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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Dec 01. 2024

영국 중산층의 파티문화

혹시 로판이나 영국의 period drama (특히 사교계가 중심이 되는 상류층의 일상을 보여주는 시대 드라마 –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혹은 넷xx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브리저튼 (Bridgerton)’ 시리즈 등)을 좋아하거나 본 적이 있으신가?


이런 작품들에는 여러 종류의 사교 모임이 나온다. 

응접실 (drawing room)에서 부인과 딸들이 앉아 자수를 하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글을 읽거나. 그러고 있으면 손님들이 방문해서 함께 차를 마시는 장면 (그렇게 남의 집에 방문해 안부를 전하는 걸 paying calls라고 부른다), 정원의 테이블에서 차 (tea)나 afternoon tea (1840년쯤 Bedford 공작부인이 오후에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빵과 버터, 케이크와 스콘, 차 등이 준비되었는데 그걸 그녀가 너무 좋아한 나머지 매일 요청하다 못해 나중에는 친구들까지 초대해 즐기게 된 게 시초라고 한다: The history of afternoon tea)를 즐기고, 남자들은 크리켓을 하는 장면.  

함께 경마나 사냥을 즐기거나, 근사한 tea room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모습 등.

그중 가장 정점은 바로 연미복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참여하는 무도회 (ball) 일 거다. 


사실 이런 모습들은 상류층의 사교활동이고, 이런 집에 고용되어 열심히 집, 정원을 가꾸고, 요리를 하는 고용인들은 모두 워킹클래스에 속했다. 그들에게 허용된 사교활동이라면 일요일에 교회를 가거나, 휴가 때 펍에 가거나, 아니면 늦은 저녁을 먹고 고용인들끼리 모여 카드 게임을 하는 정도. 


그나마 산업혁명 (1760-1840)이 일어나면서 상류층이 아니어도 그에 비견될 재력과 교육 수준을 가진 중산층이 등장하기 시작한 빅토리안 시대 (Victorian era – Queen Victoria가 다스리던 시기 1837-1901)에도 이 패턴은 딱히 변하지 않았다. (Rise of the Middle Classes)


상류층 여성들은 여전히 하루의 대부분을 사회적 의무 (social duty)의 일환으로 주로 사교계의 다른 귀족들과 교류하거나, 음악을 배우거나 자수를 두며 보냈고, 노동계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일을 하느라 맞벌이는 물론 아이들까지 일을 했기에 그런 여가 시간이 없었다. 


반면 사회적 활동의 폭이 넓어진 신흥 계급인 중산층의 남자들과 달리 그 남자들과 결혼한 여자들에게는 경제 활동이 허가되지 않거나 제한되었고, 그렇다고 그녀들에게 상류층의 여성들처럼 사교활동의 의무가 주어진 것도 아니니, 대신 중산층의 여성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을 돌보거나 가정을 꾸리며 살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 아이들 교육에 가장 진심이었던 계급층은 중산층이었다고. (The Victorian Family


시대적 배경상 가장 사교활동이 활발하고, 그 종류마저 다양했던 게 상류층이어서 그런지, 현대에 자주 볼 수 있는 영국의 파티문화도 이런 상류층의 문화에서 파생된 게 많다. 


Tea party는 여전히 영국인 (특히 중년 이상의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행사이고 (호텔이나 스파, 정원이 있는 Tea room에는 꼭 afternoon tea가 들어간 코스를 볼 수 있다), 여름에는 다들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로 변화된 garden party를 하고, 작게 축소된 버전의 무도회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는 파티 역시 다양한 형태로 열리고 있으니까. 


그런 까닭에 이젠 굳이 상류층이 아니어도, 또는 부자가 아니라도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갈 수 있고, 챙이 넓고 화려하게 장식된 모자를 쓰고 결혼식에 참가하는 게 이상하지도 않다. 


이제는 이렇게 보편적으로 퍼진 문화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자면 그런 파티를 즐기는 방식에도 계급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케임브리지에 재학할 당시나 혹시 일과 관련해서 high end라고 불리는 black tie (연미복) 파티에 가보면, 일단 건물 입구에서부터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이 있다. 코트나 재킷을 맡길 수 있는 cloak room이 있으며, 보통 리셉션 홀에 들어가기 전에 샴페인이나 무알콜 음료를 제공한다 (어색하지 않게 목이라도 축이라고). 


리셉션 홀에 들어가면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여럿 모여 서서 대화를 하고 있는데, 그 중간중간 그림자처럼 조용히 돌아다니며 빈 잔을 채워주거나, 수거해 가거나, 아니면 간단한 카나페를 권하는, 유니폼을 입은 서버 (server or waitstaff)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게스트들이 다 도착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보통 30분 정도),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알림과 함께 따로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다이닝홀로 안내된다. 


다이닝홀의 자리는 보통 주최 측에서 미리 배정해 준 곳에 앉게 된다 (보통 내 이름과 소속, 내가 주문한 메뉴 등이 적힌 카드가 내 자리 위에 놓여 있다).   

이때 자리 배치에 따라 호스트의 의도와 센스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자리는 보통 사교를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기 때문에 자리 배치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호스트가 자신이 초대한 게스트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거다. 


예를 들어, 서로 앙숙이라는 걸 암암리에 다들 알고 있는데 호스트가 그들을 같은 테이블, 그것도 양옆에 붙여놨다? 이런 파티에서는 그걸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호스트가 센스가 없거나, 무지하거나, 아니면 일부러 어떤 목적을 가지고 붙여 놨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기 자리를 찾았으면 보통은 자기 근처에 앉은 사람들을 스캔하며 인사를 나눈다. 

이런 자리에서 나와 친한 사람이 내 옆에 앉았다고, 그 사람과만 식사하는 내내 대화를 나눈다면 나는 무례한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은 내게 중요하지 않고, 그들 따위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로 비치기 때문에.

그러니 내 양옆에 앉은 사람은 물론 맞은 편의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식사 중 한 번은 대화를 하는 게 좋다. 


식사는 기본 세 가지 코스로 나오며, 디저트 후에 치즈 보드나 Port 같은 디저트 와인이 제공되기도 하고,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나 피아니스트가 배경음악을 대신하기도 한다. 음료의 종류는 대체로 다양한데, 주로 코스 요리에 맞춰 화이트나 레드 와인을 제공하고 역시 서버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빈 잔을 채워주거나 빈 접시를 치워간다. 


이때 서버들이 빈 접시를 치워가거나 요리를 배달해 줄 때 ‘Thank you’라고 말하는 건 필수다. 아까 하지 않았나,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전채 요리를 가지고 와도, ‘thank you’, 빈 접시를 수거해 가도 ‘thank you’, 와인을 따라줘도 ‘thank you’. 그냥 누가 옆에 와서 뭘 해준다 싶으면 반사적으로 땡큐를 하면 된다.   


식사가 다 끝났으면 그때는 다시 리셉션 홀로 나와 친목활동을 계속한다. 이때부터는 음악 연주가 좀 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아니면 장내에 틀어놓은 음악소리가 조금 더 커지고, 조명이 조금 더 어둡게 바뀐다거나), 바 (bar)가 따로 열리거나, 아니면 서버들이 돌아다니며 칵테일이나 다양한 음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만약 식사가 주가 되지 않는 칵테일파티 같은 곳이라면 아예 홀의 한쪽에 음식이 쌓인 테이블이 있어서 사람들이 뷔페식으로 가볍게 가져다 먹거나, 아니면 냄새가 많이 나지 않는 종류로 즉석요리를 해주는 코너도 준비되어 있다. 음식의 종류는 보통 한입에 먹기 좋은 카나페 타입이 많고, 그렇게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하고 있다가 접시가 비면, 역시 서버들이 돌아다니며 빈 접시나 잔들을 수거해 간다. 


간혹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놓고 춤을 추라는 분위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대화에, 대화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여기서 만취한 꼴을 보인다는 건 있을 수 없으니 아무리 서버들이 돌아다니며 공짜 술을 부어준다고 해도 정신줄을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럼 워킹클래스 쪽의 파티는 어떨까? 


일단 입구에서부터 음악소리가 크고, 주된 음료가 맥주다. 서버는 존재하지 않고, 대신 바에서 사람들이 음료를 주문해서 마시는 형태다. 아니면 아예 주최 측에서 맥주캔이나 병을 왕창 사다가 커다란 양동이의 얼음물에 담가놓고 알아서 꺼내 먹으라는 방식이거나. 

음식 역시 준비되어 있지만, 보통 슈퍼마켓에서 파는 소시지롤이나 샌드위치, 감자침 같은 음식들이 주를 이룬다. 


드레스를 입고 풀화장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평소 옷을 입고 온 사람도 있다. 드레스를 입었어도, 여자들의 옷차림은 묘하게 짧거나 노출이 심하고, 남자들 역시 정장을 입었어도 묘하게 타이트한 핏이거나 넥타이를 안 하고 단추를 한두 개 풀어헤치고 있기도 한다. 정장이 아니라 그냥 운동화에 헐렁한 운동복에 반팔 티셔츠 차림인 사람도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떠들썩하고, 노랫소리가 크며,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떠들고 술을 마신다. 

파티의 중반쯤 되면 이미 홀의 벽 쪽이나 테이블 위에는 빈 파인트 잔이나 맥주병들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하고, 누군가가 술을 바닥에 쏟아서 바닥이 찐득거리고, 누군가는 이미 무아지경에 빠져 춤을 추고 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shot (샷?)을 주문하는 빈도수가 높아지고, 홀 밖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그득해지고, 누군가는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해있다. 


상류층의 파티는 네트워킹이 전제되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거기 아는 사람이 없어도 주위에서 알아서 말을 걸어주며, 내가 말을 걸어도 대화에 응해준다 (그걸 유지하는 건 다른 종류의 문제지만 말이다.) 

그러나 항상 긴장해야 하고, 지키고 신경 써야 할 게 많아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신발부터 내던지고 편안한 옷을 입은 다음에 아이스크림을 퍼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워킹클래스의 파티는 아는 사람이 없다면 안 가는 게 최고다. 

아이들 축구팀의 부모들이 모여서 할로윈 파티를 한다? 아이를 위한 친목도모를 위해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이걸 계기로 친해지기 위해 파티에 가겠다? 

친목도모를 하고 싶었으면 아이들이 축구를 열심히 하고 있을 때, 거기 서서 나처럼 아이들을 보고 있는 부모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파티에서 그 사람들과 친해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의 파티는 말 그대로 ‘그들’의 파티이기 때문에.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노는 파티. 




그럼 중산층의 파티는 어떠한가? 


자녀가 있는 중산층의 파티들은 대부분 집을 중심으로, 가족단위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서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하고, 누군가의 정원에 모여 바비큐/가든/서머 파티를 하고, 누군가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 


만약 특별한 행사라면 (생일파티 등), 괜찮은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하기도 하는데, 식사를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라도 다시 주최자의 집으로 돌아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식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이런 모임 (social gathering)의 경우 호스트가 음식부터 모든 걸 책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크리스마스 파티나 서머 파티처럼 규모가 커질 경우 (4 가구 이상이 모이는 경우, 한 가구당 자녀 두 명에 부모까지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잡으면 16명 이상이 참여한다), 게스트들이 음식을 하나씩 장만해 오는 potluck 방식으로 하기도 한다 - 그러나 친해지는 초반에 게스트에게 음식을 만들어 오라고 요구하는 호스트는 거의 없다. 


만약 이런 파티에 손님으로 초대받아 가게 된다면 필수로 뭔가를 가지고 가는 게 예의인데, 가장 무난한 선물은 초콜릿 종류 (취향을 모른다면 견과류 종류가 들어가지 않은,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이 들어 가있는 선물 박스가 가장 무난하다), 와인이나 화분/꽃 종류 (만약 호스트가 정원일이나 식물 가꾸는 걸 좋아한다면 화분 종류가 좋고, 만약 취향을 모른다면 꽃이 좋다. 어떤 사람들은 화분을 선물 받는 것 자체를 스트레스로 여기기 때문에). 


이때 뭘 사갈 때도 어디서 사갈 것인가를 잘 선택해야 한다. 이전 글들에서도 말했듯이 영국에서는 '어디에서, 뭘' 사느냐가 의외로 많은 정보를 전달해 주기 때문에. 

가능하면 슈퍼마켓 브랜드가 아닌 게 좋고, 하이엔드 슈퍼마켓인 Waitxxx나 Mxx 같은 곳에서 사가더라도 Waitxxx essential처럼 슈퍼마켓 브랜드의 값싼 라인은 사지 않는 게 좋다.  


아니, 그냥 파티 한번 하는데 이렇게 뭘 따져야 되나?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바로 영국의 중산층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친분을 쌓아가는 방식이지 않나 싶다. 자신이 익숙한 무리들과 주로 어울리는 워킹클래스, 상류층 (두 계급 모두 이사를 잘 가지 않고 대체로 자신이 태어난 커뮤니티에 속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과 다르게 중산층은 대학 입학과 취업 등을 위해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경우가 많고, 그 후에도 직장이나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사를 다니며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면, 아무런 접점도 없는 타인과 친해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먼저 안면을 트고, 저 사람이 나와 맞는지 간을 본 다음, 집으로 초대해서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슬쩍 보여준 뒤, 상대방이 나와, 내 가족과 어울리는지, 성향이 맞는지 판단하는 거다. 

그때 함께 보낸 시간이 괜찮았다면 교류를 이어나갈 노력을 하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 후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다. 

설사 함께 보낸 시간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상대방에게서 고마웠다는 인사도 없거나, 자신의 집에 초대해주지 않았다면, 이 역시 관계 유지에서 감점의 요소이니 그 후 멀어지게 되고. 


이렇게 말하니 꼭 소개팅 같은데, 사실 딱히 다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영국인들의 집에 초대받았다는 건 적어도 상대방이 내게 호감 정도는 있다는 소리고, 이 때 우리의 태도에 따라 차후 관계가 달라지게 되니까. 

그러니 만약 나도 상대방에게 마음(?)이 있다면 가기 전 준비 (적당한 선물과, 적당한 옷차림)부터 그 후까지 (감사 인사, 다음에는 우리 집으로 놀러 오라는 초대) 신경 쓰자.  


물론 이미 친해졌다면 상관없다. 이미 친한 관계라면 상대방도, 당신도 서로의 취향은 이미 파악했고, 그때는 이 내가 초대를 하든, 초대를 받든, 파티라는 것 자체가 정말 놀고 즐기는 자리가 될 테니까. 




12월. 파티의 달이라 말이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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