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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Jan 17. 2022

가끔 불안해진다

누군가 내게 굳이 인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난 아마도 '인생은 균형대 같은 것' 혹은 'Plus minus zero'같은 거라고 대답할 거다. 즉,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생기는, 그래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균형이 어느 정도 맞춰진 상태.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면에는 어린 시절의 상황이 영향을 많이 끼쳤다. 그때는 사는 게 정말 지긋지긋했으니까. 심술궂은 작은 악마 녀석이 내 행복지수가 담긴 통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다가 좀 살만해진다 싶으면 뻥, 하고 걷어차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툭하면, 이대로 죽어도 괜찮겠네,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시도한 적도 있었던 그런 시간들이었다. 


그때 억지로 버티고 서기 위해 했던 생각이 그거였다. 인생은 균형대 같은 거라고. 그러니 언젠가는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도대체 뭘 얼마나 좋은 걸 주려고 이렇게 내 인생을 갈아 넣고 있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믿으려고 했다. 그래야 좀 살 의욕이 생길 것 같았으니까. 


그 균형대가 언제부터 다른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최근 몇 년간 내 삶을 되돌아보자면 분명 '나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시리얼과 사과, 혹은 맹물로 끼니를 연명하던 초라한 유학생은 이제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상위 X%에 속하는 소득권에 위치한 직장인으로 거듭났고, 싱글 침대와 작은 책상이 전부였던 작은 방에서 호스트 맘의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있던 소심한 어학 연수원생은 이제 집 두 채의 주인이다. 그것도 두 개의 나라에 나눠서. 


이만하면 성공한 걸까. 모르겠다. 이만하면 발 뻗고 잘 살 수 있을까. 아니, 굳이 그렇지도 않았다. 왜? 저 '인생의 균형대' 때문에. 


그러니까 이건 고질병 같은 거다. 불행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좋은 일이 많이 닥치면 불안해지는 거다. 굳이 비유하자면 크레딧 한도가 얼만지 모르는 신용카드를 긁어 쓰고 있는 기분이랄까. 


내가 겪었던 불행들이 얼마나 많은 행운 포인트로 전환되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카드를 긁고 본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도전하고 본다. 시도해본다. 그러다가 성공하면, '오, 이 정도 포인트는 되나 봐?' 하지만, 그런 경우가 반복되면 슬슬 불안해진다. '이러다 한방에 훅 가는 거 아닐까', 싶어서... 


그러다 보니 꼼수가 생겼는데, 내게 조금 과하다 싶은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거다. 당연히 지금 내 실력으로는 되지 않는. 혹은 성취하기 아주 어려운 목표를 잡아서 덤비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방향에서 실패를 계속하게 되면 멘털이 주르륵 갈려나가긴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묘한 충족감이 든다. 


익숙한 실패에 대한 만족감이랄까, 아니면 안도감이랄까.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상당히 변태 같은데, (변태 맞나?) 이건 스스로를 괴롭히기 위해서라기보다, 뭐랄까.. 어떤 의식에 가깝다. 인생의 균형대에 실패의 제물을 바쳐서 눈속임을 하는 의식이랄까.  


'자, 보세요, 전 아직도 이만큼 많은 실패를 하고 있고,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답니다'


하고 안심시키는 그런 행위??


물론 난 그만큼 강한 사람은 아니라서 실제로 멘털이 탈탈 털리긴 한다. 반복되는 실패를 통해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그래, 내 까짓 게'하는 생각이 무거운 추가 되어 나를 어둠으로 끄집어 당기고, 그렇게 스트레스가 쌓이면 현생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니까 (실제로 우울해지거나 심하면 몸이 아파오기까지 한다;;). 


그러니 이 짓 그만 하면 안 되나, 싶은데... 또 그게 마음대로 되지도 않는다. 웃기는 건 그 실패의 영역에서도 어떤 희망이 보일 경우. 하긴 그 정도 시간과 노력을 때려다 부었으니 미미하게나마 성과를 이루는 게 어쩌면 당연한 보상일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조차 기뻐하기보다 불안해지곤 하니까. 




아니, 새해에 신나고 활기찬 신년의 다짐을 적어도 모자랄 판에 왜 이런 소릴 하고 있냐고요? 최근에 제가 불안해져서 그렇답니다. 그렇다고 같이 불안해하자는 건 아닙니다. 좀 더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한편으로는 글을 자주 못 올리는 것에 대해 해명이라도 하려는 마음도 있긴 합니다 (일을 제외한 시간에 실패만 계속하고 있는 무언가에 계속 도전하느라 그렇습니다;;)


그거야 제 사정이고, 진심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는 좋은 일의 비율이 나쁜 일의 비율보다 높은 (정산율 좋은!) 그런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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