도 감정의 가방을 꺼냈다가 넣었다가 갈팡질팡하며 내리지 못했던 적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영국인 남자 친구와의 첫 '국제연애' 기차에서였다. 그리고 내가 결정을 못 내렸던 이유는 그 이별의 종소리와 더불어 어디선가 확성기로 '진짜 헤어질 거야?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데!' 하며 종소리를 자꾸 흐렸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말한 적 있듯이 난 영국 이전에 다른 나라를 가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원어민 영어 학원 같은 곳을 다녀본 적도 없어서 영국에 나오기 전까지 내게 외국인은 정말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영국에 처음 나와서도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낯선 모습들이라 정말 내가 그들 중 누군가와 '연애'를 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으니까. 그랬던 내가 다갈색의 눈과 머리색을 가진 같은 박사과정의 영국인 남자에게 마음이 끌렸고,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기적 같은 경험을 통해 말로만 듣던 '국제연애'를 하게 되었으니 그 '특수성'에 설렘의 차원이 예전 연애와는 전혀 다른 수준이었다! 그 친구는 내가 처음으로 한국에 데려간 외국인 남자였고,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소개한 남자 친구이기도 했으니 (거의 '외국 손님 대접'의 느낌이 더 강하긴 했지만;;), 나는 실제로 그와 미래를 진지하게 약속한 것도 아니면서, 으레 그와 '결혼'할 것이라는 혼자만의 암묵적 다짐(?) 혹은 착각(!)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기차 정거장을 수차례 놓친 후에 막상 내리고 나니 그제야 국제연애건 뭐건 그냥 사람과 사람이 만나 연애하는 건데 참 내가 의미부여도 거창하게 했구나, 하는 걸 깨달았지만... 


누군가와 연애를 할 때 이별을 생각하지 못하면 그때부터 그 관계는 한쪽으로 치우쳐 버린다. 그렇다고 무조건 헤어져라 하는 소린 아니지만, 가끔 우리는 저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것에 실제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닌가 싶어 하는 소리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가 타인으로부터든 매체를 통해서든 듣게 되는 모든 국제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다들 달달한 해피엔딩 아녔던가. 우연처럼 시작했지만, 마치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여기까지 왔나 보다'하는 문구가 적힌 로맨스 영화 찍듯, 언어도 문화도 자라온 환경도 다른데 그 모든 장애물들에도 불구하고! 다들 어쩌면 저렇게 잘 맞는지, 어쩌면 그렇게 달달하게 연애를 하는지... 그리고 늘 그 종착지는 당연한 것 마냥 예쁜 자식들이 태어날 게 뻔한 알콩달콩한 결혼생활로 이어지는지...

반면에 우리는 끝이 나버린 국제연애에 대해 잘 듣지 못한다. 아니, 내가 그 영국인과 연애하고 있을 때 만났던 교환학생으로 온 한국 남자분이 내게 조언인 양 한 말처럼 '헤어지면 한국 돌아가서 외국 사람 사귄 적 없었다고' (해야) 하기 때문인가... 


어쨌건 그런 개인적이든 사회적 부담감이든 그런 이유들로 연애의 결말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뱅글뱅글 돌고 있는 기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는 분들을 여럿 봤으니 굳이 꺼내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국제연애를 하고 있는 당신은 당신의 남자/여자 친구와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해서 맺어질 운명이기에' 만난 게 아니라, 호감이 가서 좋아하게 된 그 사람이 어쩌다 보니 나와 자란 환경도, 언어도, 문화도, 생김새도 다른 외국인이었을 뿐인 거다 (만약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연애를 시작하게 된 사람이 있다면... 뭐, 말하지 말자. 그게 진짜 연애인지 아닌지는 당신이 더 잘 알 테니...)  그리고 그 연애는, 당신이 사랑에 빠지게 된 상대방이 10년 넘게 알고 지낸 초등학교 동창이라든지, 늘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마주치던 버스정류장의 그 사람이었다, 하는 것처럼 사랑이기 때문에 특별하고 운명적인 것이지, 딱히 '국제'라는 이름이 붙어서 더 특별한 건 아니라고...  


그리고 사실 연애 관계에 있어서 굳이 특별하다거나 운명이라거나 하는 의미부여를 한다는 걸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그만큼 당신이 그 관계를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리고 그 마음이 연애의 결말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음에도 계속된다면... 아마도 당신은 기차에서 차마 내리지 못한 체 스스로를 연료 삼아 달리거나, 아니면 어느 순간 준비도 없이 기차에서 내던져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영국에서 궁핍하게(!) 살아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