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Kate Fox가 쓴 책, "Watching the English: The Hiddend Rules of English Behaviour"에서 말하길, 영국인의 쇼핑 패턴은 사회 계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그건 단순히 저가와 고가의 물품을 선택하는데서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중산층 (upper/middle)은 워킹클래스는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중고 가게 (second hand/charity shop)에서 뭘 사는 걸 거리껴하지 않지만, 대신 대놓고 싸다고 광고하는 슈퍼마켓에는 발도 들이지 않을 거란 것. 여기서 말하는 슈퍼마켓은 이름에 보통 'bargain' 혹은 'pound'가 붙은 곳들이고, 신선한 식재료는 거의 없지만 가공된 식료품과 1파운드 언저리의 싼 물품들을 파는 곳을 말한다. 워킹클래스가 많은 타운에는 high street에 이런 가게의 수가 단연코 더 많다.
더불어 "M&S Test"라는 걸 소개했는데, 그곳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의 소비 성향을 분석해 보면 보이지 않는 사회 계급 간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는 설명이다. 요약하자면,
- Upper middle class: 그곳에서 파는 비싸고 질 좋은 식재료를 사는 데는 주저하지 않지만 대신 그곳에서 파는 속옷이나 기본 아이템은 살지라도 절대 그곳에서 파티 드레스나 신발을 사진 않는다. 그곳에서 침대보나 타월은 살지 몰라도 가구를 사진 않는다.
- Middle middle class: 역시 식재료를 사긴 하지만, 아마도 속으로는 비싼 가격을 불평하면서도 질이 좋아 비싼 값을 하는 거라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대신 그 외 휴지나 세재 같은 건 T나 S 같은 슈퍼마켓에서 주로 산다. 그들은 upper middle class 보다 기본 아이템 외에 더 다양한 종류의 의류를 사거나, 가구 같은 걸 살 수도 있다.
- Low middle/ some upper working class: 그들에게 그곳의 음식 (ready meal)은 레스토랑에서 한 끼 식사를 하는 것과 같다. 즉 사치를 부리고 싶을 때 먹는 음식을 사는 곳이라는 것. 그 외 그곳에서 파는 물건을 사치품이라고 인식하기도 하며, 그 슈퍼마켓에서 대부분의 쇼핑을 하는 지인이 있는 경우 'show-off - 잘난 척한다'라고 욕을 하기도 한다.
그 책에 나온 이야기는 2004년에 나온 만큼 조금 오래된 감이 없지 않은데 (2014년에 개정판이 나오긴 했다고 들었는데 읽지 않았다), 일단 그 슈퍼마켓 자체가 최근 몇 년 사이 경기불황에 흔들리며 매장 수 자체를 확 줄였고, 물품 라인도 이제는 음식과 의류, 그 외 인테리어 소품 정도로만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거기다 매장과 제품 라인의 수를 줄이면서 이곳의 매장은 보통 high street (도시나 타운의 번화가, 보통 대부분의 가게나 음식점이 몰려 있다)에 위치하기 때문에 대규모의 쇼핑을 하는 중산층 가족들은 주차가 가능해서 바로 짐을 싣고 올 수 있는 다른 대형 슈퍼마켓 체인이나 아니면 Home delivery를 이용하는 편이다.
대신 그 테스트에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쇼핑 패턴은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중산층은 기본 쇼핑은 자기가 원하는 슈퍼마켓에서 사고, 집에서 입는 옷 (많이 쳐줘도 평상복)이나 속옷 같은 건 살지 몰라도 외출복이나 외투, 특히 파티 드레스, 신발 같은 건 대부분 슈퍼마켓에서 사지 않는다는 거다.
이 이미지를 타파하려고 T나 S 같은 슈퍼마켓에서는 유명한 연예인과 콜라보도 하고, 티브이에 의류 라인만 따로 빼서 광고도 올리고 그러는데, 실제로 인식이 많이 바뀐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그런 곳은 좀 더 편하고 스타일리시한 평상복/ 일상복을 사는 곳이지, 적어도 중산층들에게 주된 쇼핑지는 되지 못한다.
위에서 말한 M&S 같은 경우는 여전히 중년의 중산층 남자/여자들 (특히 50대 이상) 에게 인기가 많은데, 가격대, 품질, 제품의 디자인까지 모두 무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요즘에도 매장을 찾아가면, 연령대가 좀 있는 영국인들이 많은 걸 볼 수 있다.
이건 슈퍼마켓을 예를 든 거고, 그 외에도 영국에는 다양한 high street 브랜드들이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H&M, Primark, Newlook 같은 싸고 대중적인 것들부터 우리가 아는 럭셔리 브랜드까지 갈 것도 없이 정말 다양한 체인점들이 많다. (참고로 영국은 대형 체인점이 발달했다. 즉 어느 동네를 가도 대충 비슷한 가게들을 볼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이것도 웃긴 건 여기서도 대충 계급에 따라 쇼핑 패턴이 드러난다는 거다. 가격대가 싸고 대중적인 가게들과 axxs 같은 온라인 쇼핑몰은 보통 계급을 불문하고 젊은 층 (대부분 십 대에서 20대 초/중반)이 소비한다. 가장 트렌드에 민감하기도 하고, 어린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쇼핑하러 가기에도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들의 옷을 사러 가는 게 아니라면 중산층의 부모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기본템이 아니라면 잘 사지 않는다. 일단 유행과 시즌에 따라 매장에 진열되고 구비되는 옷의 종류가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만약 자신의 취향이 유행과 맞지 않는다면 마음에 드는 옷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고, 섣부르게 입었다가는 묘하게 나이에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가도 자신의 취향의 옷이 준비되어 있는 브랜드의 몇 군데를 골라 이용하는 거다. 최신 유행도 아니고 가격대가 조금 있을지라도, 믿을 수 있으니까.
그 외 워킹클래스가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중산층의 소비 방식은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가격은 둘째치고 그 회사의 디자인, 소재, 스타일, 혹은 그 회사의 운영방침이나 ESG (Environmental Socical Governance) policy까지 찾아보고 소비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그리고 자신의 쇼핑 철학과 취향에 대해 자부심도 상당하다.
일례로 친구가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뭘 쏟는 바람에 옷이 더럽혀졌다고 했다. 그걸 보고 회사의 청소 도우미가 "Just get another one from Pxxck, they are cheap!"이라고 제안해 줬다는데, 그분은 도움을 주려고 말한 거겠지만, 그 일화를 얘기하며 친구는 꽤 불쾌해했다.
"Can you believe it, buying cloth in Pxxck!" (Pxxxck에서 옷을 사다니, 믿을 수 있겠어? - 참고로 Pxxck은 저렴한 의류 매장 체인으로 딱 봐도 뭔가 요란하면서 싸다는 분위기를 풍긴다.)
어이없다는 듯 말했지만 이 말의 진짜 뜻은, '날 그런 곳에서 옷을 사 입는 사람으로 봤다니 = 가격에 연연해서 그런 곳에서 파는 옷을 사입을 정도의 수준으로 봤다니', 그런 거다.
가끔 한국의 매체에서 나오는 것들을 볼 때마다 영국과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건 바로 '고급스럽다/부자다'라는 정의를 그 사람이 걸치고 있는 옷의 브랜드와 가격으로 판단하는 모습을 볼 때다.
"와, 저 사람 봐. 어쩐지 귀티가 나더라니 입고 있는 게 다 (샤 x, 루이 xx 같은 럭셔리 브랜드) 그거잖아. 저거 티셔츠 하나만 해도 몇십만 원 하던데, 저 사람 진짜 잘 사나 보다."
심지어 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미디어에서도 이런 걸 볼 수 있다.
"쟤 금수저잖아. 들고 다니는 가방도 x넬에 신발은 xx 거밖에 안 신는데."
그런데 영국에서는 사실 저런 럭셔리 브랜드를 그렇게 잘 보지 못한다. 실제로 입고 다니는 사람도 코트를 벗어야 아, 저게 그 브랜드구나, 하고 알 정도지 대놓고 로고가 빡, 박힌 걸 입고 다니는 사람은 잘 없다. 설사 그렇게 입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와, 하고 감탄하는 분위기는 없다. 그냥 저 사람 취향이 저런 건가 보다, 할 뿐.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집이 잘 사는 Public school (이튼 같은 사립학교) boys/girls라도 겉으로는 그런 걸 티 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쿨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어 집에서 행사가 있을 때나 제대로 차려입지, 친구들과 만날 때는 딱 그 또래 아이들 답게 유행에 민감하고 어떨 때는 미국의 갱스터처럼 보이려고 발악하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도리어 돈을 과시하는 옷을 입고 다니는 걸 낮은 계급의 상징이라고 여긴다. 상황이나 본인에게 맞지 않은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과하게 치장을 하고, 그러면서도 정작 걸음걸이는 어색하고, 쓰는 말투나 행동이 그에 어울리지 않을 때.
그건 남자도 비슷하다. 고가의 시계를 찼지만, 원래 안 입어본 티가 나는 꽉 끼는 정장 셔츠에, 껄렁거리는 태도에 걸음걸이 하며 투박한 말투에 온몸을 덮는 문신까지.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중산층은 영국의 사회가 모노톤을 유지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혹은 그 때문에 사람들이 영국에 오면 다 촌스러워 보인다고 하는 걸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