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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Dec 16. 2022

재수 없는 여자

내게는 오빠 한 명과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오빠는 귀하신 장손에 장남이고, 동생은 늦둥이 아기라서 어렸을 때부터 모든 자질구레한 집안일은 다 내 차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딱 하나 내게 제외된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침 일찍 해야 하는 심부름이었다.


아침에 간혹 가다가 두부가 없다거나 우유가 떨어졌다거나 하면 엄마는 자연스레 내 이름을 부르다가 멈칫하고는 오빠를 불렀다. 그 이유는 별 거 없었다.


여자가 아침에 첫 손님으로 가면 재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엄마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아침에 택시를 타지 않았다. 혹시 타야만 하는 일이 생기면 엄마는 돈을 내고 타는 손님이면서 한껏 몸을 낮추고 몇 번이고 운전기사의 눈치를 보며 온몸으로 미안하다는 티를 내려고 했다.


엄마만 유별난 줄 알았는데, 크다 보니 엄마만 그런 게 아니었다.


“어디서 여자가 재수 없게 목소리를 높여”


등등, 여자가 재수 없을 이유는 넘치고도 남았고, 집안 어른들은 물론 생판 처음 보는 남들도 스스럼없이 내게 삿대질을 하며 훈계를 늘어놓기도 했다.

단지 우리의 웃음소리가 조금 컸다는 이유로, 그들이 말할 때 조신하게 눈을 깔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의 말에 반박했다는 이유로, 혹은 그저 우리가 거기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


그렇게 여중/여고를 나와 공대에 입학했다. 100명이 넘는 전체 학부생 중 여학생은 10% 정도밖에 없었다. 그 숫자마저 학년이 올라갈수록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한 손으로도 셀 수 있을 정도의 여학생들만 남았다.


내가 대학생일 때 모 대학교 총여학생회에서 복학생에 관한 글을 실었다가 당시 온라인상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던 사건이 벌어졌다. 솔직히 처음 그 글을 접했을 때는 가볍게 넘겼다. 그랬다가 주위 남자들의 반응을 보고 기분이 싸해졌다.


당시 어떤 남자 선배들은 술자리에 나타나 소주잔을 들고 여학생들만 골라 찾아다니면서 ‘사상 검증’을 했다.


“야, 너 그 사건 들어봤어 안 봤어? 넌 어떻게 생각해?”


그 질문에 침묵하면 살벌한 기세로, ‘X발, 누군 죽어라 고생해서 나라 지키고 왔더니 여자들은 고마운 줄도 모르고’ 하고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며 욕을 섞어 가며 한바탕 연설을 퍼부었다.


어떤 여학생이 애교를 피우며, ‘아이, 오빠 왜 그러세요. 당연히 그건 걔들이 잘못한 거죠’하고 나서면 헤벌쭉 웃으며 ‘그래, 여자가 이래야지’ 따위의 말을 던지며 기분 좋게 술을 들이켰다.


나는 그럴 때면 잠자코 술을 들이키며 다른 대화 상대를 찾거나 아예 자리를 뜨는 편이었다. 속으로는 군대는 국가에서 정한 건데, 그렇게 불만이면 국가한테 불만을 표출해야지 왜 여기서 여자들한테 지랄이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대학 졸업반 때는 성적순으로 인기 있는 회사의 지원서가 내려오곤 했는데, 당연히 내게 처음으로 와야 할 지원서를 받으러 갔더니 조교가 그랬다.


“원래 그게 원칙인데, 넌 여자에다 어리니까 네 남자 선배한테 먼저 주기로 했다”


그게 몇 번 반복되길래 따졌더니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대학원을 알아봤는데, 먼저 대학원에 가있던 여자 선배가 그랬다.


“여기서 대학원 가면 연구실 비서 되는 거다”


즉, 연구가 아닌 온갖 자잘한 업무를 다 맡아야 한다는 거다. 막내에 여자니까.


그래서 한국을 나왔다. 영국은 선진국이라니까 뭐가 좀 다르지 않을까.


다르긴 달랐다. 여기서는 나이도 물어보지 않고, 여자라고 일단 깔보고 들어가는 분위기는 없었으니까.


그럼 나는 이제 그 모든 여성차별의 굴레를 뚫고 진정한 한 명의 인간으로 거듭났는가?


그건 아니었다. 살다 보니 나를 보는 시선에 이번에는 ‘동양인 여자’가 추가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툼을 좋아하지 않고, 목소리가 나긋나긋하며 ‘순종적이고 얌전한 동양인 여자’ (물론 나와는 거리가 먼 소리다. 나는 그런 성격을 가지고도 이 타지에서 버티고 살아남을 정도의 인간이 아니니까). 심지어 어떤 외국인 남자 학생들은 어디서 뭘 듣고 왔는지 대놓고 칭찬하기도 했다.


“Korean girls are the best for a wife. They cook, they work, they look after kids, they do everything!”


그럴 때면 기가 차서 웃음도 안 나왔다. 아, 간혹 가다 저 위 문장에 추가되는 것들도 있었다. 한국 여자는 예쁘고 잘 꾸미지.

그래, 이렇게 적고 보니 완벽하구나. 자기 관리도 혹독하게 하면서 일해서 돈도 벌어오고, 집안일도 다 하고, 심지어 육아까지 도맡아 하는 아내라니! 나 같아도 탐나겠다!


저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나마 중간은 가는 남자와 국제결혼을 했다. 하고 나니 의외로 시댁이 보수적이란 걸 깨달았다.

여전히 시댁에게 나는 내 진짜 연봉과는 상관없이 ‘부차적 수입’을 담당하는 사람이고 집안의 가장이자 주된 수입은 당연히 남편이 벌어올 것이기 때문에, 남편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그럼 도대체 ‘네 아내’는 뭘 하느냐, 하고 물어오신다.


그 아내가 뭘 하겠어요, 일 하거나, 애들과 놀고 있거나, 아님 그냥 쉬고 있겠죠. 무슨 문제 있나요?


유럽이 선진국이라고, 남녀평등하다고 누가 그랬어?!


내 주위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이 많다. 나와 친한 이들 중 아예 일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게 따지면 결혼, 육아, 출산과 함께 경력이 단절되는 한국과 비교해서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이냐, 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친구들 중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여자들은 거의 없다. 의사, 약사, 회계사 등 다 전문직인데도 다들 육아를 위해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대신 그들의 남편들은 모두 풀타임으로 일한다. 당연히 그들의 수입이 그녀들보다 높고, 그걸 이유로 여자들은 종종 알아서 승진의 기회를 포기하기도 한다.


나와 남편은 주위 가족의 도움이 없는데도 둘 다 풀타임으로 일하는데, 내가 저번에 일주일간 출장을 다녀오자 영국인 지인 중 한 명이 물었다. 애들과 남편은 다 괜찮았냐고.

아니, 출장을 다녀와서 피곤한 건 난데 왜 집에서 멀쩡히 잘 있던 남편과 아이들 안부를 걱정하는가.

그 지인이 ‘but mother is different from father’ 따위의 소리를 하길래 허허 웃으며 대화 주제를 바꿨다.


솔직히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럼 왜 이런 소릴 하고 있는가. 오늘 아침 남편이 BBC News 링크 하나를 보내줬기 때문이다. “As South Korea abolishes its gender ministry, women fight back (https://www.bbc.co.uk/news/world-asia-63905490​)”


거기에 적힌 사례들을 읽고 있는데 숨이 턱턱 막혀왔다.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과거의 일’이라고 표현했다는 부분을 읽자 기가 찼다.


다들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이 영국에서도 차별은 발에 치일 만큼 많다.

여자라서, 성소수자라서, 이민자라서, 외국인이라서, 피부색이 달라서, 체구가 왜소해서, 억양이 달라서, 등등.


그리고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아프다는 사람한테 할 수 있는 말은 ‘괜찮아?” 정도지, “너만 아프냐, 나는” 이런 종류의 불행 배틀이 아니다.

여자가 차별받는 사실에 대해서 ‘여자만 차별받냐, 남자는!” 할 종류의 문제가 아니란 소리다.


아니, 도대체 나는 이런 식의 주제가   남녀 간의 논쟁으로 번지는지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뿌리는 부조리한 사회 질서 혹은 문화에 기여한 것이고 바뀌어야 하는  사람들의 인식 전반과 구조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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