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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Nov 03. 2024

영국 중산층의 교육열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가 알아줄 정도로 대단하다. 부모의 소셜 클래스에 상관없이 모두 자식의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며, 아무리 집안 사정이 어려워도 자식의 사교육이나 대학 진학만은 꼭 시키려 한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거다. 예를 들어, 

사회 전반에 깔린 비교와 경쟁 심리 - 누구 집 아들은 뭘 한다더라, 누구 집 딸은 이번에 뭘 했다더라.  

계급 상승에 대한 욕구 - 나는 이렇게 살았지만 너는 그렇게 살지 말아라. 

부모의 염원과 자신은 이루지 못한 숙원의 투영 - 나야 이런 상황 때문에 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네게는 내가 있어 이런 지원을 해줄 수 있으니 꼭 이루어라 (그게 진짜 자식의 꿈이든 말든) 

등등. 


그런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이든,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이든, 아니면 자신의 욕구의 반영이든 한국의 부모님들은 대부분 자신의 소비를 줄이더라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한다. 


그럼 여기서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럼 자식이 잘되길 바라지 않는 부모도 있단 말인가? 


그런 부모의 마음이야 어디든 대체로 당연하겠지만, 영국이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아마도 영국에서는 가족이라도 개인주의적 (individualism) 성향이 강하다는 것과 계급 상승의 욕구가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거다. 


부모 된 입장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 아이들을 향한 애정이야 당연하지만, 영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대체로 'That's their life' (그건 그들의 삶)이라는 태도를 대부분 기본값으로 가진다는 거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야만 한다는 생각도 별로 없고, 대학을 나왔다고 좋은 직장을 가진다는 보장도 없다. 거기다 소득 수준에 따라 대학을 간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영국에서도 90년대 까지는 영국인 학생들에게 대학 교육이 무상으로 이루어졌지만, 1998년에 처음으로 연간 천 파운드라는 학비가 도입된 뒤, 2004년에는 3천 파운드로 올랐다가 2012년에 9천 파운드로 왕창 올랐다(*). 2017년부터는 연간 9천2백5십 파운드 (한화로 대략 1천6백만 원)로 고정되어 있던 학비가 이번에 정부가 바뀌면서 만 파운드 이상으로 오를 거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 

거기에 생활비나 숙소까지 더해지면 못해도 영국의 대학생들은 일 년마다 2천 파운드에 가까운 돈을 내야 하는 거다 (한화로 3천6백만 원 정도). 


2023년 기준 영국인들의 연봉 중앙값은 £34,500 (한화로 6천2백만 원 정도), 최저 5%는 £16,400 (한화로 3천만 원 정도), 최고 5%는 £68,400 (1억 2천만 원 정도)였다 (ONS Average household income). 지출의 중앙값은 일주일에 £568로 일 년이면 대충 3만 파운드 정도를 쓰는데, 최저 5%의 연간 평균 지출액은 1만 8백 정도, 최고 5%는 4만 5천 파운드 정도를 쓴단다 (ONS Family spending). 


이걸 계산해 보면 최저 5%의 수입을 올리는 저소득층은 마이너스 숫자가 나오고, 중앙값은 4천5백 파운드가 남고, 최고 5%는 2만 파운드 넘게 남는다. 그런데 여기에 자녀 1명을 대학에 보내는데 드는 돈이 연간 2천 파운드다? 당연히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 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서 영국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구직하는 데 있어 필수도 아니다. 물론 업계마다 졸업장이나 대학 이름이 큰 영향을 끼치는 곳도 존재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졸업생들이 괜히 자신들의 재학시절을 'living in a bubble'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거기에는 '그들만의 세상'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의 교육에 가장 진심인 집단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당연코 영국의 중산층이라 하겠다. 특히 middle/upper middle class. 


일단 그들에게는 자녀의 교육을 뒷받침해 줄 경제력이 있다. 영국 중산층의 소득이 연봉 3만에서 6만 파운드라고 하지만, 40대를 넘어가는 전문직 맞벌이 부부의 경우, 연봉 5만 파운드 (9천만 원 정도)는 가볍게 넘긴다. 연간 지출액이 3만 파운드에서 4만 파운드까지 하더라도 대략 1만 파운드 정도는 여유를 둘 수 있으며, 그들은 따로 적금을 두는 등 미래에 대한 투자도 꾸준히 하는 편이다. 


특히 자신들도 대학을 다녀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한지 알기 때문에 어떤 친구들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이의 교육비를 위해 따로 적금 통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자녀가 둘이라도 대학 정도는 지원할 수 있는 발판을 미리미리 만들어 두는 거다. 


그렇게 준비해 뒀다가 아이가 대학을 가겠다고 하면 학비나 생활비로 쓰라고 돈을 내놓고, 아이가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하면 모아놨다가 아이가 첫 집을 사겠다고 할 때 보태주거나, 아니면 독립 자금으로 내어주거나.


그리고 중산층의 부모들은 자신들도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를 겪어 현재의 자리까지 왔기 때문에 본인이 쌓아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이들의 교육에도 깊숙이 관여한다. 대학의 랭킹도 알고 있고, 학군에도 관심이 많으며,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아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를 적극적으로 리서치해서 조언하고 기회를 주려고 애쓴다. 


예를 들어 수영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 아이를 위해 친구 한 명은 본인이 직장 외의 시간을 투자해 전문 수영코치가 될 수 있는 교육 과정을 밟기 시작했고, 동물에 관심이 많은 아이를 위해 다른 친구는 일찌감치 농장이 있거나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들, 그리고 동물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인맥을 끌어다가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미리 시켜준다든지. 


영국에서는 한국처럼 예체능을 제외한 학원이라는 게 없지만, 그 역할은 대부분 부모가 대신한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과제 영상을 보면서 같이 공부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다가도 그 후 자녀가 대학을 가거나 독립을 하면 그 뒤로는 부모도 자녀의 삶에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 자식이 독립을 하고, 밖에서 돈벌이를 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어엿이 살아가고 있으면, 아이의 직업이 농부든, 정원사든, 회계사든, 딱히 상관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다만 자식들이 아예 독립도 하지 않고 집에 눌러살거나, 직장도 없고, 구직활동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고 빈둥거린다면, 그때가 바로 중산층 부모들이 가장 분노하고 초조해할 때다. 자녀 교육의 가장 큰 결과물은 자식이 독립된 성인으로 자라는 건데, 아이가 그러지 않으니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거다. 


영국의 중산층이 교육에 진심인 이유는 그들이 다른 두 집단 (워킹클래스, 상류층)에 비해 가장 격차가 심한 계층이라 그럴 거다. 계급 변화가 거의 없는 두 집단에 비해 이 집단은 조금만 방심해도 아래로 떨어지는 게 가능하니까. 그러니 이건 어쩌면 계급 상승 욕구라기보다,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아닐까. 

 



그럼 중산층이 아닌 영국의 저소득 가정이나 워킹클래스는 어떨까? 


아무도 필수교육과정 이후 (고등학교 졸업)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집일 경우, 부모들은 아이들의 진로에도 무지하거나 무심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심하면 그런 가족들이 공부를 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도 대학에서 교수로 있을 때 많이 봤다. 


엄마가 새로 만난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임신을 하는 바람에 막 태어난 이복동생의 육아를 위해 대학을 휴학한 학생.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합격한 학생의 경우, 방학 때에도 매일 학교 도서관으로 나오길래 이유를 묻자 집에서는 괴롭힘이 심해서 그걸 피해 나오는 거라고 했다. 집에서 공부를 하려고 하면 가족들이 그녀에게 잘난 척하는 거냐며 그녀를 조롱하거나 과제를 방해하고, 책마저 버리는 경우가 있다며.  

가장 심한 경우는 알코올중독이던 엄마가 학생에게 칼을 휘두르고 자살을 시도해 격리되면서 그 학생조차 갈 곳이 없어진 경우였다. 


그럼 상류층은? 어차피 그들의 자식은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커리어를 쌓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아니라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놀다가도 다들 케임브리지 가고 옥스퍼드 가고, 나중에 다 정해진 자리로 가니까. 


참고로 자식이 대단한 성취를 이뤘을 때 나타나는 반응에 따라 부모의 소셜 클래스를 짐작해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식이 옥스퍼드에 입학했다고 했을 때... 


묻지도 않았는데 자식 얘기를 꺼내며 얼마나 자기 아이가 똑똑한지 자랑한다. "Have I told you? My son is in Oxford, he's so smart, not like us, when he was little..." 거기다 막 친하지도 않은데 폰에 저장된 사진도 보여주고, 혹시 집에 초대받아 가기라도 하면 거실 중앙에 장식된 아이의 입학 사진을 볼 수도 있다. - 워킹클래스 부모의 경우가 많다. 자신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을 아이가 해냈다는 사실에 대한 대견함, 뿌듯함, 자랑스러움이 넘쳐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거다.  


어쩌다 무슨 말이 나왔는데 이 사실을 은근히 흘린다. 예를 들어, 내가 옥스퍼드로 출장 갔다 왔다고 하면, 이렇게 대답한다. "It's a beautiful town, isn't it?" (예쁜 타운이에요, 그렇죠?) 그럼 당연히 나는 그 사람에게 거기 가봤냐고 물어보고, 내 질문에 빙긋 웃으며 대답한다. "Yes, because my son studies there." (네, 제 아들이 거기 다니고 있거든요.) 거기에 내가 감탄을 하든, 칭찬을 하든 모두 그저 가볍게 웃으며 받아들이고, 잠깐의 대화 후에 다음 화제로 넘어간다. - 중산층 부모일 경우가 많다. 자랑은 하고 싶지만, 그러면 괜히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자제하는 것. 


아무 반응도 없고 그에 대해 얘기도 하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의 자녀가 거기 다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먼저 물으면, "Yes, he does." 그렇게 긍정하고 끝이다. 내가 더 묻지 않으면 거기서 더 대화가 이어지지도 않는다. - 자기도 그 대학 출신이거나 상류층일 때. 딱히 성취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사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경험과 관찰에 따른 지극히 일반화된 생각일 뿐입니다. 

영국에도 당연히 자식의 교육에 열을 올리는 부모는 소셜클래스에 상관없이 있고, 자식의 성취를 자신의 성공으로 대체해 생각하며 아이를 몰아치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영국의 부모들을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아이가 어떤 대학을 가든, 어떤 직장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가든, 그 선택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였습니다.  


전 아직도 한국물이 덜 빠졌는지 가끔 초조해질 때가 있으니까요;;


..........

참조

* University fees in historical perspective, Feb 2016, https://www.historyandpolicy.org/policy-papers/papers/university-fees-in-historical-perspective )

** Tuition fees must go up, unies say as term begins, Sep 2024 https://www.bbc.co.uk/news/articles/czxdd7qglp6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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