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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Jun 28. 2023

(일상) 이렇게 지칠 때는

1. 자녀 교육


우리는 작년 말에 웨일스를 떠나 잉글랜드에 있는 새로운 도시로 이사했다. 첫째 아이가 올해 9월이면 Secondary School (영국의 중/고등학교 - 영국에서는 보통 만 5살에 Primary School 1학년 (year 1)을 시작하고, 6년의 교육을 마친 뒤 secondary school에 들어가 Year7-11, 7학년에서 11학년까지 5년간 교육을 받는다)에 들어가기 때문에 급하게 한 이사였다.


새로운 집은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지만 거대한 슈퍼마켓까지 5분이면 걸어서 갈 수 있고, 응급실이 있는 대규모 병원까지는 걸어서 15분, 근처 중/고등학교 까지는 걸어서 20분, 번화가가 있는 도시 센터까지도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 모든 면에서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 근처 중고등학교를 신청했는데, 웬걸, 뜬금없이 그 학교에 자리가 다 찼다며 무려 3마일 (대략 4.5킬로)이나 떨어진, 그것도 도시의 정반대에 위치한 중고등학교에 입학을 배정받은 거다. 어이가 없어서 구청에 해당하는 County Council에도 문의하고, 학교에도 연락을 하고, 심지어 해당 자치구 정치인에게까지 연락을 넣어 도움을 요청했다.


보통 학교 배정에 불만이 있는 이들은 그 결정에 appeal 할 수가 있고, 이 경우 보통은 학교와 관련되지 않은 독립적인 업체가 이 과정을 담당한다. 대충 3명으로 구성된 패널 멤버들이 학교의 결정에 어떤 문제는 없었는지, 학부모의 요구가 정당한지 심사하는 역할을 하는 거다. 그리고 보통 직접 케이스를 제출하고 질의응답을 할 수 있는 hearing (심문/청문회)이 열리는데… 이번 청문회에서 정말 어이없는 경우를 당했다.


우리는 우리가 이 지역에 새로 이사 왔기 때문에 아이가 지리에 익숙하지 않고, 새로 전학 온 학교에서 이제야 교우 관계를 만들었는데, 그 아이를 4.5킬로나 떨어진 아예 다른 동네로 등하교를 시키는 게 얼마나 아이에게, 그리고 부모인 우리에게 부담이 되는지를 설명했는데, 이 패널의 chair라는 인간이 자꾸만 우리에게 딴지를 거는 거다. "All white kids do the same" (백인 애들도 다 그런다), 그딴 소리를 하면서.


슬슬 열이 빡치면서도 인내심의 한 줌을 끝까지 잡고 어떻게든 우리 상황을 설명하려 하는데, 우리가 새로 이사 왔기 때문에 아직 support network가 없다는 우리의 말에, 그 사람이 “It's because you are migrants” (그건 너희가 이민자라 그런 거고) 그러는 거다. 하. 하하하…


그 개 같은 청문회가 끝나고 나는 그대로 심사를 담당하는 회사에 컴플레인을 넣었다. 그리고 온갖 차별 관련 법 조항을 다 찾아서 Department for Education (교육부)에도 민원을 넣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아주 오래간만에 영국에 대한 욕을 숨 쉬듯 내뱉으면서.


2. 주방 리모델링


처음 이사 올 집을 확인했을 때는 딱히 눈에 띄는 문제점이 보이지 않았다. 최근 3년 동안 집을 손봤다더니, 실제로 집의 상태가 양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바꾸고 싶은 게 자꾸 눈에 보였다.

뭔가 문제가 있다기보다 우리의 생활방식과 이전 집주인의 생활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느껴지는 불편함에 기인한 것이었다.


일단 차고를 개조해 남편의 홈오피스를 만들고, 우리는 주방을 리모델링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차고를 개조하는 동안 그 일을 담당했던 개인 builder (건축/설비업자)에게 아주 이를 갈았던 우리는 아예 디자인과 설치까지 다 해준다는 이름난 회사에 이 일을 맡기기로 했다. 그럼 좀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몇 주 동안 회사 디자이너와 주방 디자인과 마감 자재까지 다 결정하고, 보증금까지 낸 뒤 거기서 담당 installer (설치기사)를 보내줬다.


우린 회사에 고용된 설치 기사일 줄 알았는데, 막상 도착한 사람을 보고 알아보니, 이 지역에 사는 여러 builder들이 그 회사와 계약을 하고 수주를 받아하는 구조였다. 그렇게 설치기사가 와서 주방과 관련된 것들을 보고 따로 필요한 요금을 계산해서 보내 준다기에 봤는데… 기가 찼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풀옵션으로 냉장고, 냉동고, 식기 세척기를 같이 주문했는데, 그걸 직접 연결시켜 주는데 돈을 따로 받겠단다. 그럼 관련된 전기, 가스 조치까지 해주는 거냐, 했더니 그건 또 아니란다. 새로 파워소켓을 설치하는 돈을 요구하면서, 기존에 있던 파워 소켓을 제거하거나 위치를 바꾸진 않겠단다. 벽에 붙은 타일을 제거하고 새로운 타일을 붙여주긴 하겠지만, 그 외 마무리 작업은 하지 않겠단다. 천장 마감까진 해주겠지만 페인팅은 하지 않겠다. 설치는 하겠지만 전기 연결은 안 하겠다, 등등.


그럼 그 외의 것들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으니 그건 자기가 알바 아니란다. 우리가 진짜 원하면 주위에 물어볼 순 있는데 그러면 또 추가 비용을 내라고.


우리는 당연히 회사에 이 일에 대해 컴플레인을 넣었고, 회사는 그럼 다른 인스톨러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좀 짜증이 나는 거다. 2만 파운드 (대략 3천3백만 원) 이상의 돈을 썼는데도 뻑하면 추가 비용을 내라는 소리를 하는 설치 기사나, 마치 우리가 깐깐한 것처럼 구는 회사나. 


우리는 정확히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아예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회사를 선택한 건데 말이다. 그래서 또 열심히 계약서 조항들을 찾아본 뒤 바로 계약을 무효화시켰다. 


3. 연봉 협상 


보통 회사에서는 일 년이 마무리되면 Pay review를 한다. 개인의 업무 능력과 실적에 따라 새로운 연봉 협상을 하기도 하고, 보너스 지급 유무를 결정하기도 하며, 다음 한 해의 목표치를 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너스의 조건을 정한다. 


나 역시 내 아래 팀원들을 상대로 이 리뷰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10%나 되는 연봉 인상을 받은 직원과 0%를 받은 직원 두 명이 강하게 불만을 표시해 왔다. 


10% 연봉 인상을 받은 직원은 안 그래도 팀에서 가장 연봉이 적었는데, 아무래도 인상된 연봉이 자기의 기대치와 달랐는지, 그 좋은 소식을 듣은 뒤 인상부터 구겼다.  

0%로 아무런 인상도 받지 못한 직원은 그럼 그동안 내가 일했던 건 모두 쓸데없었던 거였냐며, 대번에 감정이 격해져 목소리를 높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10%의 직원은 그 직원이 원하는 목표 연봉을 받기에는 아직 업무 능력과 성과치가 한참 모자랐다. 0%의 직원은 열심히 하긴 하지만 말 그대로 주어진 업무만 열심히 해낼 뿐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은 부족했고. 


그런 것들이야 그들 역시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그것과 감정은 다른 문제인지라, 대략 일주일 동안 팀 분위기가 말도 아니었다. 나 역시 감정적으로야 그들을 이해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회사는 굴러가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 얼마나 일을 하기 싫어할지 짐작하면서도 업무를 맡긴다. 그들이 감정적으로 굴며 아슬아슬하게 선 타는 발언들을 해댈 때도 나는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가능한 평온한 태도로 그들의 말을 듣고 진정시키려 한다. 


그런 후에는 머리를 굴린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들을 더 발전시켜서 다음에는 회사로부터 괜찮은 보수를 받아내여 그들에게 넘겨줄 수 있을지.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들의 업무 실력을 향상해 회사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되게 한 뒤, 이렇게 내 팀원들이 잘해서 이 정도 성과를 우리가 내었으니 이 정도 보상을 그들에게 내려 주세요,라고 하는 거니까. 




이런 식으로 몰아치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진이 빠진다.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아예 할 말이 없어진다. 거기다 조그맣게 쌓이는 일상의 스트레스들까지 더해지면 어느 순간에는 질식할 것만 같다. 


운동을 다녀와도 한숨이 나고, 뭘 봐도 재미가 없고, 기분이 축 가라앉는다. 그렇다고 잠을 제대로 자는 것도 아니고, 주말이 지나고 나도 개운하기보다 피곤하기만 하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참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미친 것들이 달려들면 그보다 더 미친 것처럼 칼을 휘둘러 줘야 한다. 영국에서는 칼이 아니라 정중하고 날카롭게 날이 선 complaint letter를 쓰는 거지만. 


내 돈이 들어갔다면 절대 양보나 이해 따윈 하고 싶지도 않다. 나한테 그 따위 서비스를 해, 너 내 돈 필요 없구나? 하는 마음가짐으로 냉큼 돈을 회수하고 손절할 마음가짐을 해야 한다. 특히 영국에서 tradesman (건축업자, 설비/설치업자, 배관공, 전기기사 등등)을 대할 때는. (영국에서는 뭐랄까, 지역에 따라 이 쪽 방면으로 사기 치는 사람들도 많고, 제대로 된 교육 없이 그저 눈 너머로 배워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조심해야 한다. 이건 종류별로 나중에 얘기해 보자.) 


그리고 일을 할 때는.. 나와 일을 분리하는 게 가장 좋은 듯하다. 우리는 돈으로 연결된 쿨한 관계, 돈이 아니라면 언제든 갈라설 수 있는 그런 관계니까. 거기에 굳이 내 인생과 행복, 기쁨, 좌절, 신념까지 갈아 넣을 것까지는... 


그렇게 했는데도 지금처럼 지치면.. 그땐 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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