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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May 02. 2023

맨체스터, 어른의 도시

어쩌다 보니 친구를 따라 맨체스터에 오게 되었다.


맨체스터는 영국 중부 (잉글랜드의 북서쪽)에 위치한 산업혁명의 중요 도시 중 하나다. 지도를 보면 Liverpool, Manchester, Leeds 이렇게 거대한 도시들이 몰려있는데 한국에는 축구 때문에 더 유명한 곳이 아닐까 싶다.


내게는 맨체스터에 대한 작은 환상 같은 게 존재했는데, 축구 때문이 아니라 예전에 본 Life on Mars라는 영국 티브이 시리즈 때문이다. 2006년을 살아가던 형사가 차사고를 겪고 1973년으로 회귀한 내용이었는데 그 배경이 맨체스터였다. 그 시리즈를 좋아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렇게 영상으로 본 맨체스터는 뭐랄까, 거칠면서도 낭만적인 부분이 있는 도시였다. 어딘가 뉴욕을 연상시키면서도 지독히 영국 같은 도시.  


그렇게 한 번은 가봐야지 했지만, 지금까지는 거기까지 갈 이유가 없어 가지 못하다가 이번에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냉큼 따라나섰다.


그렇게 보게 된 맨체스터는...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웅장하고, 다양하고 생기가 넘쳤다.


Machester Picadilly station에 내려서 밖으로 나서자마자 거대한 건물들과 복잡한 도로의 구조가 나를 반겼다. 역 뒤로 보이는 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지어졌을 것 같은 빨간 벽돌의 건물들. 눈앞에 보이는 쭉쭉 위로 뻗어 있는 건물들.


역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들을 따라 덩달아 발을 옮기면서 잠깐 런던에 온 게 아닌가, 하는 기시감이 들었다. 그 정도로 도로가 활발했고, 건물들이 크고 웅장했기에. 그렇다고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의 정제된 고풍스러운 건물들과는 결이 다른 좀 투박한 느낌.


호텔은 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기에 체크인을 하고 리셉셔니스트에게 물었다.


"What should I see in Manchester?"


그러자 직원분이 눈을 굴리며 도리어 내게 물었다.


"What do you like?"


그래서 다시 물었다. 만약 내가 사람들에게 맨체스터에 다녀왔다고 하면 그들이 내게 '멘체스터에서 이거 봤어?'라고 물을 때 나올 '이거'가 뭔지를 알려 달라고. (즉 파리의 에펠탑, 영국의 빅벤 같은 게 뭐냐고)


직원은 내 질문에 뜸을 들이며 생각을 하더니.. "Umm.. bar?"하고 답하는 거다.


좀 어이가 없어서 이 분은 맨체스터를 잘 모르시나, 아니면 맨체스터에 볼 게 그렇게 없나, 그런 생각을 하고 적당히 고맙다고, 그럼 괜찮은 바나 추천해 달라고 한 뒤, 호텔방에 짐을 풀고 거리를 나섰는데..


와... 나는 런던 이후로 이렇게 분주하고 거대한 도시는 영국에서 처음 봤다.


솔직히 영국에 살면서 에든버러, 글라스고, 카디프, 브라이튼, 브리스톨, 바스, 뉴캐슬, 요크,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엑스터, 등등 꽤 많이 돌아다닌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맨체스터는 뭔가 스케일이 남달랐다.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다고 하더니, 정말 19세기가 그대로 떠오를 것 같은 고풍스러운 빌딩들이 즐비하고, 트램들이 도시 중앙을 관통해 달리며, 그러면서도 분명 공장이었을 것 같은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는 건물들과 번쩍거리는 전광판이 달려있는 모던한 빌딩들이 공존한다.


강가를 따라 있는 Gay village는 한낮에도 거리에 조명이 켜져 있고 노래가 흘러나오며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대고, 주말 아침부터 Hen/Stag party를 하기 위해 과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누볐다. 게이 빌리지를 지나 시청이 있는 쪽으로 올라가면 Manchester China Town이 나오고, 시청과 도서관이 있는 광장을 만날 수 있다.


실제로 구글맵을 살펴보면 맨체스터 중심가에는 엄청난 수의 바(Bar)나 레스토랑을 볼 수 있는데, 그 종류도 다양해서 웬만한 나라의 cusine은 거기서 다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영국 도시를 가도 볼 수 있는 중국, 인도, 타이, 터키, 남유럽 음식점을 제외하더라도, 베트남, 에티오피아, 뉴질랜드, 하와이 전문 음식점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골목 사이에는 쓰레기통이 놓인 '뒷골목'이 존재했는데 왜 범죄 영화를 이 도시에서 촬영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곳이었다.


길거리에서 크게 쌍욕을 날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된 건물 앞에서 종이로 된 옷을 입고 장미꽃을 손을 든 남자가 화보를 찍기도 하는 곳. 어쩐지 밤에 혼자 다니면 안 될 것처럼 거칠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하고 재밌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게 하는 곳.


그 분위기에 이끌려서 나 혼자 돌아오게 되는 날, 기차 시간이 남아 역 근처 바에 들어가 한낮에 맥주 파인트를 혼자 들이키면서 그 생각을 했다.


이곳은 어른을 위한 도시 같다고.


아무리 봐도 애들을 데리고 올 만한 곳은 별로 안 보이는데, 친구와 함께 혹은 나 혼자 즐기기에는 꽤 매력적인 도시 같다고. (그래서 여기에 데이트 유명 명소도 많은 건가?)




저는 안타깝게도 축구를 잘 몰라서 맨체스터 스테디움 (Old Trafford - Manchester United의 홈경기장) 까지는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친구 말에 따르니 기차역에서 트램을 타고 바로 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관광 가기에는 좀 애매한데, 혼자 머리를 식히거나 아니면 친구들과 밤문화를 위해 놀러 가기에는 꽤 매력적인 곳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도 엄청 많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Manchester Art Gallery와 Gay village가 제일 인상 깊었습니다. 대신 High street (보통 가게들이 즐비한 쇼핑가)는 정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딱히 흥미가 가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쇼핑가는 유명한 체인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편이라 도리어 도시별로 특색이 좀 적은 편입니다)


실제로 맨체스터에 사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오래간만에 신선한 충격을 접해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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