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토리 Apr 11. 2023

영국 생활을 20년 해도 변하지 않는 것

작년 말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이 있기 전에는 거의 일 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할 정도로 나와 남편은 자주 돌아다녔다. 보통 월세 계약이 6개월에서 일 년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서로의 직장 때문에 이사를 한 것도 있고, 일 년쯤 한 집에 살다 보면 대충 문제점들도 드러나기 때문에 더 괜찮은 곳으로 옮기려 한 것도 있다. 


예전에 살던 집으로 옮긴 이유는 순수하게 출산을 위해서였다. 


둘 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이방인들인지라, 짐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furnished house (가구와 생활 용품이 이미 다 구비된 집)으로만 월세 계약을 하고 들어갔는데, 내가 임신하면서 그 당시 살던 곳에는 아기 용품을 놓을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웨일스 골짜기 한적한 곳에 넓은 정원이 딸린 주택을 구해 들어갔다. 그때도 정착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들이 조금 클 때까지만 머무르겠다는 생각이 강해서 집을 사는 대신 월세 계약을 했었다. 


두 아이가 태어나고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에 한번 이직으로 그 동네를 뜰 기회가 생겼다가 무산되는 바람에, 우리는 이사할 곳을 알아보다가 결국 집주인과 괜찮은 거래를 해서 살던 집을 샀다. 


그 집에서 10년을 살았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첫째가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초등학교 (primary school)야 그렇다 치더라도 도저히 그 지역의 secondary school (중/고등학교. 영국에서는 보통 prmiary school에서 year 6까지 보내고 secondary school 혹은 high school/academy라고 부르는 곳에서 year 11까지 보낸다)로 보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역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영국에서 좀 오래 살아본 사람이라면 영국이 얼마나 지역별로 차이가 극심한지 알고 있을 거다. 그리고 예전에도 말했었지만, 영국은 지역이나 클래스의 고착화가 심한 편이고, 낙후된 지역일수록 이방인에 대한 차별이나 경계심이 더 크다.)


우리는 몇 개월에 걸쳐 영국 중부 이남의 지방에 괜찮은 학교가 있고 살기도 좋다는 중소 도시들을 찾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추천을 받아서 잉글랜드에 위치한 지금의 지역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그렇게 이사 온 뒤 며칠 동안 우리 집에는 끊임없는 배달의 행렬이 이어졌다. 예전 집은 무조건 싸게,라는 모토 아래 대부분 중고 가구들을 들였기 때문에 10년의 세월 동안 버티던 것들을 다시 다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냉장고가 배달된 날. 덩치 큰 남자 한 분과 입이 아주 걸걸한 여자 한 분이 배달하러 오셨다. 냉장고가 커서 문을 통과하니 못하니 어쩌니 하며 한바탕 난리를 친 뒤 결국 주방 입구에 냉장고를 내려놓고 가는 걸로 타협을 봤는데, 가기 전에 여자분이 남편을 돌아보며 말했다. 


"Are you looking for a job?"


뜬금없이 왠 일? 남편은 당황해하면서도 아니라고 대답했는데, 그분은 포기하지 않고 한번 더 남편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만약 운전을 할 수 있으면 트럭 운전사를 상시로 고용하고 있으니 한번 알아보라는 말을 했다. 


남편이 다시 정중하게, "Thank you, but I'm ok"하고 거절했는데도 이번에는 남편더러 그럼 warehouse (물류창고)에도 일자리가 있고, 여기서 별로 멀지도 않으니 들려 보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하고서 떠났다. 


배달 온 사람들이 사라진 뒤 우리는 현관을 닫으며 서로를 마주 봤다. 그리고 물었다. 


"혹시 우리 직장이 없어 보이나?"


조용한 주택가에 차고가 두 개 딸린 Detached house (다른 집과 벽이 맞닿아 있지 않은 독립 주택. 참고로 벽 한쪽이 붙어 있으면 Semi-detached, 양쪽 벽이 다 옆집과 붙어 있으면 Terrace or terraced house라고 부른다). 방금 사들인 양쪽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거대한 미국식 냉장고 (한국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냉장고를 여기서는 American fridge/freezer라고 부른다). 


도대체 어디서 그분은 우리가 직장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걸까? 그것도 그분의 도움 혹은 조언이 필요할 정도로?


아이들의 부활절 휴가를 맞아 놀러 간 휴양지. 

오래된 교회도 그렇고, 기념품 가게도 그렇고, 그들은 우리가 들어간 뒤부터 호기심에 찬 눈빛을 하고서 묻는다. 


휴가를 왔느냐, 어디서 왔느냐. 


우리가 지금 이사 온 잉글랜드에 위치한 그 동네를 말하면 당연하게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Where are you originally from?"


그다음에는 칭찬(?)이 따라온다. 


"Your English is very good"


여기서 20년쯤 살았으면 그 말이 칭찬이 아니라 모욕 같지만, 그런 것까지 그 사람들이 알리는 없으니 그들 나름의 호의에 우리는 웃으며 'Thank you'라고 답한 뒤돌아선다. 


이사한 곳에서 처음 만나는 어떤 이들은 내게 도움을 준답시고, 내가 사는 곳 근처에서 다른 아시안을 본 것 같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생각을 하지만, 나는 영국인처럼 겉으로 웃으며 그런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다고 정중하게 인사한다. 




뭐 이런 건 이제 흔한 일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내 겉모습은 여전히 동양인이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아마 이방인 취급을 평생 면하지 못할 거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20년 동안 변한 건 도리어 내가 아닌가 싶다. 


유학 생활 초기에 느꼈던 소외감과 멸시를 받을 때마다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던 분노와 오기. 

그러다가 현지인의 인정과 칭찬 한 번에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던 유치한 우쭐함과 그들과 같아지고 싶어 안달하며 그들을 모방했던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방인 신세를 절대 못 벗어날 것 같다는 생각에 차별적이고 꽉 막힌 이 사회를 원망하고 탓했던 시간도 있었다. 


지금은 뭐. 그러려니 한다. 또 한 번 지나가는 에피소드인 거다. 


누군가의 눈에는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멋모르는 이민자들처럼 보일 것이고, 누군가의 눈에는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이며, 누군가에게는 그저 멀리하고 싶은 낯선 존재겠지.


그만큼 내게도 그들은 딱 그런 정도로 남는다. 주위의 풍경 같이 스쳐 지나가는 인물 1, 2, 3 딱 그 정도. 적당히 미소 짓고, 적당히 흘려듣고, 적당히 무시하며 지나가도 되는 그 정도의 의미. 



덧. 

새삼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나 싶어 놀랐습니다. 영국에 온 지 얼마나 되었냐, 하는 질문도 자주 듣는 단골 질문에 들어가는데, 최근에 그 계산을 하다 보니 그렇더군요. 

아마 저희가 한 곳에 오래 머물렀다면, 이런 생각도 덜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난 10년을 돌이켜 봐도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겪는 일이다 보니 달라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긴 저한테야 반복된 일이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한 번, 두 번 겪게 되는 일이 테니까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나쁘다 좋다, 가 아니라 그냥 그렇다고요 ^^

작가의 이전글 재수 없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