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토리 Apr 26. 2023

영국, 저주받은 교통의 나라

내가 정말 웬만하면 이렇게까지 강한 어조를 쓰고 싶지 않았는데 (참고로 영국에 오래 살다 보면 극단적인 표현을 피하는 버릇이 생깁니다. 괜히 영국인들이 잘했다는 칭찬을 "Not bad"라고 하는 게 아니랍니다 ㅎㅎ)

2주 동안 이어진 출장을 다녀오고 나니 저절로 욕이 나와서 그런다.


지금 회사는 영국 내에도 office가 여러 군데 있는데,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 대충 차를 타든 기차를 타든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한국에 살 때는 편도 2시간 여정이면 꽤  길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영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편도 30분에서 1시간 여정이면 차라리 빠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상업 지대와 주거 지역이 대체로 구분되어 있고, 한국처럼 주거 지역이 아파트 단지로 밀집된 게 아니라 작은 타운 단위로 넓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전에도 팀원들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어 차로 2-3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로 한 달에 2-3번 정도는 출장을 다녔기에 장거리 여행에 대한 불만은 없다.


다만 이 저주스러운 영국의 교통 상황이 내 성질을 거의 매번 긁어놓는다!


일단 고속도로.

영국에서 장거리 여행을 하다 보면 꼭 한번 이상은 도로 공사 하는 구간을 만난다. 이렇게 공사할 때는 차선 하나를 막아 버리거나 40-50마일 정도로 저속 주행을 하도록 만든다. 그것도 모자라 저녁에는 아예 구간 자체를 막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진짜 밤 10시 넘어 안 그래도 피곤해서 한적한 도로를 달리며 얼른 집에 가야지, 하고 있는데 우회하란 사인을 보면 막 욕이 저절로…!


그렇다고 뭐 막 바쁘게 공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보통은 안전의 이유로 그냥 막아 놓는 거다. (영국의 Health & safety regulation은 정말 깐깐하다!!) 물론 근무 시간도 지켜야 되기 때문에 딱히 공사가 빨리 끝나지도 않는다.


도로 공사뿐 아니라 꼭 사고도 한 번씩 터진다. 특히 바쁜 출퇴근 시간, 혹은 사람들이 몰리는 휴가철에.

런던을 둘러싼 M25 - 구글에서 트래픽 표시를 보면 거긴 늘 빨갛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런던에는 운전해서 가고 싶지가 않다.

M3, M4, M5, M6 등등, 중요 도시를 연결해 주는 고속도로는 거의 매번 정체가 있거나 사고가 터진다고 보면 된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남부를 연결하는 다리 위에서 사고가 났을 때는 다리 자체를 다 막아버려서 3시간 동안 차 안에서 꼼짝없이 갇혀 있기도 했고 (이어주는 다리가 딱 2개밖에 없다), 한 번은 고속도로 터널 안에서 트럭이 불타오르는 바람에 그 도로 자체가 마비된 적도 있다. 말이 고속도로 위에 난입해서 정체가 된 적도 있고;;;


그럼 다른 교통수단은 괜찮으냐.


기차.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국에서는 작년 말부터 열차 파업이 계속 반복되었다. 임금 협상을 위해 파업을 한 건데, 이 때는 정말 답도 없었다.


난 파업 첫날에 분명 내가 타는 열차 회사는 파업을 안 한다고 해서 갔는데, 돌아오는 날 기차역이 문을 닫아 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저녁 5시가 넘어 택시까지 타고 기차역에 갔는데, 역이 문을 닫았다고 열차 서비스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란..! 다른 방법이 없어 택시를 타고 4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택시비만 250파운드가 나왔다. 회사에서 부담해 줬지만, 딱히 반복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다)


이번 주도 그렇다. 원래는 2시간이면 바로 직행으로 런던까지 갈 수 있는데, 무슨 기차역 서비스를 점검한다고 7주 동안 직행 서비스를 중단한단다. 7주 동안!!

그래서 2시간이면 될 거리를 3시간에 걸려 런던까지 왔다. 그랬는데 돌아올 때는 기차가 지연되는 바람에 다음 기차를 놓쳐서 갈아타야 하는 역에서 50분을 기다렸다.


그럼 런던 내 지하철 (underground/tube system)은 괜찮으냐? 이것도 서비스 점검 혹은 임시 휴업, 파업이 걸리면 운행이 중단된다. 그럼 진짜 대책이 없어진다. 아예 안 가는 게 최고지.


런던의 기차역은 보통 서쪽에 위치한 Euston, Paddington과 북쪽에 있는 King’s cross, 남쪽에 있는 Waterloo, Victoria가 대표적인데, 런던이 영국의 남동쪽에 위치한 걸 생각하면 런던 서쪽에 있는 역에 도착하는 인원수가 많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인데, 웬만한 회사의 사무실들은 런던의 동쪽에 있는 City of London에 몰려있다. 즉, 회사에 가기 위해 런던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야 한다는 소리다.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한번 중간에 갈아타거나 Circle line처럼 돌아가는 걸 타는 방법이 있는데, 런던의 지하철 역은 진짜… 가끔은 개미굴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람은 많고, 공간은 좁고 (그런데도 떨어지는 사람이 없는 게 용하다), 기차 안은 비좁고.. 가끔은 아예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지연하기도 하고…. 한국처럼 2분 만에 하나씩 오면 얼마나 좋아..


버스는… 이젠 거의 타지 않는다. 딱히 빠른 것도 아니고, 편한 것도 아니고. 가격이 특별히 싼 것도 아니다. 특히 예전에 기차 운행이 중단되어서 대행 버스를 탄 적이 있는데… 기차로 3시간 걸리는 거리를 6시간 걸려 집에 온 뒤 이제는 rail replacement bus라고 하면 일단 거르고 본다.


택시는 보통 기차역으로 갈 때 이용하는 편인데, 이른 아침에는 택시가 정시에 도착하지 않아서 속을 태운 적이 몇 번 있다. 결국 6시에 남편을 깨워, 남편이 잠옷 바람으로 태워다 주는 바람에 기차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아침 7시 전에 어딜 가야 할 경우가 있으면 가급적 택시 사용은 피하려고 한다.

런던의 까만 택시는 그냥 손만 들면 알아서 멈춰서 태워주는데, 예전에 10분 정도 거리를 가고 16파운드 정도를 냈던 것 같다. 그런데 런던은 교통 상황이 언제나 늘 개판이라서 걷지 않는다는 걸 제외하면 딱히 시간을 아끼는 효과는 없다.


이런 걸 감안하면 자전거를 타는 게 좋은 방법일 수도 있는데, 실제로 나는 예전에 런던에 살 때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둬야 할 건 런던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역시 꽤 무모하고 거칠다는 거다. 하긴 안 그러면 난장판인 런던의 도로 위에서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지금 시각이 저녁 8시.

저는 아직도 기차 안에 있습니다 ㅠ_ㅠ  



 



 








작가의 이전글 영국 생활을 20년 해도 변하지 않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