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영국을 내려다보면 꽤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런던을 조금만 벗어나도 고층 건물은 잘 보이지 않고, 거리를 따라 줄지어 서있는 주택들과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푸른 잔디밭과 들판. 미국인들이 그걸 보고 장난감 같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 될 정도다.
그렇게 멀리서 보면 푸르고 아담해 보이지만, 막상 그 속에 떨어져 보면 얼마나 거리마다, 지역마다 편차가 큰지 깨닫게 된다.
일단 영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영국의 주택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Terraced house
: 양옆으로 다른 집과 맞닿아 있는 집으로 보통 거리를 따라 일렬로 주욱 늘어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비슷한 외양을 하고 있으며 대부분 이층 집에 폭이 좁지만 뒤로 길게 빠져 있는 구조가 많다.
현관문 앞 정원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일 미터가 안될 정도로 협소하다.
안을 들어가면 현관문 앞에 좁은 복도와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며, 1층 앞 현관문 옆에는 거실, 뒤쪽에는 주방과 뒷 정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위층에는 보통 욕실과 방 2개 정도가 있고, 몇몇은 다락 (보통 영국 집의 지붕은 삼각형으로 뾰족하기 때문에 그 공간을 뭘 보관하는 창고로 쓰는 경우가 많다)을 개조해 침실이나 서재로 바꿔 놓기도 한다.
보통 거실의 창문이 바로 거리를 향해 나있고, 집과 사람들이 다니는 길 사이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 커튼을 이중으로 달아 낮에는 얇은 하얀색 커튼으로 덮어두고, 밤에는 암막 커튼 같은 걸로 가려 사생활을 보호한다. 아니면 아예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살거나.
Semi-detached house
: 집의 한 면만 다른 집과 공유하는 형태다. 보통은 현관문이 있는 복도 쪽이 연결되어 있거나, 아니면 차고를 통해 연결되기도 한다.
역시나 이층 집인 경우가 많고, 현관을 들어가면 비슷하게 복도와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테라스 하우스처럼 현관문 옆에는 거실이 있고, 사이즈가 큰 집인 경우 현관문 양옆으로 거실, 서재/dining room (식사하는 방)이 있기도 한다.
아래층에는 보통 거실 외에 방 하나가 더 있고 (아니면 주방과 연결된 다이닝룸), 작은 화장실, 주방이 있으며, 위층에는 사이즈 따라 다르지만 보통 방이 3개 정도에 욕실이 있다.
영국의 주거지역에서 흔하게 보이는 구조이고, 대개 집 앞 정원과 함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Detached house
: 말 그대로 집의 어떤 면도 다른 집과 공유하지 않는 단독주택이다. 크기나 위치, 구조에 따라 종류는 천차만별인데, 건물이 맞닿아 있지 않다 뿐이지 이웃과의 사이는 뒷 정원으로 통하는 작은 통로 하나뿐으로 근접한 곳도 있고 (쉽게 말해 테라스 하우스를 개별로 떼어내 양옆으로 공간을 만들어 둔 구조라고 생각하면 된다), 집과 집 사이의 거리가 멀고, 사방이 정원과 담으로 둘러싸여 완벽히 고립된 집들도 있다.
보통 차를 2-3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드라이브웨이 혹은 차고가 따로 있고, 방이 4개 이상 (그중 하나는 욕실이 딸린 Master bedroom), 욕실 2개에 화장실 1개, 거실 외에 서재처럼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 방이 더 있고, 주방과 다용도실도 대부분 기본으로 갖춰져 있다.
위의 구조가 전형적인 영국의 주택 형태였다면 늘어나는 인구수와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영국에서도 이젠 층이 여러 개인 아파트 같은 건물을 볼 수 있는데, 한국처럼 고층의 아파트가 아니라 보통 flat이라고 부른다. 2024년 9월을 기준으로 영국에는 176개의 고층 빌딩이 있다는데 그중 132개가 런던에 있고, 24개가 맨체스터에, 8개가 버밍험에 있다고 하니, 이런 건물들은 다들 커다란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중 가장 높은 주거용 빌딩 (주거가 가능한 빌딩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은 런던의 The Shard (the Shard Londong Bridge)인데, 총 72층으로 그중 주거용으로 쓰이는 건 53층에서 65층 사이에 있는 10개 정도밖에 안 된다. 찾아보니 그 밑에 있는 Shangri-La 호텔에서 룸서비스도 시킬 수 있고, 호텔처럼 청소도 해준단다. 가격은 5천만 파운드 (대략 한화로 9백억?) 이상이라는데 실제로 마켓에 나온 적은 없단다.
물론 이런 경우는 아주 예외적이고, 보통은 5층 전후의 건물이 많고, 내부는 집마다 다른데 한국의 투룸, 원룸, 스튜디오 같은 걸 생각하면 된다.
거주인의 종류는 이런 플랫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학이나 큰 병원이 있고 규모가 있는 도시의 경우는 보통 젊은 부부, 혹은 1인 가구 직장인이나 돈이 있는 집 출신의 학생들이 산다. 만약 바다나 강가 근처에 발코니가 있는 아기자기한 플랫이라면 있다면 은퇴한 노부부나 중산층 가족의 holiday home으로 쓰이거나, 역시 젊은 부부, 직장인들이 주로 산다.
그럼 도시의 외곽에 위치하거나, 아니면 딱히 번화하지도 않은 일반적인 타운에 있는 플랫에는 누가 살까?
2017년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24층 빌딩 Grenfell Tower 화재로 알 수 있듯이 이런 고층의 주거지역에는 소득이 적은 워킹클래스 혹은 정부 지원금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왜냐면 이런 건물 자체가 지역 자치구 (council)에서 정부 지원의 일환으로 지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이런 집들을 Council housing complex라고 부른다).
플랫이 정부지원 건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단 외관 자체를 봐도 돈을 많이 쓰지 않았다는 티가 날 정도로 투박하고 기본적이며, 딱딱한 콘크리트 박스 구조물일 때가 많고, 그 주위 분위기도 어딘가 음울하고 삭막하다. 인적이 드물고, 쓰레기가 굴러다니거나 깨진 빈병 따위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기도 하며, 집 앞에 뭔가 지저분하게 쌓여있거나, 베란다에 빨래가 널려 있기도 한다.
(참고로 영국의 중산층은 대부분 행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뒷정원에 빨래를 널거나, 아니면 대부분 건조기를 사용한다. 빨래를 밖에 널 만큼 날씨가 좋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문화적으로 이런 걸 치부라 여기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인 친구 한 명은 멋모르고 빨래를 인도가 있는 쪽 베란다에 널어놨다가 바로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Please don’t do it, it makes the house look cheap” - 진짜 부동산 직원이 친구에게 한 소리다.)
그러면 중산층은 어디에서 주로 살까? 대부분 주거 지역 (residential area)에 있는 semi-detached 혹은 detached에 살지만, 직업 등의 이유로 다른 주거 형태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테라스 하우스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일단 공간이 협소하고 (자녀가 보통 2명이라는 걸 고려할 때), 차가 2대 정도 있기 때문에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으며, 이웃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기 때문이다 (층간 소음이 아니라 벽간 소음이 장난이 아니다).
물론 이런 이유를 대기 전에 그런 집에서 살 수 있는 재력이 되기 때문이지만.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주거 형태가 아니라 그 주변의 분위기다.
거리나 지역을 전체로 봤을 때 거리가 잘 정돈되어 있는가 (= 지방 자치구 Council에 돈이 있다. 즉 주민들이 세금을 잘 낸다)
집 앞 정원이 잘 다듬어져 있는가 (= 이웃들의 수준이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쓸 정도로 괜찮다)
집 앞에 쓰레기통이 잘 치워져 있는가 (지역마다 다르긴 한데 영국의 집에는 보통 쓰레기통이 2-3개 정도 배정된다. 검은색은 일반쓰레기, 녹색은 재활용, 그 외 재활용 쓰레기의 종류에 따라 색이 다른 박스를 배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요일에 정부가 밖에 내어진 쓰레기 통을 비워간다 = 쓰레기통 수거일을 기억하고 제때 내놓고 치우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주차된 차의 수와 종류 (주차된 차가 거의 없거나 오래되고 훼손된 차가 방치되어 있다? = 차를 소유할 수 없거나 차가 필요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심지어 다른 차를 훼손하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반면 중산층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는 집마다 차가 2대 정도는 주차되어 있고, 차의 종류도 다양하고 비싼 차 브랜드로 흔하게 보인다. 무엇보다 훼손된 차가 며칠 이상 방치되어 있으면 그 지역의 누군가는 꼭 경찰을 부르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분위기와 타입 (중산층 = 아직 독립하지 않은 자녀들이 있고, 등하교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아니면 나이가 든 노부부가 산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날씨가 좋으면 꼭 누군가는 정원을 손질하고 있다. 눈이 마주치면 대부분 눈인사를 하거나, 아니면 미소 짓는다)
근처 공원이 잘 관리되어 있다 (= 사람들이 자주 다니고, 치안이 좋은 편이다. 만약 쓰레기가 버려져 있고, 깨진 병 조각이 많다면 피하는 걸 추천한다.)
근처에 버려진 건물이나 오래 방치된 건물이 없고, 있더라도 관리가 잘 되어 있다 (만약 저렇게 버려진 건물이 있는데, 창문은 다 깨져있고, 쓰레기도 많다? 누군가는 그 공간을 밤에 아지트로 쓰고 있다는 소리다. 실제로 저녁이 되고 인적이 뜸해지면 삼삼오오 후드를 눌러쓰고 모여있는 청소년들을 볼 수 있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중산층이 산재한 곳에서는 이런 경우 누군가가 벌써 경찰에 연락했다).
그 외 중산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학교, 공원 과의 접근성과 도로가 얼마나 안전한가, 근처에 어떤 가게, 슈퍼마켓이 있는가, 산책을 하기 안전한가, 그리고 더 중요한 것 - 근처에 council housing이 있는가.
한국에서는 그 사람이 고시원에 산다고, 달동네에 산다고 해서 피하거나 하지 않는다. 아니, 그전에 겉으로 보기에는 그 사람이 어디 사는지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 선이 분명하고 서로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니 개인의 경험에 따라 영국에 대한 인식도 극명하게 갈리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