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캠핑에 낭만 따윈 없다

by 민토리

스페인. 뜨거운 태양의 나라.

찬란한 햇살과 올리브 나무. 해변가를 따라 줄 서있는 야자수.

모래사장 위에 놓인 간이 바 (bar)에서는 레게톤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파라솔 아래 누워 햇빛을 만끽하는 사람들.


8월 여름의 끝자락, 스페인 해변가의 캠핑장에서 보낸 5일.


...


여름은 물론 내가 그동안 보낸 휴가 전체를 통틀어 감히 최악이라 불릴만한 경험이었다.

시시각각 떨어지는 땀방울만큼이나 인내심이 바닥을 치고, 수분을 잃고 쪼그라든 과일처럼 인간애가 증발하고, 미지근하게 데워지는 물처럼 끊임없이 머릿속이 데워져 멍해지는 그런 기분.




발단은 작년 여름이었다.

우리는 아이들 여름 방학 때마다 스페인에 와서 한 달 정도를 보내곤 하는데, 8월이 생일인 첫째가 작년에 자신의 생일을 맞아 캠핑을 가고 싶다고 했다.


보통 스페인에서 여름의 캠핑장 예약은 최소 5일 단위로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년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그게 올해로 옮겨졌다. 나는 올해 봄쯤에 미리 알아두었던 캠핑장에 연락을 한 뒤 예약을 해뒀고, 그에 따라 여름휴가 계획도 맞춰 짰다.


바닷가에서 5분 거리. 캠핑장 내에 야외 수영장은 물론, 아이들 놀이기구가 있는 수영장이 따로 있고, 아이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는 캠핑장이라서 나름 기대가 많았다.


정오가 넘어 도착했지만, 햇볕이 너무 강해 도저히 텐트를 칠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 아이들과 캠핑장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차가운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시키고 기다렸다. 냉방도 되지 않아 그냥 앉아만 있는데도 슬쩍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차라리 후다닥 텐트를 치고 수영장에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 텐트를 치기 시작했는데...


와... 뼈대를 세우기만 했을 뿐인데 땀이 미친 듯이 흘러내리고 내리쬐는 햇살이 살을 파고드는 기분이 들었다. 36도의 날씨를 얕본 대가로 나중에는 머리가 핑핑 돌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덤.


아이들은 초반에 조금 도와주다가 더워서 그늘 아래에 뻗어버리고, 나 혼자 2시간 남짓 걸려 텐트를 치고 캠핑 준비를 마쳤다. 그대로 뻗어버리고 싶었는데, 더워서 뻗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갔는데... 물이 시원하기는커녕 미지근한 거 아닌가. 거기다 아무리 주위에 파라솔을 둘러놨다고 해도 바람 한점 불지 않아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샤워를 하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도 선선해지기는커녕 똑같이 더웠다.

밤 11시가 넘자 아이들이 캠핑장을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고,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우리 맞은편 캠프사이트에서 켜둔 티브이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렇게 더위와 소음의 대환장 파티 속에서 첫 번째 밤을 넘긴 뒤, 이틀째 날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바로 근처 대형 슈퍼마켓부터 찾았다. 나는 보통 캠핑 갈 때 전기가 필요하지 않은 것들로 필수품만 챙겨가자,라는 주의인데, 이번에는 선풍기를 사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거라도 없으면 정말 미칠 것 같았기에.


그렇게 5일 동안 아이들과 나는 수영장에도 갔다가, 바닷가에도 갔다가, 야외 활동을 포기하고 영화를 보거나 대형 쇼핑몰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어떻게 '버텨냈다'.


캠핑장 내에서 티브이를 틀어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노년의 남녀들. 벌거벗고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지나가다가 내 텐트와 연결된 전기선을 뽑아놓고도 사과도 없이, 다시 연결하지도 않고 가버린 사람.


내 아이들에게 스페인어로 '스페인에서는..'라고 시작되는 잔소리를 늘어놓던 남자. 영화관에서 줄곤 폰을 켜서 뭘 확인하거나, 심지어 화면을 찍어 SNS로 실시간 챗을 하는 사람들. 내 주문을 받지 않고 서로에게 미루기만 하다가 아주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내며 내 앞에 서던 음식점 종업원 등.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그만큼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지만, 이번 휴가 때는 유독 저런 인물들을 매일 한 명 이상은 만나게 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문자로,


"I'm losing my love for Spainish people'


라고 말했는데, 남편은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 몰라도 내게는 80% 정도 진심 섞인 말이었다. 표면적으로나마 예의 바르고 호의적인 모양새를 꾸며내는 영국인들과 달리 스페인인들이 직설적이고 빈말을 안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상황과 맞물리니 정말 예의 없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렇게 5일을 보낸 뒤, 우리는 무얼 얻었는가.


아이들과 나는 어떤 동지애를 얻었고, 햇볕에 아주 잘 그을린 피부를 얻었으며, 나는 다 깨져버린 손톱과 피부트러블과 근육통, 그리고 잔주름을 얻었다.


분명 가기 전에는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던 거 같은데, 들고 갔던 책은 반도 읽지 못했고, 쓴 글이라고는 '덥다'라는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들 뿐이다.




내 경험을 토대로 했을 때, 스페인 8월의 캠핑은 이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지구 온난화는 지어낸 말이라고 믿는 분

- 삶이 너무 편해 지겨운 분

- 인간애가 넘쳐나서 온 세상이 꽃밭이라고 믿는 분

-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 비워내고 싶은 분

- 더위 따윈 문제없다고 자신하시는 분


이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여름에는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휴가 가세요. 그래야 충전할 기력도 생기고 다시 더위를 맞이할 힘도 난답니다. 그러고 나면 스페인에서 보내는 8월의 여름도 낭만적이겠죠.


여름의 음료로는 Vermut (Vermouth, 달달한 와인, 보통 얼음, 오렌지 조각, 올리브를 넣어 줍니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맥주는 아무리 시원하게 줘도 빨리 마시는 게 아니면 미지근해지는데 이건 얼음이 들어가 있고 적당히 달아서 첫 시작으로 좋거든요.


다들 시원한 여름 보내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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