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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Oct 24. 2024

영국 중산층 쇼핑 탐구 생활 (1)

얼마 전 회사에서 있었던 워크숍을 마치고 저녁 식사 후에 entertainment랍시고 진행자를 섭외해 다양한 퀴즈쇼가 펼쳐졌는데, 그중 하나는 진행자가 Axxa 슈퍼마켓에서 사 온 물품들의 가격을 맞추는 게임이었다. 


도대체 쇼핑 리스트 가격을 맞추는 게 뭐가 재밌는지 모르겠지만, 여러 개 그룹으로 나뉜 사람들은 열성을 다해 눈앞에 나타나는 물건의 값을 추측해 가격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선물용으로 출시된 디퓨저 세트, 특정 브랜드의 시리얼 박스, 초콜릿 선물 상자, 세재, 휴지 등등. 


대략 15개의 물품이 지나가고 진행자는 각 그룹의 대표자더러 총합계가 적힌 종이를 들고 앞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진행자는 앞에 나온 사람들을 높은 가격 순에서 낮은 가격 순으로 배열한 뒤 정답을 공개했는데, 결과가 나온 뒤 가장 높은 가격을 적어낸 이들을 향해 진행자가 말했다. 


"I told you, they are from Axxa, not Waitxxse!" 


그 말에 사람들은 웃고 말았지만, 이것만큼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의 소비 패턴을 보여주는 게 있을까 싶었다. 


영국에서는 특이하게도 소셜 클래스에 따라 주로 쇼핑하는 슈퍼마켓이 나누어진다. 


영국의 대형 슈퍼 마켓 시장은 독일 브랜드인 Lxxx과 Axxi, 원래 미국의 월마트가 넘어온 Axxa, 영국의 브랜드인 Txxco, Moxxson, Sainxx's, Mxx, Waitxxse가 주로 점령하고 있다. 그 외 규모가 조금 더 작은 Cxxp, Icexxxd, Farmxxx 같은 게 있지만, 뒤의 두 군데는 주로 냉동식품을 취급하고, Cxxp 같은 경우는 한국으로 따지면 농협 같은 분위기에 식료품 위주로 판매하기 때문에 위에 말한 슈퍼마켓들과 같은 선에서 두고 비교하기에는 좀 그렇다.  


영국의 경영대학에서 competitive strategy (경쟁 전략)을 공부할 때도 이 대형 슈퍼마켓 체인들은 훌륭한 예로 쓰이곤 하는데, 그만큼 그들의 입지도나 주 고객층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대략 20년 전 내가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만 해도 Lxxl이나 Axxi 같은 브랜드는 저가에 유명브랜드의 짝퉁을 파는 곳으로 유명했다. 묘하게 포장지를 보면 유명 브랜드의 상품이 연상되는데 실제로 가격은 그 브랜드의 상품보다 절반 이상 싼 것들을 파는 곳. 


대형마켓들보다 크기도 작은 편이고 진열대가 제대로 정리 안된 곳도 많고, 식료품이나 기본 물품 외에는 매주 1-2번씩 다양한 상품전을 열어서 잡다한 물품을 파는 곳. 


그랬던 두 곳이 지난 십여 년 동안 영국의 주류 대형마켓인 다른 곳들을 위협할 만큼 몸집이 커져서 이제는 다른 슈퍼마켓에서도 그들과 가격대를 맞추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Axxa는 보통 커다란 대형 마켓 규모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식료품은 물론이고 옷이나 잡다한 잡화용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나도 유학생 시절에 자전거를 타고 30분 걸리는 지점에 일부러 찾아가서 싼 냄비나 그릇 같은 걸 사서 어깨에 짊어지고, 자전거에 매달고 돌아온 적도 많다. 


그 외 Txxco나 Sainxx's는 시내에서도 작은 사이즈로 종종 볼 수 있는 슈퍼마켓이고 (보통 Express라고 적혀 있으면 규모가 작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지점들은 대부분 의류와 잡화용품, 카페, 주유소까지 있는 큰 규모다.  


Moxxson은 Txxco나 Sainxx's와 비슷한데 Marketplace라며 약간 시장 같은 분위기로 꾸며서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대충 다른 두 슈퍼마켓과 비슷한 레벨이라고 보면 된다. 


그 외 Mxx와 Waitxxse가 있는데 Mxx야 중산층이 선호하는 의류와 질 좋은 식료품, 선물로 하기에도 좋은 음료, 과자 등을 파는 것으로 유명하고, Waitxxse는 영국의 유명 백화점 브랜드인 John Lxxx와 같은 계열의 슈퍼마켓 체인이다. 


당연히 이 두 곳은 다른 슈퍼마켓에 비해 가격대가 높고, 사람들은 농담처럼 그 동네의 수준을 알고 싶으면 Waitxxse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라는 말도 한다. 


참고로 2017년 로이드 뱅크 (Lloyd's Bank)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슈퍼마켓 근처에 사는 게 집값에 £36,000 (대략 원화로 6천4백만 원 정도)를 더한다고 한다. 이걸 실제로 부동산 마켓에서는 "The Waitrose Effect"이라고 부른다. 


그럼 영국의 중산층은 어디서 쇼핑을 하는가. 


예전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꽤 뻔했다. 워킹클래스라면 냉동식품을 파는 슈퍼마켓이나 Axxa에서, 중산층이라면 대부분 M/T/S 세 슈퍼마켓 중 한 곳에서, 좀 더 upper middle class로 올라가면 Mxx나 Waitxxse에서. 


그런데 요즘에는 이 법칙도 많이 깨졌다. 물가가 치솟고, 슈퍼마켓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이 경계가 애매해졌다. 예전에는 어수선하고 음침하기까지 했던 Lxxl나 Axxi가 영국이 경제 불황기를 겪으면서 갑자기 다크호스로 떠올랐고, 그로 인해 매장도 싹 개선함에 따라 이제는 이런 곳에 가도 예전의 그런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특히 Axxi 같은 경우 육아 용품이 좋다는 소문이 엄마들 사이에 쫙 펴져서 나도 그때부터 많이 애용했다. 


Mxx는 불황에 직격탄을 맞고 흔들리다가 과감히 매장 수를 줄여 버렸고, 이곳은 다른 슈퍼마켓들처럼 대형 지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제는 규모가 좀 있는 도시, 타운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잘 볼 수 있는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도대체 어디서 쇼핑하는 거냐고? 


여전히 영국의 중산층이라고 하면 M/T/S 중 한 곳에서 쇼핑하는 경우가 많지만, 요즘에는 슈퍼마켓들 사이의 경계가 조금 무뎌졌기 때문에 그런 구분 없이 폭넓게 쇼핑한다. 

차가 있고 경제력도 있으니 굳이 한 곳에만 매여있을 필요를 못 느끼는 거다. 


그래서 그들은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어느 정도의 발품을 파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친구의 남편은 Axxi에서 특별 기획으로 파는 와인을 맛보고 완전히 빠져 버렸는데 그 때문에 집에서 30마일 근처에 있는 모든 Axxi 체인을 돌며 그 지점에 있는 와인을 몽땅 사다 모았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모든 쇼핑은 Txxco에서 하지만 빵이라든지 고기 같은 건 Waitxxse의 것만 산다던지, 뭐 이런 식이다. 




이렇게 알아서 골라 쇼핑을 하는 중산층 가족들이지만, 딱 하나.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았거나 선물을 해야 할 때는 당연히 일정 브랜드 이상의 제품을 사서 간다. 


하우스 파티를 열면 보통 초대받은 이들이 와인이나 초콜릿, 디저트, 혹은 식전 간식 같은 걸 선물용 혹은 나눠 먹기 위해 가지고 가는데, 다들 가지고 오는 걸 보면 Waitxxse, Mxx 제품이거나 아니면 아예 슈퍼마켓 브랜드가 아닌 것들을 사서 온다. 


그 외 이들은 Farm shop 같은 농장에서 파는 유기농 제품이나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집으로 직접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친구들 중에는 아직도 아침마다 유리병에 신선한 우유를 담아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매달 선별된 와인을 보내주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친구도, 아예 신선한 재료들과 레시피까지 보내주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친구도 있다. 


또 참고로 어떤 이들은 슈퍼마켓에서 파는 물품의 질이나 가격을 떠나 그냥 그 슈퍼마켓의 분위기나 그 슈퍼마켓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싫어서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I don't like the people there") 


그리고 이런 기본적인 쇼핑 습관은 다른 소비 행태에서도 드러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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