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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Apr 12. 2020

여자에게 연애는 필수인가

그녀들이 보호막을 치게 되는 이유

우습게도 이 생각은 아이들과 영화 Frozen 2를 보고 난 뒤 둘째와 종종 노래를 같이 부르다가, 엘사를 생각하다가 든 생각이다. 첫 번째 영화에서는 그나마 Anna의 사랑 찾기 모험 같은 요소들이 있어서, 여전히 디즈니의 공주 같은 부분이 있었다면 두 번째 영화에서는 Elsa뿐 아니라 Anna도 혼자 일어서는 모습 등 여러모로 좀 더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난 좋았는데, 아이들은 전편이 더 좋았다더라;;) 


어쨌건 두 번의 영화에서 아나가 결국 크리스토퍼와 이어지는 것에 반해 Elsa에게는 어떤 연애의 징조도 보이지 않고, 마지막은 그녀가 새로 길들인 마법 말을 타고 질주하며 끝난다. 그런데 그녀를 자꾸 생각하다가 현실에 대입을 하게 되니 좀 묘한 생각이 드는 거다.... 


영국에서 유학을 하는 동안, 나름 다양한 한국분들을 만나봤는데... 그분들 중에는 영국에서 사업을 하시든 직장을 다니시든 자리를 잡은 분들도 계셨고, 한국에서 웬만한 위치에 있는 분들이 케임브리지 대학에 안식년을 보내시러 오시거나, 무슨 출장으로 오시거나, 한국 기업에서 채용을 위해 오시거나, 뭐 다양했다. 그리고 일전에 말했듯이 영국에 정착한 분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신 분들이 많았고, 학교를 통해 만나는 분들은 학부생까지는 수가 비슷하다가 대학원으로 갈수록 남자분들이 많았다. 유학 생활 초기에는 당연히 내가 '후배'의 범주에 속하거나, 같은 박사 동기라도 나이 차이가 꽤 나는 경우가 있다 보니, 아랫사람의 취급을 받을 때가 훨씬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그분들을 만나면 이런저런 질문을 받고 내가 답하는 입장에 있을 때가 많았다. 그분들 중에는 물론 적당한 선을 지키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간혹 어떤 분들에게 아직 결혼하지 않은 혼자 유학 온 한국 여자인 나는, 때로는 아직 미혼이지만 혼기(?)를 놓친 남자분들을 위한 잠재적 소개팅 대상으로 저울질되거나, '여자는 석사까지가 좋은데' 하는 아쉬운 걱정을 들어야 하는 결혼시장의 한물 간 아이템이거나, 그렇게 공부만 하다가 연애는 언제 할 거냐, 그러다 나이 차면 봐주는 남자도 없다, 하는 잔소리의 대상이거나,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여자는 남자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하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그런 존재였다. 


물론 그렇다고 혼자이신 한국 여자분들을 아주 만나지 못한 건 아니다. 수가 현저히 적긴 해도 간혹 가다 만나 뵙게 될 때가 있는데... 개인적인 경험으로 말하자면 자리 좀 잡았다는 한국인 남자분들이나 그분들의 아내이신 분들을 만났을 때와는 달리 대화가 좀 조심스럽게 흘러갈 때가 많았다. 일단 본인 이야기를 잘 안 하시기 때문에 어떤 대화 주제를 선택해야 할지 덩달아 조심스러워져서 안전지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대화도 자꾸 끊어지고, 안전지대를 찾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어져서 결국 다음 약속을 정하기도 애매한 흐지부지한 만남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분들의 그런 태도가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던 건, 그 보호막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지 대충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그런 분을 공통으로 알고 있는 다른 한국분들을 만났을 때, 아주 많은 경우 그분들은 마치 내가 당연히 알아야 할 정보라는 듯, '저분 결혼도 안 하시고 혼자 사신대'하는 말부터 들어야 했으니까. 마치 '저분 어디 동네 사신대'하는 말처럼 단순 정보전달인 것 같은 이 말 뒤에는 내 표정을 살피는 묘한 침묵이 따라왔다. 마치 내가 '어디 동네'와 관련된 소문을 미리 알고 반응하길 기다리는 것처럼. 그리고 내 반응이 미적지근하면 참을성이 별로 없으신 분들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도 추가했다. '나이가 XX 같은 데 아직 결혼도 안 했다니까...' 반면에 비슷한 상황의 남자분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결혼'얘기를 먼저 꺼내진 않으면서... 


그리고 나중에는 나도 그 여자분들의 입장이 이해되기도 했다. 유학생활을 끝내고 대학 강단에 서서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을 때, 대학에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 유학생들이 있는 걸 알고 놀랐던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지금 남편과 동거 중이었는데, 그런 게 다른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아주 신물 나게 겪었기 때문에 굳이 그런 사실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외부에서 보기에 난 영국에서 박사를 마치고, 영국 대학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직장 생활을 했었던, 나름 자리 잡은 미혼에 싱글인 여자였는데, 이후에 내 수업을 듣는 한국인 유학생들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었다. 입 발린 말 뒤에 따라오는, '그래도 연애도 안 하시고... 결혼은 안 하세요?' 하는 말들. 그리고 내 표정을 살피는 눈들. 이럴 때 내가 '저 연애하는데요?' 하면 상대가 누구냐고 물어올게 뻔하고, 외국인이라고 하면 더 말들이 많아질 테니, 그냥 '하하하, 언젠가 하겠죠'하고 넘어갈 때가 많았는데... 이게 몇 번을 계속되고 나니 딱 내가 예전에 유학생일 때 다른 여성분들을 향하던 그 말들을 내가 뒤에서 듣고 있었다. 하하하... 


그런 걸 보고, 겪고 나니 왜 그분들이 그런 보호막을 치고 있었는지 이해도 되고, 의문도 들었다. 실제로 현실뿐 아니라 여자가 주인공이 되는 대부분 매체의 이야기 속에서 아무리 여자가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늘 해피엔딩에는 그녀를 이해해주고 바라봐주는 남자는 꼭 한 명씩 등장하지 않는가. 마치 그런 남자가 없으면 그녀의 성장 스토리는 완성이 되지 않는 것처럼. 아니, 해피엔딩이 아닌 것처럼. 


그렇다고 남자 따위 필요 없다, 여자들이여, 홀로 서라, 뭐 그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당연히 연애도 중요하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행복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여자만'의 필수 조건이 아니란 말이다. 혼자란 이유만으로 그녀들이 이루어낸 모든 것들이 과소평가될 이유는 전혀 없고, 그런 것들이 다른 누군가가 감히 그녀의 성취를 얕보기 위한 도구로 쓰일 수는 더욱 없는 거다. 엘사가 혹시 게이가 아니냐, 하는 소문이 있었다는 (우습지도 않은) 우스개 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여자에게는 연애가 필요하다고, 남편이 필요하다고, 자식은 낳아봐야 여자의 인생이 완성되는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지금은 뭐라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과 내가 나누어야 할 대화는 몇 문장으로 요약되는 게 아니니까요 ^^ 그리고 Frozen에서 본 것처럼 아나 같은 삶이 있는 방면 엘사 같은 삶도 있는 거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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