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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Mar 02. 2020

국제연애: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

11. 그리고 당신도 줘봤을 시선 

한국에서도 가보지 못했던 클럽을 영국에서 어학연수 때 처음으로 가봤다. 어학연수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있었던 행사라서 대학 새내기 때 개강총회 가는 기분으로 갔었다. 조명 때문인지 약간 안개 낀 뜻 뿌연 어두운 공간에 돌아가는 파티볼 따라 여러 색이 음악 따라 사람 따라 움직이던 곳. 아직 밤이라기 보단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라 그런지 처음 들어가자 사람들이 그다지 많진 않았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몰라 그나마 같은 반이라 얼굴이 익숙한 일본 사람 몇몇이 몰려있는 곳에 어물쩍 끼어들었다. 그리고 이미 어학원에 자리 잡고 있던 눈인사만 하던 몇몇 한국인들이 합석하면서 그룹인원이 많아지니 그제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어색함에서 벗어나 좀 더 여유롭게 클럽 안을 볼 수 있었다. 댄스 플로어는 아직 그렇게 붐비지 않았고, 그래서 신기한 마음에 안을 둘러보고 있는데 그때 옆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쟤 장난 아니지? 한국 사람이랑은 절대 안 어울리고 외국인이랑만 사귄대" 

옆을 돌아보니 어학원에 오래 있어 영어 좀 한다는 한국 사람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누굴 지칭하는지 몰라 "네?"하고 반문하니 턱으로 입구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정말 클럽에 온 듯 화려한 의상의 단발머리 동양 여자가 있었는데, 한쪽에 몰려있던 남미 쪽 남자 학생들과 자연스레 볼에 키스하며 인사하고 있었다. 클럽이고 뭐고 간에 도대체 무슨 옷을 입어야 하는지도 몰라 가지고 간 옷들 중 그나마 약간의 반짝이가 묻어있는 긴팔 티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구석에 서있던 내게 그녀 모습은 마치 티브이 촬영장을 직접 보는 듯 신기하고 동떨어진 모습이라, 그곳에 있었던 내내 사실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마 그때쯤이었을 거다. 나와 마치 비슷한 듯 다른 듯 보이는데 외국인들과 친한 그녀들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그 이후 어학연수 기간 내내 동양인이 아닌 외국인과 같이 있는 동양 여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처음에는 신기함, 그리고 저들은 어쩌다 그렇게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었을까 하는 호기심, 그러다가 저 사람은 도대체 뭐가 그렇게 매력적이고 다른 걸까 하는 질투 섞인 궁금함. 그리고 그때는 나도 몰랐다, 내가 보내는 시선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그리고 그 시선을 받는 기분이 어떤지는 몇 년이 지나 나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그 '동양 여자'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 시선은 굳이 한국이 아니라도 어디서든 받을 수 있었다. 예전 영국인 남자 친구와 케임브리지 거리를 걸어가다가 본 한 무리의 중국인 관광객들. 그 앞을 지나갈 때 뚜렷이 느꼈던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 지금의 남편과 같이 갔던 스페인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아주 꾸준히 나를 쫒아오던 공원에 앉아있던 스페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시선. 심지어 어디에서 나처럼 외국인과 함께인 다른 동양 여자를 만나면 우리는 아무리 아닌 척 해도 결국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서로 가능하면 들키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계속 서로를 훔쳐보고 있었으니까… 이걸 굳이 비유하자면…. 나와 비슷해 보이는 옷을 입은 저 사람의 옷이 진짜 나와 비슷한 건지 자꾸 확인하게 되는 심리 같은 거랄까… 


그렇게 관찰하는 시선이 있다면, 날카롭게 검열하는 듯한 시선이 있다. 그리고 가끔은 그 날카로운 눈빛이 말이 되어 날아오기도 하고… 그 말은 때로는 호기심을 담뿍 담은, 어디서 만났는지, 상대방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사귀니 좋은지(?!), 등등의 아주 사적인 질문이기도 했고 (내 곁에 있는 남자 친구가 한국인이었다면 스쳐 지나가는  사이에 절대 묻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그런 질문들), 대놓고 던지는 포장하지도 않은 무례함 같은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던져지는 시선들은 종종 보이지 않는 마이크를 동반하기도 했는데..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마치 생중계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내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말투나 억양이 세련되었는지, 원어민 정도의 수준인지 아닌지, 그런 것들을 판단받는 심사대에 오른 기분. 


그리고 내가 국제 연애를 하는 게 알려지면 어떤 이들은 또 궁금해했다. 내가 잠깐의 썸을 타면서 외국인만 좋아하는 Xx녀 같은 존재인지, 아니면 결혼이 약속된 '허가받은'(!)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인지.. (내가 썸을 타든 동거를 하든 약혼을 하든 뭔 상관이야...) 마치 결혼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국제연애가 용납되지 못하는 것 마냥 (결혼 약속이 국제연애라는 '죄'의 면죄부도 아니고;;)… 가끔 국제연애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온라인상에서 공유하는 분들이 받는 악플이나 그에 대항하는 글들이, "이분들 부모님들 동의받고 동거하는 거예요"라거나, "이분들 결혼도 약속하신 분들이에요"하는 것처럼… 


전에 썼던 것처럼 국제연애도 그냥 흔한 연애의 한 모양일 뿐이다. 장거리 연애가 힘든 것처럼, 같은 말을 쓰는 한국인들끼리도 가끔 대화가 안 통하거나 자라온 환경이 달라 부딪치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 잘만 하면서 알콩달콩 사는 커플이 있는 것처럼, 언어가 다르고 국적이 달라도 알콩달콩 사는 커플이 있는 거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사실이고..) 


번외로… 결혼을 해서 막상 아이를 낳고 나면 시선이 없어지거나 달라지느냐... 그땐 시선이 아이에게 옮겨간다;; 예를 들어, 당신이 외국인인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있다면, 시선은 일단 아이에게 모인다. 혼혈은 다 예쁘다던데, 저 애도 그렇게 예쁜가. 그리고 만약 당신 혼자 아이를 데리고 있다면, 그리고 아이가 토종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았다면, 그때는 사람들 머릿속에 당신이 겪었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물음표들이 생겨나는 걸 볼 수 있을 거다. 어떤 이들은 물음표만 간직한 체 당신과 스쳐 지나갈지 모르고, 또 어떤 이들은 물음표를 입밖에 내보낼지도 모른다. "아이 아빠가 외국인이에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혹은 그냥 내던지는 무례한 말들, "한국애가 아니네.", "애는 진짜 예쁘네", "혼혈은 다 예쁘다던데, 얘는 아니네" 등등. 


그럼 아이가 없이 외국인 남편과만 같이 나갈 때는 어떠냐고요? 여기서 도돌이표 찍고 위에 쓴 글로 다시 올라가면 된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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