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와 또 한판 싸우고 말았다.
둘째 아이가 럭비를 하고 있는 동안 첫째 아이는 옆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다가 추워지자 차 안에서 기다리겠다고 들어갔다.
후두두 몰아쳤다가 멀어지는 빗방울. 젖은 잔디밭 위에서 공을 쫓아 달리고 엎어지고 뒹구는 아이들. 처음에는 춥다고 옷을 겹쳐 입었던 둘째 아이는 어느덧 반팔에 반바지로 땀나게 뛰어다는 중이었다.
반면에 차 안에 앉아 최근에 갖게 된 휴대폰으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게임을 하고 있는 첫째 아이.
이상하게 속이 답답해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처럼 럭비나 축구를 하라고 강제로 떠밀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럴 때 밖에 나와 뛰기라도 하면 좀 좋은가. 저 애는 왜 저렇게 폰만 붙잡고 있는 건가. 안 그래도 요즘 목이 아프다고 하던데 저게 다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닌가.
그렇게 잔소리의 총알이 속 안에 차곡차곡 쌓이다가, 기어코 차 안에 들어선 뒤 아이에게 퍼붓고야 말았다.
너는 운동을 언제 할 거냐, 이렇게 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집에 가서는 컴퓨터고 폰이고 절대 못할 줄 알아라, 등등.
아이는 당연히 반발했다. 나도 어제 테니스 하고 왔다고. 주중에는 방과 후 활동으로 농구와 배구도 하는데, 왜 내가 운동을 아얘 안 하는 것처럼 말하느냐고.
맞는 말이었지만, 나 역시 발끈해 그럼 오늘 넌 운동을 아무것도 안 할 거냐고. 이렇게 하루 종일 폰만 들여다보다가 시간을 보낼 거냐고, 또 잔소리를 퍼부었다.
아이는 일요일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라며 내게 화를 냈고, 거기에 발끈해 나 역시 화를 내며 대판 싸우고야 말았다.
그렇게 왕창 싸운 뒤 마음이 무척 복잡해졌다.
따지고 보면 아이가 진짜 게으르고 운동을 싫어하고 그런 건 아니다. 둘째가 럭비를 하게 된 것도 첫째가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고, 그 후 첫째는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하는 럭비와 축구에서 멀어져서 이제는 테니스나 피구, 배구, 농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니까. 거기다 스페인에서 한 달을 보낼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영장에 가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던 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아이를 불안하게 쳐다봤다. 왜냐면 집에서는 정말 아이가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으니까.
올해 9월 (영국의 새 학기는 모두 9월에 시작한다)에 Secondary School (한국의 중/고등학교 과정에 해당되는 기관. 영국에서는 통합과정으로 5년을 보낸다)에 들어간 아이는 입학일 하루 전에 휴대폰을 선물 받았고, 그 후 매일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친구들과 연락하기 바빴다. 학교에서는 폰 사용 자체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방과 후에 아이들은 미친 듯이 서로를 향해 메시지를 쏟아 내고 있는 듯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얼마나 신나겠어. 제 인생 처음으로 자신의 휴대폰을 손에 넣은 건데. 거기다 이젠 나더러 폰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고서 바로 제 친구들과 연락할 수 있는데.
그렇게 주야장천 폰을 붙들고 있다가 묻는다. 컴퓨터를 사용해도 되냐고. 우리는 주중에 아이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티브이를 보는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해 놓는데, 그 시간을 써도 되냐고 묻는 거다. 영국에서는 아이들이 보통 3시에서 3시 반 사이에 하교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온 뒤 남편과 내 근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대충 1시간 반에서 2시간 사이의 갭이 생긴다. 그러니 그 시간은 아이들이 숙제를 하고 우리가 재택근무를 마칠 때까지의 시간인 셈이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안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것마저 불안해졌다. 매일 1시간의 스크린 사용 시간 외에 개인 폰을 이용하는 시간. 첫째가 너무 많은 시간을 그런 곳에 활용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머릿속에 온갖 뉴스와 칼럼의 글들이 스쳐 지나갔다. 스마트폰 사용이 아이들의 지능 정서 발달에 끼치는 영향, 높아져 가는 아이들의 비만율,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아이들의 행동 변화 등등.
동시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도 있었다. 대충 게임 폐인, couch potato 하면 나오는 그런 이미지들.
그렇게 경고등이 울리면 또 잔소리 총알이 장전된다. 아이의 폰 사용량을 확인하고, 이것저것 집안일을 시키고, 스트레칭을 시키고, 숙제는 했냐고 또 물어보고, 등등.
아이는 물론 아주 귀찮아하고, 하기 싫다고 뻗대고, 반항하고, 그러다가 나와 싸우고..
....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다투기 시작한 아이와 나.
처음에는 이게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머리 좀 컸다고 더럽게 말도 안 듣는구나, 하고.
반면에 아이는 내가 잔소리가 너무 많아졌다고 투덜댔다. 실제로 어떨 때는 나도 왜 이렇게 아이의 행동이 맘에 안 드나 싶어 내 스트레스 레벨을 점검해보기도 했다. 괜히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생각해 보니 과도기가 아닌가 싶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당연히 나는 아이가 뭘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학교가 딱히 가까운 것도 아니라서 등하교도 같이 했다. 숙제가 뭐가 있는지, 가까운 친구가 누군지도 알고, 방과 후 활동 역시 다 알고 있었다. 한국처럼 등굣길이나 집 근처에 사립 학원이 즐비한 것도 아니라서, 영국에서 방과 후 활동이란 부모가 데리고 가지 않으면 가지 못할 곳이 태반이니까.
그랬던 초등학교 (Primary school)과 달리 중고등학교 (Secondary school)부터는 아이들이 혼자 등하교를 하고, 폰을 통해 친구들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고, 방과 후 활동 역시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들의 범위가 넓어진 데다가 부모의 허락이 아닌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신청하고 참가하는 구조라 내가 어떻게 참견할 구석이 없다.
원래 부모인 내가 하나하나 간섭해서 해결했던 일들을 이제는 아이가 독단적으로 해결하기 시작한 거다. 학교에서 과제와 운동량을 소화하고 오는 아이는 당연히 집에서는 쉬거나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하고, 그게 내 눈에는 예전과 비교해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거다. 부모인 내가 예전처럼 해줘야 하는 일이 없어졌으니까.
학교에서 아이에 대한 평가는 꽤 좋은 편이다. 그럴 때면 우리 눈에만 아이가 부족해 보이는 건 아닌가 싶다. 누구보다 아이를 응원해도 모자란데 이토록 부족한 점만 꼬집어 보고 있다니. 아마도 여기서 정신 차려야 하는 건 내가 아닐까.
잔소리라는 총알을 장전하고 쏘아대기 전에 일단 총구부터 틀어막고 생각해 봐야겠다. 이 잔소리의 근원지가 진짜 사실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내 개인의 불안, 혹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러다 보면 이 과도기도 어느덧 지나가서 우리는 나름 절충안을 가진 새로운 관계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