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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Jun 02. 2022

아이들과 홀로 캠핑

남편은 캠핑을 싫어한다. 아니, 그의 표현을 빌자면, 그의 인생에 있어 캠핑할 시기는 지났다.


그런 까닭에 아이들과의 캠핑은 자연스레 내 선택으로 남았고, 난 아이들과 홀로 캠핑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날이 좋을 때 정원에 텐트를 치고 잤다. 이웃에게 중고로 산 텐트는 커다란 4인용 텐트로 중앙에 공동 구간을 두고 양쪽 끝에 이중으로 방을 부착시킬 수 있은 구조다. 한번 치면 여유롭여서 좋지만 더럽게 무겁고 혼자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 그런 텐트.


그렇게 집에서의 야외 생활을 좀 하다가 3년 전, 공무원으로 이직하기 전에 아이들과 바닷가로 캠핑 여행을 갔었다. 여름에 아이들만 데리고 종종 Road trip에 가까운 휴가를 가긴 하는데, 그때는 휴직한 뒤라 시간이 있었기에, 몸이 피곤할 걸 감수하고도 떠났다.


그때는 바닷가 근처 캠핑장에 도착해서 텐트 칠 준비를 할 때부터 비가 내리는 바람에 고생했다. 아이들은 비가 온다면서 난리법석을 떨고, 그런 아이들에게 차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혼자 텐트를 치는데... 마음은 바쁜데 온갖 줄이 엉켜 진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근처 카라반에 있던 커플이 내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도와주러 와서 무사히 텐트를 치긴 했는데..


그날 비가 무진장 내렸고, 다음 날 일어나자 텐트는 우리가 자고 있던 방만 빼고 온통 물바다가 되어있었다. 중고 텐트라  천이 많이 해어진 것.


난장판이 된 바깥을 혼자 정리하다가, 망아지처럼 웅덩이를 첨벙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말려보려다가, 정신이 파스스 부서지는 기분에  다 때려치우고 그냥 애들을 차에 태우고 근처 놀이공원으로 데려갔었다.


물 만난 듯 좋아하는 아이들 뒤를 따르며 멘털을 추스르고, 오후에는 의욕 충만하게 텐트장에서 요리까지 했다.


그리고 올해. 이번에도 이직하기 전 2주의 휴가가 생겼다. 그래서 또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하러 왔다. 목적지는 웨일스 북쪽에 있는 스노도니아 (Snowdonia).


스노도니아는 내가 케임브리지에 있을 때 Hill walking society 활동 때 한번 와봤던 곳이다. 그때 Snowdon peak까지 제대로 된 워킹 부츠도 없이 올라갔다가 생고생을 하고, 설상가상으로 길까지 잃어 밤 10시에 겨우 하산한 기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솔직히 지리산에도 대충 운동복 차림으로 3일 동안 종주한 까닭에 영국의 두리뭉실한 언덕을 물로 봤다가 그 오만함을 교육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번에 가려고 보니 의외로 스노도니아 지역 자체가 꽤 넓어서 그때 내 기억이 얼마나 협소했나도 새삼 깨달았다. 이번에 직접 드라이브해서 가니.... 정말 아름다웠다. 말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이랄까.


높게 솟아있지만 그렇다고 나무로 울창하게 덮여있지 않다. 그보다는 벨벳을 깔아놓은 듯 부드러운 능선이 그대로 펼쳐진다. 끝도 없이 쭉 펼쳐진 결이 다르고 색이 다른 녹색의 언덕을 따라 양들이 하얀색 점처럼 군데군데 박혀있다. 노란색의 유채꽃이 만발한 곳에는 갈색, 까만색, 하얀색의 말들이 노닐고, 강이 흐르는 평지에는 갈색의 소들이 하얗고 까만 양들 사이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서쪽으로 더 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언덕들 너머 지평선이 보이기도 한다. 산과 초원, 강 혹은 호수가 어우러지는 곳. 그러다가 거친 암벽이 등장하고 옛 광산의 흔적도 드러내며 괜히 그 반전에 사람 설레게 하는 곳. 그게 내가 본 스노도니아다.


캠핑장은 그런 녹색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었다. 다행히 도착했을 때는 비가 오지 않았고, 전기가 포함된 자리가 아니면 아무 곳에나 텐트를 칠 수 있어 공간이 정해져 있던 다른 캠핑장보다 훨씬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그렇게 한가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혼자 텐트를 치는 동안 아이들은 언덕 위 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탄다고, 공놀이를 하겠다고 가버렸다. 오래간만에 텐트를 치려니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몇 번이나 재조립했는지 모른다.


한두 시간 정도 혼자 씨름한 뒤에 내부를 정리하고 있을 때쯤 다른 텐트의 주인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역시나 Half term (학기 중 방학)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대다수였고, 아이들은 금세 또래를 만나 친구가 되어 언덕을 뛰어다니며 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부부가 아닌 엄마 혼자 아이들과 온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거기다 딱 봐도 외국인이니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긴 했다. 뭐 그래 봤자 그동안 먹은 짬밥이 있으니 이젠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만.


첫날밤에 또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지만, 방수용 스프레이 덕분인지 난장판이 되는 건 조금 막을 수 있었다. 그래도 물이 새긴 했지만 말이다.


내게 있어 캠핑의 최대 문제점은 바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거다. 고요한 집안에서 암막 커튼 치고 자다가, 온갖 소리가 생중계되는, 특히 빗소리가 귀를 때려 박는 곳에서 잘 잘 수가 있나... (그런데 아이들은 잘도 자더라. 부럽게도..)


그리고 혼자 아이들과 캠핑 올 때 문제점은 내가 쉴 수 없다는 거고. 혼자 차 트렁크 하나만 믿고 오는 거라서 남들처럼 접이식 의자를 가지고 오거나 하는 건 생각할 수 없다. 편의보다는 간략함을 추구해야 하니까. 그러다 보니 몸이 불편하다. 그러니까 새벽 4시부터 깨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이런 경험 자체를 포기하진 않을 것 같다. 일단 아이들이 있긴 해도 내 마음대로 일정을 짤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히 모든 걸 계획해서 움직이는 남편과의 여행보다는 느슨해서 좋고. 무엇보다 눈이 즐겁다. 캠핑장에서는 벽으로 둘러싸인 숙소와는 다른, 보다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하니까. (귀는 괴롭지만...)


이렇게 나와 있기에 이직 전에 생각할 틈도 조금 생겼다. 퇴사 전에 얼마나 바빴는지, 끝났는데도 아직 달리기를 멈추지 않은 그런 기분이었다.


좀 통속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또 하나의 챕터가 마무리되었다. 이번의 퇴사는 이전의 퇴사들보다 좀 더 아련했고 아쉬웠다. 무엇보다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쉬워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딱히 때려치우자, 라는 마음으로 결심한 게 아니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정이 뚝 떨어질 만큼 싫어져서, 이젠 정말 지긋지긋해서 헤어진 연애보다 어쩌다 헤어지게 된 연애가 좀 더 핑크빛으로 포장되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는 또 어떤 챕터가 펼쳐질지 몰라도 일단은 온전히 열심히 쉬고 싶다. 쌓여있을 이메일을 걱정하지도 않고, 진행 상황이 걱정되는 프로젝트 따위도 생각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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