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략 2주 전에 첫째 아이의 중고등학교 배정 때문에 appeal (제삼자인 독립 기관이 주관하는, 원하는 학교에 배정받지 못한 부모가 왜 자신의 아이가 이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지 설명/설득하고, 해당 케이스별로 따로 panel member들이 입학 결정을 내리는 절차)을 했다가, 아주 무례한 chair를 만났었다.
부모로서 절차에 맞게 우리와 아이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두 번째 문장부터 말을 끊어 먹던, 거기다 대놓고 우리가 이민자라서 그러느니, 동양인과 좀 아픈 (!) 백인을 동일상에 놓던 무례한 심사관.
우리는 당연히 그 후 심사를 주관했던 업체와 교육부에 심사관의 언행에 대한 컴플레인을 넣었다.
그리고 업체에서 변명이랍시고 그 심사관의 말을 전해왔는데…
장황하게 appeal process 가 보통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마치 우리가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처럼), 자신이 얼마나 시간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뒤에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다른 부모들에게 폐가 되었을 거라고 (우리에게 변론의 기회가 주어진 건 전체 60분 중 초반 20분이 지난 후였는데), 자신은 그저 증거가 있는지 물었을 뿐이라며 (우리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건 이 케이스와 무관하다고 말을 잘라먹을 때는 언제고), 온갖 합리화를 늘어놓다가 인종차별적 발언에 대해서는 이런 핑계를 댔다.
“I work with other panel members who are originally from different ethnic groups. How can I be a racist?” (다른 인종인 패널 멤버들과도 일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인종차별주의자일 수 있느냐?)
그 부분을 읽자마자 기가 차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습게도 이 말도 안 되는 논리는 뭇사람들이 아주 잘 써먹는 핑계다.
“My friend is Black/ my family hosted Chinese students in our house/ I worked with Indians before…. (therefore) I’m not a racist” (내 친구가 흑인이다, 우리 집에 중국인 학생들이 머물기도 했다, 내가 전에 인도인들과 일한 적이 있다, 등등, 그러므로 나는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비약적으로 바꿔 말해보자.
내게도 엄마가 있고 아내가 있으니 나는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내 자식이 성소수자이니 나는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나는 이민자들을 고용하고 있으니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
그건 그들의 상황, 환경에 대한 설명이지 그들의 가치관을 반영해주지 않는다.
엄마가 있다고 해서 자신은 자신의 엄마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 선택으로 인해 어떤 갈등에 놓여 왔는지 알고 있는가.
내 자식이 성소수자인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 선택을 존중하며 그 단순한 사실로 인해 내 아이가 겪어야 할 어려움을 짐작하고 도와줄 의향이 있는가.
이민자들을 단순히 말 잘 듣고 부리기 쉬운 싼 노동력으로 생각해 고용한 건 아닌가. 나는 정말 단 한순간도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대놓고 욕을 하거나, 그들이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권리를 일부러 빼앗진 않았는가.
만약 그들이 그런 상황에서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존재를 존중하고,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공감했다면 그들은 절대 저런 핑계조차 대지 못한다. 그런 말실수 자체를 할 확률이 낮고, 설사 실수를 했다 해도 스스로 먼저 깨닫거나, 아니면 지적당했을 때 사과부터 했을 테니까.
물론 이건 다른 방식으로도 적용된다.
내가 흑인이라서, 유색인종이라서 나는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여자니까 당연히 나는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다? 내가 게이니까 나는 모든 성소수자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얼핏 듣기만 해도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인지 알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차별의 역사는 길고도 깊고, 그건 같은 언어를 쓰는 동년배, 같은 성별, 동일 민족 사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니까.
그런데도 버젓이 이런 걸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이랍시고 내 앞에 들이밀다니.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스스로가 이런 주제에 대해 무지하다는 걸 보여주는 건지도 모르고 말이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런 개소리를 늘어놓으며 자신의 언행을 정당화하려 한다면 되물어 주자.
“So?” (그래서 뭐?)
“How is it related to this?”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굳이 그들에게 논리를 기대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자신이 정당하고 선일 테니까.
그럴 때는 바로 그들을 가뿐히 지나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 엿을 먹이면 된다.
감정 따위 일단 옆으로 치워놓고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절차와 제도에 맞게!
격을 갖춰서 제대로.
덧으로 붙이자면, 저희 어필 결과는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나오기 직전에 지원했던 학교에서 연락이 왔죠. 제 아이의 입학 신청을 허가한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컴플레인과 별개로 어필 결과에 대해 시청, 구청과의 싸움도 준비하고 있던 저희에게는 무척 뜻밖이고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어필에 참가했던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어필 과정에서 있었던 불의를 참지 못하고 학교 차원에서 어필 결과와 상관없이 결정을 내린 것이었죠.
그 후 찾아뵙게 된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도리어 저희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 심사회는 최악이었고, 심사원의 태도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unacceptable), 무례한 (offensive) 행동이었다고 말이죠.
그렇게 만나고 돌아오는 길.
어스름해져 오는 영국 하늘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더군요.
물론 그렇다고 컴플레인을 취소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도리어 눈에 불을 켜고 교육부의 결정을 지켜볼 생각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