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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Oct 25. 2024

영국 중산층에게 돈이란

한국에 있을 때는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영국에 살면서부터 다소 거부감이 들기 시작한 질문두 종류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리고,


"이런 건 얼마나 해요? 연봉대는 어떻게 되세요?"

이와 같은 금전과 관련된 질문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국 중산층은 돈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돈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게 아니라 절대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물론 이건 사적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말한다).


만약 당신이 알게 되지 얼마 되지 않은 영국인의 집에 놀러 갔다가,

"Wow, this looks nice. How much is it?"

하고 물었는데, 그 질문에 열정적으로 답하며 가격은 물론이고 어디에서 샀는데 얼마나 싸게 샀는지 자랑까지 한다면 중산층은 아니다.

그 질문에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나도 모르겠는데,라고 대답한다면 상류층 혹은 그에 근접한 사람이고, 일반 중산층이라아마 어색한 웃음을 짓거나 잠시 할 말을 잃고 굳어버릴지도 모른다.


상류층에게 재력이란 숨 쉬듯 당연하게 존재하는 거라 부를 과시할 필요성을 못 느끼며 (물론 자기네들끼리는 은근히 자기 사업의 주가 변동이나 새로 산 부동산의 시세로 견제하겠지만, 적어도 저런 사소한 집의 가구나 장식품 따위는 그 하나의 가격이 몇백 파운드나 하는 고가의 물품이라도 자랑은커녕 신경 쓸 거리가 안된다.), 중산층에게 재력은 설명하거나 자랑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국의 중산층이 금전적 가치에 초연하다는 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누구보다 경제에 관심이 많고, 언제나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다른 중산층 가족들의 소득과 생활 수준은 어떤지 끊임없이 궁금해하며 자신과 비교하는 존재들이다. 
상류층처럼 초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나 이런 거 살 수 있는 사람이에요'라고 돈 있음을 과시하는 건 수준이 떨어지는 행동이라고 여기기에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대신 영국의 중산층은 대화를 통해 눈치 게임을 한다. 
예를 들어, 위의 상황처럼 서로 알아가는 관계에 있는 영국인의 집에 놀러 갔다가 멋진 찻잔을 봤다고 하자. 
시작은 일단 칭찬으로 시작한다. 


그렇다고 영국의 중산층이 금전적 가치에 초연하다는 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누구보다 경제에 관심이 많고, 언제나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다른 중산층 가족들의 소득과 생활 수준은 어떤지 끊임없이 궁금해하며 자신과 비교하는 존재들이다. 


상류층처럼 초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나 이런 거 살 수 있는 사람이에요'라고 돈 있음을 과시하는 건 수준이 떨어지는 행동이라고 여기기에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대신 영국의 중산층은 대화를 통해 눈치 게임을 한다. 


예를 들어, 위의 상황처럼 서로 알아가는 관계에 있는 영국인의 집에 놀러 갔다가 멋진 찻잔을 봤다고 하자. 


시작은 일단 칭찬으로 시작한다. 


"어머, 저 찻잔 정말 예쁘다. 역시 넌 센스가 있구나." (이때 중요한 건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걸 알아보고 선택한 사람의 탁월한 안목과 스타일을 칭찬하는 거다)


"고마워, 이번에 아이가 찻잔을 깨는 바람에 새로 장만했어. 이번에 타운 센터에 나갔다가 이거랑 다른 세트를 봤는데..." (상대방은 칭찬을 자연스럽게 아들이며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만약 이 단계에서 '예쁘지? 이거 xx 산 건데, 00 파운드 줬어.'라고 한다면 눈치게임에서 탈락이다. 중산층은 대부분 아무리 자신이 산 물건을 자랑하고 싶더라도 자신이 사치스러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어필함과 동시에 소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말을 끊임없이 한다.) 


여기서 나오는 에피소드에서 이제 힌트를 찾아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타운 센터에 저런 품질과 디자인의 제품을 파는 곳이 어딨는지 머릿속으로 후보군을 추스르고, 하나씩 나오는 힌트로 스무고개 하듯 후보군을 줄여나가 정답을 맞히는 방식이다. 

또 여기서 중요한 건 스무고개 하듯 추임새를 넣거나 추가 질문을 할 때 나 자신도 상대방과 비슷한 재력 수준과 취향을 가졌음을 어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번에 xx에서 신상품 나왔던데 혹시 거기 거야?" (이렇게 추측을 던짐으로써 내가 이런 스타일에 관심이 있고, 그 가게에서도 제품을 살 수 있는 재력의 소유자란 걸 어필한다. 여기서 이렇게 직접적인 추측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그 가게의 수준을 잘못 판단하면 상대방을 그런 가게에서 쇼핑하는 수준으로 봤다고 모욕하는 게 될 수도 있고, 너무 올려치기를 하면 내 자랑을 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으니까.)


"아니 거기 말고, 타운 센터 동쪽 도서관 옆에 yy 있잖아." (이 경우 반응을 잘해야 한다. 내가 모른다면? = 그쪽을 잘 안 가봐서, 그 정도가 가장 무난한 대답이다. 아는데 너무 비싸서 사실 들어가 본 적이 없다? = 바빠서 그냥 지나가기만 했는데, 몰랐네. 한번 가봐야겠다. 절대 '거기 너무 비싼데 아냐?' 따위의 대답을 해서는 안된다. 만약 알고 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아, yy! 거기 좋지. 그런데 저번에 갔을 때는 못 봤는데?" (비슷한 취향에 쇼핑 수준까지 얼추 비슷하다는 걸 발견했다. 축하하자, 우리는 이 상대방과 이제 친해질 가능성이 5% 정도 늘었다.) 


"이번에 갔더니 가을 시즌으로 신상품으로 나왔더라고. 이거 말고 요렇게 디자인된 것도 있었는데..." (정답은 나왔고, 상대방은 나를 향한 경계심을 10% 정도 낮췄으며 우린 이제 제대로 된 진짜 대화를 하면 된다.) 


이제 우리는 나중에 시내에 나갈 때 그 가게를 기억했다가 들어가서 그 찻잔의 가격을 확인해 보면 된다. 


그리고 나중에 가격을 확인해 보며 온갖 생각을 다한다. 


그 찻잔 가격이 내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 = 그때부터 영국의 평범한 중산층인 아무개 씨는 머릿속에 추측해 놨던 상대방의 재력과 경제 수준에 대한 평가를 재고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 교사라고 하지 않았나? 초등학교에서 3년 일했다던데 연봉이 이걸 살 정도가 되나? 남편의 직장을 말 안 하던데 혹시 남편의 연봉이 높은 건가? 보니까 가구들도 UU 거든데, 아니면 원래 집이 좀 잘 사나?' 등등. 


그 찻잔 가격이 내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 = 사실 집에 찻잔이 필요하진 않지만 충동적인 구매욕구를 느낀다. 이 찻잔이 상대방의 집에서 얼마나 고급스러워 보였던지 기억하면서. 물론 그렇다고 상대방과 절대로 똑같은 찻잔을 사서는 안된다. 따라 한다는 오명을 쓸 수는 없으니까.  


도대체 왜 이런 귀찮은 짓을 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 문화가 그렇다. 


그리고 이 돈에 대한 룰은 자녀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했다. 아이 친구의 엄마가 괜찮다고 놀러 오라고 연락을 해서 아이를 그 친구네 집으로 데려다준다. 


친구네 집 주소를 받고 맵으로 위치를 확인해 볼 때부터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다. 

집의 위치, 그 주변 환경, 주거형태, 집 앞 정원만 봐도 앞서 말한 '주거지' 에피소드에 나온 것처럼 영국에서는 견적이 나오니까.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밖에 나와 반기는 부모의 태도, 복장, 말투, 현관의 상태 등등을 보고 또 한 번 정보를 수집한다. 그 뒤 마지막으로 아이를 데리고 오면서 또 정보를 수집한다. 


"오늘 어땠어? 친구랑 잘 놀았어? 뭐 하고 놀았어?"


이 질문에, 아이가 


"재밌었어요. 그런데 집이 너무 좁아서 친구 방 침대 위에서 피자를 먹었어요. 친구는 어린 동생이랑 방을 나눠 쓰는데 앉을 곳이 없어서 거기서 밥 먹고 게임하고 놀았어요."


라고 대답했다고 하자. 이쯤 되면 머릿속으로 그 친구네 집의 경제 수준 (그리고 소셜 클래스)에 대한 대강의 결괏값을 도출해 냈지만, 그렇다고 만약 아이가, 


"제 생각엔 우리가 걔네보다 더 부자인 것 같아요."


같은 소리라도 한다면 중산층의 부모는 깜짝 놀라 즉시 아이에게 주의를 준다. 


"그런 얘기하는 거 아니야. 친구한테 그런 말 한 거 아니지?"


"But it's true!"하고 아이가 반박할지라도, 실제로 부모 역시 그렇게 판단하고 있지만, 이런 말은 절대 입 밖으로 내선 안 되는 거라고 다시 엄하게 주의를 준다. 만약 그런 말을 다른 어른이 있는 자리에서 하기라도 하면 부모가 먼저 나서서 민망해하며 과하게 사과할 정도로. 




내 생각에는 이 과도한 민감함이 바로 그들이 경제 구조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한다. 


학교 성적도 늘 반에서 1등을 하는 애들은 그걸 유지하면서 다른 반의 1등의 성적이나 전교 등수에 더 관심을 보이지, 자기보다 못하는 반 애들의 성적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경쟁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늘 꼴등이나 뒤에서 몇 번째를 유지하는 아이들에게는 총평균이 3점이라도 오르면 뿌듯하다. '와, 나 이번에 다 찍었는데 평균 3점이나 올랐어!' 그런 자랑을 대놓고 하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반에서 중상위권을 차지하는 아이들은 역시 경쟁 상대가 아니다. 웬만해서는 바로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 


그럼 경쟁이 가장 심한 곳은 어딜까? 바로 그 중간에 위치한 아이들이다. 평균 1-2점으로 등수가 바뀔 수 있는 아이들. 만약 공부를 조금 게을리하면 순식간에 등수가 떨어질 수 있고, 피 터지게 노력하면 상위권도 넘볼 수 있는 그런 위치. 그러니 그 아이들에게는 반의 대부분이 경쟁자다. 치열할 수밖에 없는 거다. 


이건 중산층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돈이 부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구X의 속옷을 한 번 사서 입고 버릴 만큼 돈이 넘쳐 나는 건 아니다. 일을 안 해도 될 만큼 매달 돈이 저절로 불어나 쌓이는 매직 통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대부분 매달 자신이 일해서 꾸준히 들어오는 수입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미래를 계획한다. 


그럼 그들이 갑자기 실직하거나, 이혼해서 재산이 반토막 나거나, 아파서 일을 할 수 없게 되거나 그러면 어떻게 될까? 그런 변수들은 충분히 멀쩡한 오늘의 중산층도 저 밑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그런 불안감, 경쟁심리, 거기에 영국의 다소 폐쇄적인 문화와 중산층의 자존심까지 곁들여져서 그들은 돈에 대해 입을 다무는 건지도 모른다. 숫자를 입에 담는 즉시, 자신의 진짜 경제 사정이 낱낱이 드러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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