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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Jan 29. 2022

영국을 대표하러 간 한국인

"We would like you to attend the UN xxx forum as our representative"


지금 일하고 있는 정부기관 International팀에서 내게 보내온 메일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유엔에서 주최하는 특정 주제 관련 포럼이 세 달에 걸쳐 열리는데, 각 나라별 해당 정부기관에서 대표를 한 명씩 뽑아 보내라고 했다는 설명과 함께, 내부 의논 결과 내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정을 내렸으니 내가 참가했으면 좋겠다, 라는 메일이었다. 


그 외에도 외부 행사에 자주 참가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흔쾌히 알았다고 응답한 뒤 저번 주에 첫 포럼 행사에 참가했다. 90명이 넘는 각국의 대표들과 UN, IMF 등 국제기관 소속 사람들도 참가한 행사였고, 행사는 발표자가 어떤 주제에 대해 Presentation을 하고 나면 8-10명이 한 조가 되어 Breakout room으로 이동해 토론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내가 속한 조에는 유엔 소속 사람이 토론 진행을 맡고, 헝가리, 네덜란드, 핀란드, 폴란드, 인도, 불가리아, 사이프러스, 아랍에미리트 등 나라 대표들이 있었다. 자기소개의 시간에 나는 당연히 나를, 


"Hello, my name is xxx, I'm the head of xxx in xxx, leading xxxx, and I'm here to represent the UK"


이렇게 소개했다. 그러라고 간 거니까. 


이어지는 토론의 내용들은 대부분 어떤 주제에 대한 국가적 관점을 발표하고 다른 국가 소속의 정부기관, 혹은 범국가적 기관들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그런 것들이 주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토론할 때 나는, 


"In the UK, we... / from our perspective.../ it'd be benefitical for us...." 


이렇게 영국을 지칭하며 '우리'라는 표현을 썼는데, 말을 하면서도 솔직히 아주 이상했다. 


평소에는 아이들이 영국 국기를 보고, 'our flag'라고 부를 때도 '아니, 그거 '우리' 국기 아니란다'하고 고쳐줄 정도로 농담으로라도 영국을 두고 '우리나라'란 지칭을 쓴 적이 없는데... 거기다 난 이름도 영어식으로 만들어 쓰지 않고, 여전히 국적도 한국인이다. 


그런데 그날 유엔 행사에서 나는 이래보나 저래 보나 영국인이 아닌 외양으로, 영국인이 아닌 이름을 가지고 '영국을 대표'하고 있었던 거다. 


그날 행사는 잘 끝났고, 그래서인지 다른 국가 정부기관으로부터 따로 연락을 받기도 했다. 토론 때 내가 했던 말에 대해 좀 더 대화를 하고 싶다, 영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 주제에 대해 접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등등. 그러니 결과적으로 보면 잘하고 온 셈이고, 지금 있는 정부기관 대표로 국내외 행사에 참가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하고 있는 일의 성격상 다른 영국 내 정부기관들과 꽤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이고, 유럽 쪽은 물론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소속 기관들과도 종종 연락을 하곤 한다. 


그런데 '조직'을 대표하는 것과 '국가'를 대표하는 건 좀 다른 기분이었다. 말을 하면서도 위화감이 느껴진달까. 입안이 까끌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쉬는 시간에는 좀 멍해지기도 했다.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한편으로는 영국인도 아닌 사람을 떡 하니 대표로 내놓은 정부기관의 결정이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가난한 집에서는 사람 한 명 초대하는 것도 걱정되지만, 부잣집에서는 손님은 물론 고용인이 몇이 된다 하더라도 걱정 안 하는 것처럼, 그런 종류의 결정일까? 저 사람은 영국인이 아니지만, 그래도 영국에 대해 알아서 잘 말하겠지, 혹은 못해도 상관없어, 라는 쿨한 태도일까? 


아니면 거의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영국에서 보내 놓고 아직도 내외하는 내가 이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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