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직원을 해고하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 혹은 가성비 떨어지는 연료교체 하듯 물갈이하기 위해.
그럼 해고당하는 이유는 뭘까.
비슷하다. 회사가 잘라내야 하는 숫자에 운나쁘게 자신의 부서, 업무, 혹은 직위가 포함되어 있거나, 아니면 내가 바로 교체당해야 하는 가성비 나쁜 연료이기 때문에.
회사는 어떤 식으로 직원을 해고하는가.
영국에서 여러 번 이직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해고를 봤는데, 대충 기억나는 것만 적어 보자면,
구조조정 (restructuring)을 통해 조직의 한 부분에 속하는 사람을 모조리 잘라내는 것.
말 그대로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그 업무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죄다 실직자가 되는 경우다. 사기업에서 볼 수 있는 경우이고, 가장 두려운 종류의 해고라 할 수 있다. 내 존재를 어필할 틈도 없이 그냥 뭉텅이로 갈려 나가는 거니까.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을 통폐합하면서 새로 생긴 일자리를 두고 기존의 사람들을 경쟁하게 두는 방식.
즉, 팀원이 각각 10명인 팀 1, 2를 합쳐 총 15명이 되는 팀 3을 만드는 거다. 이 경우 팀 1, 2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력에 상관없이 모두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새로 이력서를 낸 뒤 재채용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건 공무원 할 때 가장 많이 본 방식이다. 영국 public sector에서 사람을 해고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기 때문에, 가장 많이 선호하지 않나 싶다. 이런 방식을 쓰게 되면, 몇몇 사람들은 알아서 다른 곳으로 이직 준비를 하고, 조직이 잘라내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는 채용 불합격을 알려주면 되기 때문이다.
채용 불합격 판정을 된 사람들은 대기조에 들어가게 되는데, 3개월이 되도록 그 공무원 조직 내에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하게 되면, 그 사람은 조직에 필요 없다는 증거가 되어 해고시킬 수 있게 된다.
구조조정까지는 아니지만, 그 사람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의 권한을 줄이거나, 직위를 낮춤으로써 알아서 상대방이 나가도록 하는 방식.
이건 사기업에서도 봤고 대학에서도 봤다. 대학에서는 학과장 (Head of School)까지 지낸 사람에게 모종의 이유를 들어 일반 교수로 강등시키는 방식 등을 쓴다. 사기업에서는 자신과 같은 직위였던 사람을 임의라고는 하지만, 그 사람의 상사로 만들면서 더 이상 그 사람의 자리가 없다는 압박을 주기도 하고. 팀원을 다른 팀에 부속시킴으로써 이름만 남게 해서 권한을 줄이기도 하고.
Voluntary redundancy, 한국어로 따지면 명예퇴직, 혹은 희망퇴직에 해당하는 방식.
보통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있을 때, 특히 공무원 조직에서 자주 쓴다.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에 한해, 퇴직금을 줄 테니 알아서 나가라는 방식이다.
참고로 예전에 공무원을 하고 있었을 때, 희망퇴직을 신청한 사람이 복귀 금지 기간이 지난 뒤 재취업을 신청해서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사람들의 반응이 무시무시했었다. 정책의 부실함을 교묘하게 이용해 돌아온 사람의 영악함을 칭찬하는 것과 별개로, 사람들은 조직이 그 사람에게 일 년 동안 놀다 올 휴가 비용을 댄 거나 마찬가지라고 분개했으니까. 물론 그 사람도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6개월도 못 버티고 다시 퇴사했다.
그 외 개인의 행실이나 회사에 입힌 손해 등을 따져서 징계해고를 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긴 있고. 계약직의 경우, 간단하게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음으로써 쫓아내는 방법, 혹은 Probation period (수료기간) 동안 어느 정도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조직과 마찰을 일으킬 경우 해고시키기도 한다. 그나마 그때가 가장 빠르게 해고시키기 좋은 시기이기 때문에.
그럼 해고를 당하지 않을 방법은 뭔가?
당연하지만, 회사가 버리고 싶지 않은 인재가 되면 된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부서가 갈려나가기 전에 이미 다른 부서로 발령받아 목숨을 보전했거나, 통폐합된 조직의 한자리를 재채용의 여부와 관계없이 따놓고 있거나, 아니면 그 새로 개편된 조직의 우두마리로 승진할 기회마저 있을 테니까.
그럼 해고를 당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뭔가?
당신의 존재감이 숫자에 불과하면 그렇게 된다. 당신이 팀에서 뭘 담당하고, 뭘 잘하는 누구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팀원 1로 존재하면 해고당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당신을 해고시킬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는 상사와 싸우면 된다. 조직 개편을 생각할 때, 개편 담당자는 당연히 새로운 팀에 대한 비전을 그리게 된다. 팀원은 몇 명 정도가 적당하겠다, 그 팀원의 일 분배는 이 정도가 되면 좋겠다, 그러려면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몇 명 영입해야겠다, 그 사람들은 일을 수행할 때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 등등.
그렇게 온갖 고민을 하고 있는 상사에게 당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대신, 얼마나 이 모든 게 부당하고, 그 사람이 내게 어떤 스트레스를 주고 있고, 내가 얼마나 화가 나있으며, 이걸 주도하고 있는 그 사람이 얼마나 개자식인지 가감 없이 표현하면 해고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사표를 집어던지고, 다신 그 사람과 이 업종에서 만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된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그 상사에게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 인재인지를 어필하는 게 낫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면서.
아니면 해고를 당하기 전에 알아서 다른 곳으로 이직하면 된다. 이별각을 재고 있는 연인에게 먼저 이별 통고를 하는 거다. 네가 날 버리는 게 아니야, 내가 널 차는 거지, 이런 마음으로.
왜 이런 소릴 하고 있느냐.
결국 A가 해고당했기 때문이다.
10년을 이 회사에서 일했고, 그래서 괜찮다고 여긴 건지, 회사를 호구로 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재택근무라고 해도, 업무보다는 꼼수를 써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당연히 업무 실적이 줄어들었고, 위에서 눈치채기 시작했다.
Performance 얘기가 나올 때마다 아직 새로 맡은 업무에 서툴다는 얘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 탓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열심히 일할 의사가 있는데, 회사 차원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모르는 걸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뻗대기까지 했다.
거기다 임원을 상대로 성질까지 부려댔다. 내 근무시간은 여기까진데,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고 도리어 화를 내면서.
그렇게 대치 상태가 4개월 동안 지속되다가 결국 회사가 결정을 내렸다. 겉으로는 자발적 퇴직. 실상은 1주일 안에 소란 일으키지 말고 나가라는 압박 해고.
기분이 착잡했다.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아 몇 번이고 경고를 줬는데도, 내가 고작 1주일 동안 휴가를 다녀온 사이 참지 못하고 또 임원에게 보낸 날 선 메일을 확인했을 때는 기가 찰 정도였다. 도대체 왜 저러나 싶었다.
회사 생활을 안 해본 것도 아니면서. 아니면 한 직장에서만 계속 있었기에 설마 여길 평생직장이라고 착각이라도 한 건가. 회사가 자신을 버릴 일은 없다고?
나는 이전의 직장들에서 15년, 20년을 일한 사람도 단 하루 만에 책상을 빼앗기고 동료들과의 연락조차 차단된 경우를 몇 번 본 적 있다. 직원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원 치료를 받아 해고가 유예된 경우를 본 적은 있어도, 그 해고 사실이 번복되는 건 본 적이 없다.
결국 회사는 회사의 이익과 효율을 우선순위로 두고 굴러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팀이라도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구성원 개개인의 안녕보다는 당연히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조직의 결과물을 우선시하게 되어 있다. 그게 지켜지지 않을 시 다음에 목이 잘리는 건 내가 될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속이 답답해져 오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