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토리 Jun 17. 2022

공무원에서 사기업으로 옮겨보니..

브런치 프로필을 바꿨습니다. 이젠 영국 정부기관 공무원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막상 바꾸려고 보니, 새로운 회사와 제 업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프로필을 찾을 수가 없네요. 


공무원이야 솔직히 공무원이라는 직업군으로 뭉떵거려지는 일관성이 있어서 넘어갔다지만, 회사원이 되고 나니 아무래도 회사의 특성에 따라 풀어낼 이야기들이 달라질 것 같아 뭐라고 불러야 하나 찾아봤습니다. 


옮긴 회사는 Data Intelligence 쪽의 국제 기업인데 브런치 키워드에 데이터 관련 직종이 별로 없네요. 그래도 데이터 분석가와 컨설턴트가 포함된 팀을 맡고 있으니 어찌어찌 끼워 넣어봤습니다. 


전에 일하던 정부기관에서는 정부기관의 보안 규정 때문에 새로 세팅하는 데 시간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데이터의 보안 때문에 역시나 초기 세팅이 오래 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Intro 미팅을 가지고, 팀 멤버 한 명 한 명과도 만나고, 기본 교육 과정을 밟으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업무 관련한 이야기는 지금 못하겠지만, 아직도 공무원 때의 생활 습관과 생각 방식이 남아있을 때 이건 좀 다르네, 하고 한번 적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글을 씁니다 (사실 저는 좀 더 부지런하게 글을 쓸 필요가 있긴 합니다...) 


1. 조직과 팀 구성 방식 


이건 아마 회사 따라, 산업체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변화가 빠르고 다양한 디지털 산업 쪽이다 보니 조직이 유동적이고 수평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게 제 첫인상이었습니다. 조직의 위계가 분명하게 잡혀 있던 정부기관에서의 생활과 가장 다르다고 느낀 것도 이거였지요. 정부기관에서는 직급이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었고, 피라미드의 위로 갈수록 접근성도 뚝뚝 떨어졌거든요. 


팀의 구성 방식이라면, 어쩌면 뻔한 말일 수 있겠지만, 확실히 기업은 효율성을 중심으로, 정부기관은 형평성과 안정성을 기반으로 굴러간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젝트가 주어진다고 했을 때, 정부기관에서는 이런 질문을 주로 했죠. 


"Do we have enough resources? Is the workload managable? How does the team feel about it?" (프로젝트를 진행할 충분한 인원이 있는지, 업무량은 적당한지, 팀원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 


그러다가 프로젝트 팀원들로부터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면, 그 불평불만을 듣고, 새로운 팀원을 보충시키거나, 아니면 가장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팀원을 다른 팀으로 옮겨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push back'시켰습니다. 프로젝트 마감 날짜를 미뤄버리거나, 아니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프로젝트 자체를 아예 안 맡는 거죠. 


그런 공무원에서의 분위기와 비교하면, 지금 회사의 분위기는 대부분 프로젝트를 맡느냐 안 맡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효율적으로 마감을 맞출 것인가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이 방식이 당연한 거 같은데, 공무원 생활 때는 이게 그렇게 당연한 건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마감을 못 맞춘다고 해도 딱히 큰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2. 가장 두려워하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사기업에서는 이윤이 중요합니다. 매출, 주가, 뭐 이런 것들이죠. (아무리 비즈니스 이론에서 돈이 아니라 가치다, 이런 얘기를 떠들어도,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가치는 어차피 빛도 못 볼 테니까요). 


공공기관에서는 솔직히 말하자면 '명성' 혹은 '윗사람의 방향성'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정부기관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어떤 스캔들이든 뭐든 터져서 명예가 손상되는 것 (Reputational damage), 그럼으로써 시민들의 지탄을 받고 미디어의 관심을 끄는 것이었고, 그런 까닭에 공무원들에게 가장 강조되는 것도 'conduct' (행동가지)이었습니다. 


프로젝트를 맡을 때도 그 중요성을 결정짓는 건 얼마나 많은 이윤과 소득을 창출하냐, 가 아니라, 윗분들 - 주로 장관/차관급- 이 뭘 이루고 싶어 하는가, 였습니다. 실제로 선거철이 되면 어떤 정부기관들은 모든 프로젝트 자체를 멈추고 새로 임명될 장관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 새로운 장관의 말 한마디에 프로젝트가 휴지 짝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갑자기 생겨 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갑자기 기관의 명칭이 변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기업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굴러가니까, CEO의 성향 때문에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은 적죠. 대신 일하는 방식은 꽤 달라질 수 있겠지만요. 


3. 사사로운 것의 정의


확실히 기업에서는 효율을 추구한다는 게 느껴지긴 하더군요.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다 보니 웬만한 건 다 자동화되어있고, 여행경비라든지 그런 부분에서도 상당히 자유로웠습니다. 


반면에 정부기관에서 당연히 중시되는 건 효율이 아니라 정당성이었죠. 끊임없이 이걸 나중에 감사(audit)를 받는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라는 걸 염두에 두고 대부분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무리 비효율적이라도 그게 문서상으로 보기에 더 적합하면 그렇게 했고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꽤 힘들었습니다. 정부기관이 버는 돈을 알아서 쓰는 게 아니라, 예산을 할당받아 쓰는 구조이니까요. 쉽게 말해, 정부기관은 생활비를 스스로 번다기보다 따로 타서 쓰는 입장이니까, 뭘 새로 사기도 그렇고, 사람을 더 충당시키기도 어렵고, 뭐 그랬습니다. 


특히 자동화 같은 경우는 정부기관에서 사람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었는데, 그게 일자리의 축소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지요. 영국에서 계약직이 아닌 정식 공무원을 해고시키는 건 아주 힘든 일이기 때문에, 어떨 때는 사람 머릿수를 유지시키려고 일부러 효율이 떨어지는 고전 방식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그런 복지나 직업 안정성은 회사가 성장하고 잘 되어야만 유지시킬 수 있는 거니, 그걸 유지하고 싶으면 네 가치를 증명해라, 라는 분위기가 더 강하고요. 




적다 보니 의외로 공무원일 때는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던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역시 어떤 나무는 숲을 벗어나야지만 볼 수 있다더니;; 


솔직히 공무원 생활을 하는 중에는 뭐라고 말하기 좀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공무원 바닥이 의외로 좁고, 특히 한국인이라는 특이점까지 더해지니까 괜히 추적(!) 당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하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공무원다운 행동'에 의외로 많이 집착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이렇게 말하면 나중에 내가 속한 정부기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들 말이죠 (과대한 걱정이었습니다;;). 


어쨌건 이제 조금 더 자유로운 기업 쪽으로 옮겼으니, 이젠 좀 더 자주 소식을 전하게 되지 않을까요. 또 변명처럼 덧붙이자면, 사실 제 입장에서는 너무 뻔한 이야기 같아서 이런 걸 써도 되나, 하고 생각하다가 지운 글도 여럿 된다는 겁니다. 솔직히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이런 글이 도움이 되는지도, 흥밋거리가 되는지도 모르겠고요.. (물론 전 좀 더 부지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점도 나중에 기업 문화에 익숙해지면 또 적응돼서 이게 뭐 새롭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자주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셔도 좋고요 - 소재 찾기!) 

매거진의 이전글 헤드헌팅 당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