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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Oct 26. 2021

팔이 안으로 굽는 게 무조건 좋은 걸까

A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영국 공무원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과 직급구조가 다르니 쉽게 '부장'쯤 된다고 생각하자. 


A 부장은 덩치가 크고, 강한 악센트를 가지고 있으며, 담배를 피우고, 맥주 파인트를 수없이 들이키고, 입이 거친, 어떻게 보면 영국 어디 펍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전형적인 마초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다. 


그는 친한 남자 동료들을 'mate'라고 부르며 공적인 자리에서도 스스럼없이 비속어를 섞어 무례해 보일 수도 있는 농담을 하는 걸 친근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다. 출장길에 맥XX드에 들려 빅맥을 사서 먹는 걸 전통이라 부르고, 공식 일정이 없음에도 이왕 출장을 갔으니 하루 정도 더 쉬다가 오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근처에 사는 남자의 부하직원들을 불러다가 저녁에 술을 마시고, 다음날 느지막이 사무실에 나타나서는 'F..ing tired'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래 놓고 일이 많네, 힘이 드네, 하면서 잡음을 내는 걸로도 유명한데, well-being, metal health, work life balance 같은 걸 (표면적이라 할지라도) 중시하는 영국 공무원 조직의 특성을 교묘히 이용해서, 누가 그의 행동에 이의를 가하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줘서 내 정신 건강이 안 좋다' 등등의 말로 도리어 공격을 하는 건 물론, 필요하다면 'stress at work'라는 이유로 갑자기 병가까지 낼 용기(!)와 과감한 행동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지만 이상하게 그의 부원들 사이에서 그의 평가는 꽤 후한 편이다. 특히 그의 바로 밑에 일하는 팀장들은 대부분 그를 추켜 세우곤 하는데, 이유를 들어보자면 말 그대로 그가 그의 팀원들에게만은 아주 잘하기 때문이다. 


일단 그는 채용할 때 자신의 사람이 될 법한 이들을 뽑는다. 특히 그의 팀장들은 대부분 그의 입김으로 승진해서 현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과반수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들은 모두 남자다.


거기다 조직에는 Reward and recognition란 제도가 있는데, 따로 보너스가 나오지 않는 공무원 조직이다 보니 작게나마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금액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보통 50파운드 정도 되는 peer to peer는 따로 승인을 받을 필요 없이 라인 매니저의 동의만 있으면 자동 수락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A는 거의 돌림노래 하는 수준으로 이걸 자신의 팀장들에게 돌린다. 

그럼 팀장들도 A를 추천하고, 그 영향으로 팀장들도 자기가 맘에 드는 팀원들을 추천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문화가 형성되는 거다. 


그런 훈훈한 문화가 뭐가 문제가 되냐고? 그 돈을 그 부서만 쓰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그들만의 훈훈한 문화가 어떻게 알려졌냐면, 이 부서 혼자 이 제도에 할당된 전체 예산의 60% 이상을 썼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통계를 통해 그 부서의 소수가 그 혜택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도 드러났고. 


그럼 경고를 먹지 않느냐고? 당연히 먹었다. 그런데 A는 억울하다는 듯 그렇게 답했다. 


내 부서 사람들의 훌륭한 일처리도, 그들이 보인 성과도 제대로 보상하지 못하게 하는 조직이라며. 다른 이들을 비난했다. 


그는 목소리를 크게 높여 자신이 주체하는 내부 회의에서 자신이 얼마나 그들을 아끼는지, 그런데 이 조직이 우리를 시샘한다며, 너희의 성과를 무시하고 있다고 떠들면서 부서와 조직 간을 'them vs us'로 나눠버렸다. 


A의 부서와 일을 할 때도 이런 현상은 아주 빈번히 일어난다. A는 무조건 자기 부서의 편을 드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부원/팀장들도 뭔가 일이 좀 안 풀린다 싶으면 A를 끌어들인다. 그러면 A는 득달같이 튀어나와 자신의 사람들을 보호하며 상대편을 비난한다. 


그게 어떤 꼴이냐면, 동네 놀이터 같은 풍경이다. 두 아이가 같이 놀다가 사소하게 다투기 시작하면 한 아이는 쪼르르 자기 아빠에게 달려간다.


"아빠! 쟤가 내 말 안 들어요, 혼내 주세요!"


그러면 그 아빠는 또 당장 소매를 걷어붙이고 쿵쾅거리며 달려오는 거다. 


"누구야! 누가 우리 애한테 뭐라 했어?!"하고 크게 소리치며.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날까. 별다른 빽이 없는 상대방 아이는 거기서 겁을 내며 입을 닫는다. 그래도 억울하다 싶은 아이는 어쩌면 자기 부모에게 일러바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부모들이 다들 A 같지는 않아서, 그 아이더러 그냥 참고 넘어가라고 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 부모는 마지못해 놀이터로 끌려 나올지도 모르지. 그랬다가 A의 거친 언행에 부모가 주춤거리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그는 더 기고만장하게 떠든다. 이젠 그 부모한테까지 소릴 높이면서. 


이 난장판은 그가 우쭐하며 덩달아 기가 산 그의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며 끝이 나거나, A까지 눌러버릴 만큼 권력이 있거나 기가 센 부모가 나타나야 끝이 난다. 


그러다 보니 솔직히 부모 된 입장에서는 가능하다면 그의 부서와 연관되고 싶지 않다. 그와 똑같은 인간이 되고 싶진 않으니 부원들 앞에서 대놓고 그의 행태를 비난하거나 그의 부원들까지 싸잡아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일 때문에 엮여야 할 일이 생기면 뭘 시작하기도 전에 속으로 한숨부터 짓게 되기도 하고.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느냐. 


얼마 전에 있었던 간부회의에서 staff retention (직원 유지?)에 대한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는데, 그가 아주 당당하게 자기 부서 직원들은 모두 행복하다며 대놓고 잘난 척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몇몇은 시선을 피했고, 몇몇은 눈을 굴렸으며, 몇몇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의 대장이 아주 눈치가 없는 건 아닌지, 


"당신 부서의 문제는 부서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부서와의 균형과 조화에 있다"


라고 일침을 날려서 사이다를 먹여주긴 했지만. 


물론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우리는 알고 있었다. 자기보다 높은 직급의 사람 앞에서는 무안한 표정으로 얌전히 입을 닫으며, '알았다'라고 답했지만, 그는 분명 다음 내부 회의 때 또 자기 부원과 팀장들에게 대장의 욕을 할 거란 걸. 


솔직히 그 사람에게는 리더십에 관한 책이 아니라 육아 지침서를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다. 


네 자식만 오냐오냐 해서 키우면 그 아이가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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