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parasite)'를 나는 영국에서 영국인 친구들과 함께 영화관에서 봤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이란 나라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정말이다), 살다 보니 한국 영화를 대형 영화관에서 보는 날도 오는구나 싶어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감탄을 하며 영화를 보던 중 인상 깊게 다가온 건 바로 ‘냄새’에 관한 거였다.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하나의 상징으로 이용된 냄새.
계급 간의 격차뿐 아니라 갈등의 기폭제로도 사용된 냄새.
‘악취’나 어떤 특정 냄새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생활공간에서 묻어나는, 그렇기에 그 사람의 생활 수준과 패턴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주는 장치로 사용된 냄새.
영화가 끝난 뒤 영국인 친구들이 내게 물었다.
그건 어떤 종류의 냄새냐고. 예를 들어, 반지하방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인지, 잘 씻지 않아 나는 몸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인 건지, 아니면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공간에서 지낸 까닭에 옷에 배인 음식물 혹은 쓰레기 냄새인 건지.
영화를 보면서는 그 의미에 감탄하며 넘어갔지만, 막상 그렇게 질문을 받고 보자 후각과 관련된 묘사가 상당히 한국적인 표현이란 걸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비하할 때, 혹은 혐오감을 표현할 때도 냄새와 관련된 표현을 종종 쓴다.
예를 들어,
“바보 냄새나니까 저리 꺼져라”, “저 남자 하는 말을 들어보니 사기꾼 냄새가 풍긴다”, “네 말투에서 썩은 내가 진동한다” 등등.
반면 영어에서도 냄새는 어떤 특정한 상황을 설명하는데 쓰이긴 하지만, (예. an odour of suspicion = 수상한 냄새) 한국처럼 다양하게 은유적으로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영어로 누가 당신더러, “you smell like rotten eggs” (너한테서 썩은 달걀 냄새가 난다)라고 한다면 그건 말 그대로 당신의 몸에서 악취가 난다는 소리일 테니까.
또 생각해 봤다.
만약 한국에서 냄새가 계층을 구분 짓는 요인 중 하나로 사용된다면, 영국에서는 어떨까? 단순히 노숙자이기 때문에 악취가 난다, 그런 종류가 아니라 일견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어떤 사소한 잣대 같은 거 말이다. (영화에서 말한 냄새도 악취가 아니라, 지하철 안 냄새 같은 거라고 하지 않는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영국에서는 후각보다 시각적인 요소가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 (격차)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이런 차이는 보통 런던처럼 관광객과 현지인,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섞이는 곳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중소 도시, 혹은 타운, 빌리지를 가보면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건 한국에서 말하는 강남 스타일, 홍대 스타일, 이태원 스타일, 이런 패션스타일의 차이가 아니라 말 그대로 계급 간의 차이다.
혹시 영국 드라마 중 Eastenders (런던 동부, 워킹 클래스 밀집지대를 배경으로 하는 일일 드라마), Coronation Street (맨체스터에 사는 워킹클래스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 Emmerdale (요크셔 시골 빌리지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줌. 영국판 시골 드라마 – 그렇다고 한국의 전원일기 같은 걸 상상하면 안 된다), Hollyoaks (영국의 suburban에 위치한 컬리지 학생들과 가족들을 둘러싼 이야기. 좀 더 치정적인 요소가 많다)을 본 적 있으신가?
이런 영국의 일일 드라마는 대부분 워킹클래스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나마 그들보다 좀 더 posh 한 분위기를 풍긴다면 그들이 바로 중산층 정도 되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드라마에 무조건 재벌 비슷한 상류층 캐릭터가 나오고, 아무리 저소득층 출신이라도 겉으로 봐서는 전혀 티가 나지 않는 예쁘고 멋진 캐릭터가 나오는 것과는 반대다.
한국에서는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이 입은 옷의 스타일이나, 장소, 브랜드 같은 게 유행을 선도하기도 하지만, 영국에서는 예쁘고 멋지고 보이는 것보다 좀 더 현실 반영에 충실한 편이다. 그런 의미로 영국 일일 드라마를 보며 영어를 배우는 건 피하라고 하고 싶다. 특정 클래스의 사람들을 철저히 고증해서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을 쓸 때도 많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런 문화가 한국을 좀 더 상향 평준화되게, 그리고 영국 같은 경우는 계급의 고착화를 더 심화시키는 게 아닌가 싶지만 뭐 그건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 누군가는 논문을 쓰셨기를 바란다.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그런 드라마에서 영국의 정형화된 계급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워킹클래스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기도 하다).
문신이 팔 한쪽, 다리 한 짝을 넘어설 정도로 많다.
남자들 같은 경우는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옆을 밀어서 문양을 만들기도 한다 (buzz cut 종류)
여자들은 입고 있는 옷과 상관없이 화장이 과하고 특히 마스카라는 필수로 사용하며 눈썹을 짙고 뚜렷하게 그린다.
그런가 하면 아예 화장은커녕 관리조차 안된 푸석한 맨얼굴을 하고 다니기도 한다.
옷이 상황과 맞지 않게 과하거나 (요란한 색상, 로고가 크게 박혀 있거나, 주위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거나), 아니면 노출이 심하다 (특히 가슴 쪽, 아니면 내복 수준으로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 바디슈트 등).
그런가 하면 아예 신경을 안 쓰고 잠옷이나 나이트가운, 운동복을 입었거나, 체형과 사이즈를 무시한 옷을 그냥 걸치고 다닌다.
남자들 같은 경우도 비슷하다. 운동복 바지나 작업복을 입고 다니거나, 뭔가 묻었는데도 그대로 입고 다닌다거나. 특히 날이 좀 좋은 날에는 웃통을 까고 다닌다.
옷차림 외에도 껄렁한 걸음걸이, 에너지 드링크나 탄산음료를 손에 들고 다니며 마시고, 주위에 신경 쓰지 않고 크게 웃거나 떠들고, 소릴 지르고, 욕을 함부로 내뱉고, 누군가와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소릴 하지 않으며, 담배를 피우는 행위 등등.
그런 것들이 영국에서는 전형적인 워킹클래스의 모습이다.
그럼 상류층은 어떤가?
그들은 일단 평범한 마을이나 타운에 잘 출몰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어디 찾아볼 것도 없다. 영국에는 버젓이 상류층을 대표하는 왕족이 있으니까. Royal family 하고 검색해봐도 스타일이 주르르 나온다.
이렇게 특성이 뚜렷한 두 분류를 제외하면 중간에 남는 사람들이 바로 중산층이다.
여기서 워킹클래스보다는 양호하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면 lower middle, 상류층 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타일리시하다, 어딘가 우아하고 고급스럽다, 그런 분위기를 풍기면 upper middle 이런 식이다.
그럼 영국에서는 정말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소셜 배경을 알아챌 수 있을까?
20대까지는 솔직히 알아보기 힘들다. 이때는 패션이나 트렌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반면 30대가 넘어가고, 특히 결혼을 했거나 파트너가 있고, 자녀까지 있는 사람이라면 이때부터는 구분이 가기 시작한다.
젊었을 때의 무수한 실험(!)을 바탕으로 대충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았거나, 직장 생활 때문에 어떤 스타일이 익숙해졌거나, 아니면 이젠 자신에게 편한 옷을 입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영국에서는 직장에서 사람들의 복장을 검열하진 않지만, 전문직으로 갈수록 드레스코드라는 게 알게 모르게 존재하기 때문에 티가 날 수밖에 없다. 혹시 모르겠으면 런던 서부 금융권과 다양한 기업들의 사무실이 산재한 Canary Wharf, City of London에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일반 가게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비교해 보자. 그런 환경에서 오래 일하면 아무리 패션센스가 없는 사람이라도 그 스타일에 맞춰 변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런 주위의 환경 때문이 아니라도, 돈이 없어도 패션감각이 좋아서 옷을 근사하게 입고 다닐 수 있다. 아니면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고해서 그걸 고수하거나. 거기다 개인의 취향도 당연히 존재한다.
근사한 쓰리피스 정장을 늘 입고 다니지만 꼭 분홍색이나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주는 임원도 봤고, 평소에는 말끔하게 입고 다녀서 몰랐는데 서머파티에 아주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에 어깨를 타고 내려오는 문신을 드러낸 사람도 있었고, 머리카락 색이 천연색으로 일 년에 몇 번씩 바뀌는 동료를 두기도 했었다.
그러니 쉽게 객관화할 수는 없는 문제겠지만, 그럼에도 대충 구분이 가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의 태도와 매너, 말투, 행동 등이 아닐까 싶다. 특히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옷을 맞춰 입는 건 오랜 경험이 없으면 못하는 거니까.
그런 까닭에 아무리 화려한 파티 드레스를 입고 있다고 해도, 영국에서는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해진다.
런던의 중심 금융계에서 열리는 연말 파티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의 May Ball, 그리고 웨일스 타운의 Village hall에서 열리는 결혼 파티의 분위기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참고로 이 기사 (Style and social class: ‘the authenticity fetish’)에서는 중산층과 워킹클래스의 옷차림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중산층은 모든 공간을 public - 자신이 남에게 보일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라고 인식하고 옷을 입는데 반해, 워킹클래스는 local space (집 주변 같은 곳)을 semi-private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옷을 입는다는 거죠. 그리고 그 예로 집 근처에 파자마를 입고 돌아다니는 워킹 클래스 사람들을 들었는데, 정말 공감했습니다.
예전 웨일스 남부에 살 때 정말 많은 엄마들이 파자마에 슬리퍼를 신고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걸 봤으니까요.
반면 어떤 엄마들은 방금 운동을 하고 와서 운동복 차림인데도 그 모습으로 누군가를 맞이했을 때 상당히 미안해하며 사과를 연발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