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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Mar 13. 2020

Covid-19: 영국은 이제 시작이다

13. 이제야 불어오는 코로나바이러스

1. 직장에서

이번 주 초반에 직장이 있는 지역에 처음으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왔다고 했다.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오늘. 11시쯤 영상 회의를 하고 있는데 새로운 이메일 하나가 화면 구석에 떴다. 일단 무시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사무실 주위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게 뭔가 싶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회의에 참가하고 있던 한 사람이 말하길, 방금 정부기관장한테 단체 메일이 왔는데, XX부서 사람 한 명이 확진자로 판명 났다고 했다. 지금 있는 정부기관은 규모가 꽤 커서 건물이 두 개의 동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내가 일하는 건물이 아닌 다른 동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두 개의 건물이 아주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데다가 다들 Open Office (사무실 구분 없이 그냥 하나로 뚫려있는 공간, 거기다 따로 복도가 없어 회의실에 가거나 다른 어디로 가려면 사무실을 중간을 가로질러가야 하는 구조)에서 일하는 구조라서 그 뉴스를 듣고 사람들 사이에 여파가 컸던 거였다. 우리가 속한 정부 부처 최고 책임자의 이메일은 확진자 소식과 더불어 그 사람은 이미 NHS의 보호 아래 있고, 그 사람과 접촉했었던 모든 사람들은 이미 연락을 받았으며, 다른 어떤 징조가 없는 한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라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12시 반 점심시간을 거친 회의를 마치고 내일 있을 부서 연합회 일정에 대해 의논하며 다른 부서장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또 사람들이 몇몇 모여 웅성거리는 게 보이더니 우리가 들어가자 내일 부서 연합회가 최소 되었다는 말을 전해줬다. 메일을 확인하니 우리가 회의에 가있는 동안 리더십팀 사이에 여러 메일이 오고 갔고, 결론은 사람들이 내일 있을 부서 연합회에 대해 불안해한다, 그러니 일정을 연기하는 게 어떻겠느냐, 이런 말들 끝에 Division Director로부터 취소를 결정했다는 메일이 날아와있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나는 내 부서 사람들에게 내일부터 굳이 나오는 게 불필요하거나 불안하다면 재택근무를 해도 좋다고 말했다. 


2. 휴가를 취소했다. 

원래 우리는 부활절 방학을 맞아 스페인의 섬으로 휴가를 갈 생각이었다. 올해 초에 이미 예약을 다 끝냈는데, 우리는 저번 주에 40%의 손해를 감수하며 일정을 취소했다. 최소 하게 된 계기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혹시 감염되면 어쩌지, 하는 이유보다... 그렇게 갔다가 만약 확진자가 발생하거나 해서 섬이나 호텔이 폐쇄되었을 경우가 걱정되어서였다. 즉, 그렇게 어떤 이유로 지역이나 호텔이 폐쇄 조치에 취해졌을 때, 과연 영국 정부는 영국인이 아닌 우리를 영국으로 데려올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 거다. 남편과 나, 아이들 우린 모두 영국 시민권자가 아니니, 아무래도 우린 영국으로 데리고 와야 할 사람들 중 가장 뒷줄에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남편은 스페인 사람인데, 그럼 스페인 정부는 우리를 섬에서부터 나오게 해 줄 것인가, 그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그들이 한국인인 나까지 데리고 나올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니 한국 정부에 요청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럼 우리는 아주 높은 확률로 아마 그곳에 오랫동안 갇혀있을 가능성이 많겠지.. 그리고 내가 영국에서 계속 살고 있다고 해도, 한국인 여권을 가진 사람인데 아예 입국 자체가 거부될 수 있지도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아무래도 위험도가 너무 높아서 결국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요즘은 난데없이 예전에 '그래도 같은 가족으로 있으려면 다들 같은 여권을 가지고 있는 게 좋다'라고 말씀해주신 한국/독일 혼혈 친구의 한국인 어머니 말씀이 자꾸 떠오른다. 그분들이 한국인으로 남아 있기 싫어 한국인 국적을 포기하고 남편의 국적을 따라간 게 아니라 이미 이런 현실 고민을 몇 번이고 하신 뒤의 결정이었겠구나 싶어 새삼 잠깐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었던 스스로가 얼마나 현실을 안일하게 보고 있었는지 부끄럽기고 하고, 그분들께 죄송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럼 우리는 무슨 여권을 공통으로 가져야 할까. 남편과 나는 둘 다 영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굳이 영국인 국적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필요성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 생각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아니, 브렉시트를 계기로 마음이 도리어 좀 돌아섰지;;). 우리는 그럼 한국이나 스페인에 돌아가 정착할 것인가. 아직 그럴 생각도 없고 계획도 없다. 그리고 내가 백번 양보해 스페인 국적을 가지는 게 가족이 함께 있을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한다 하더라도, 스페인에서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기본 생활 스페인어 정도의 말을 하는 내가 스페인 국적 시험에 통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거다. 무엇보다... 나 같은 경우, 다른 어떤 여권을 가진다는 건 내 한국인 국적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기 때문에 도저히 쉽게 마음먹을 수가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한국인 국적을 대체할 다른 어떤 국적도 찾지 못했다는 게 맞겠지만... 그래서 이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3. 가족

어제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왔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아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아이들 재우고 얘기하자고 했다. 그 말에 온갖 불안하고 위험하고 걱정스러운 생각들이 다 스쳐 지나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어머니 정기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자궁 안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거다. 다행히 암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빨리 제거를 하는 게 낫겠다고 하는데... 문제는 1) 병원에 인력문제로 언제 수술 날짜가 나올지 모른다는 거고, 2) 지금처럼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 상황에 수술을 하는 게 과연 안전한가, 하는 거였다. 일단 병원이 연락을 해준다고 하니 기다리자, 하는 분위기 이긴 한데... 거기다 또 하나 문제는 시아버지 역시 골반 수술을 받기 위해 얘 약해 놓은 상태라는 거다 (여기서 잠깐, 한국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여기는 노년층들을 대상으로 Hip replacement 수술을 상당히 자주, 많이 한다. 영국에서도 많이 봤는데, 이번에 시아버지 경우를 통해 들어보니 스페인도 별반 다르진 않은 모양이다;; 한국도 그런가? 한국에서는 골반 수술했다는 어르신 분들을 많이 못 뵌 거 같은데? 아닌가요?). 시어머니는 운전을 못하셔서 어딜 가야 하거나 대형 슈퍼에 가시거나 하는 것들을 모두 시아버지와 함께 하신다. 그럼 시아버지가 수술 후 장기간 못 움직이시면 두 분 다 어떻게 생활하실까, 하고 안 그래도 걱정을 하긴 했는데, 시어머니도 수술을 받으실지 모른다고 하니 더 걱정이다.  


하긴 이런 문제야 가족과 떨어져서 해외생활을 하면 언제고 닥치는 문제다. 내가 떠나온 본국의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난 당장 달려갈 수도, 당장 뭘 어떻게 도와줄 수도 없다는 것. 내가 그렇게 내 아버지를 떠나보낸 것처럼... 이번에도 우리가 떨어져 살기 때문에 바로 곁에서 도움을 드릴 수 없다는 게 죄송하면서도 걱정이 되지만, 요즘 상황에 새로 드는 생각은... 우리가 시간을 내든 말든 어쩌면 우리는 아마 오래 그분들을 보러 갈 수 조차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유학. 국제연애. 국제가족. 해외생활. 이민. 이런 것 모두 사실 국제화란 이름 아래 내가 할 수 있게 된 것들이다. 내가 살고 있던 곳에 가족과 친구들 모두를 두고 지구의 반대편에 혼자 와서 살면서도 그나마 괜찮을 수 있었던 건, 정보기술의 발달로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과의 연결선을 잡고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수단이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새삼 두려워진다. 나라 간 문들이 차곡차곡 닫히는 걸 보면서, 당연하게도 자국민을 우선으로 보호하는 정부의 정책에서 내가 그 사각지역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직면하면서...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아마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발이 묶여 버린 것 같은, 하늘이 닫혀버린 것 같은 묘한 답답함. 


영국은 이제 시작이다. 지금 예측하기를, 영국은 아마 현재 이탈리아 상황보다 3-4주 정도 뒤처져 있을 거라는 분석과 아마 10-14주 후에 최고치를 찍게 될지 모른다는 것. 아직 영국에 폐쇄조치는 내려지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부활절 방학까지 'Business as usual'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어쩌면 부활절 방학 후 개학이 미뤄질지도 모른다. 의사인 친구는 매일 문자를 받는다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전용 라인인 111 그리고 out of hours (야간 근무 종류)에서 계속 일을 하러 올라고 요구한다고. 스페인에서 간호원으로 일하시는 고모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모든 간호원, 의사들은 휴가를 쓰는 게 금지되었다고 했다. 약사인 친구 역시 장기처방 중인 약을 미리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들이 늘었다고 했고... 


그리고 오전 뉴스에 나온 트럼프의 유럽 26개국을 향한 자국민을 제외한 출입 금지령을 시작으로, 오후가 되니 유럽 각국에서 휴교령, 출입국 금지 등등 다양한 소식들이 들려온다.  


안 그래도 겨울이 유달스레 길다고 생각했는데... 영국은 초반에는 홍수로 난리가 났는데,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다. 햇빛 나는 봄은 도대체 언제 오려나... 아니, 지금 상황을 보니 봄이 와도 아마 봄 같지 않을 것 같다. 


Stay s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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