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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Dec 08. 2024

영국 중산층의 정치 성향

원래는 쓰려던 글이 따로 있었는데, 2024년 12월 3일 점심시간에 잠깐 틀어놨던 뉴스에서 듣고도 믿을 수 없었던 한국의 계엄령 선포 사태 때문에 주제를 바꿨다. 


BBC에서 생중계로 보여주고 있던 한국의 새벽 상황. 


창고를 개조해 서재로 쓰고 있는 남편이 자신의 회의가 끝나자마자 달려와 내게 한국 소식을 들었냐며 걱정하고, Teams를 통해 회사 사람들이 조심스레 한국에 있는 내 가족의 안부를 물어오고, 동시에 내 폰 역시 친구들의 문자로 바빴던 날. 


6시간 만에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그 상황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그 뒤 이번 주에 재택근무가 아니라 회사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역시 사람들이 내게 물어왔다. 


“What really happened?”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그러게, 도대체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대신 나는 그렇게 대답해 줬다. 


“I thought a 50 day old prime minister was embarrassing, but nothing compared to this.” 


(참고로 전 영국 수상이었던 Boris Jonhson의 뒤를 이어 2022년 9월 5일에 영국 수상이 된 Liz Truss는 수상이 된 지 50일째 되는 10월 25일에 날 자진 사퇴를 하고, 수상직에서 물러났다. 이때의 일은 위키피디어에 October 2022 United Kingdom government crisis라고 따로 항목으로 나눠져 다뤄질 정도다). 


2022년 Conservative party (보수당)에서 줄줄이 터져 나오던 비리와 사건들은 물론 예산안을 보며 대영 제국의 정치판도 참 난장판이구나, 하고 그때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혀를 차고 말았는데… 

2016년 한국에서 대통령을 탄핵 한 지 얼마나 됐다고 8년 만에 또 이런 일이 터지나. 


차라리 ‘나는 포기하지 않겠다’라고 했다가 딱 하루 만에 말을 바꿔서 ‘아니, 그만할게’, 한 거면 본인만 쪽팔리고 말 문제지만, 이건 국가의 수장이 공권력까지 투입해서 ‘아쒸, 열받는데 진짜 한번 맞아볼래?’하고 6시간 동안 지 힘자랑 한 게 아닌가? 


(참고로 Liz Truss는 당시 야당 수장이던 Keir Starmer (현 영국 수상)의 비판과 사퇴 요구에 10월 19일 “I am a fighter and not a quitter”.라고 답한 뒤, 하루 뒤 10월 20일에 10 Downing Street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어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래도 영국에서는 알아서 사퇴한 덕분에 보리스 존슨 당시 재무장관 (Chancellor of the Exchequer – 영국 수상이 머무르는 10 Downing Street 옆집 11 Downing Street의 주인이다)이었던 Rishi Sunak이 2024년 총선 전까지 보수당의 리더로 수상 자리에 올랐다. 

그러다가 이번 2024년 총선 때 드디어 정권이 Conservative에서 Labour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2월 7일 탄핵안 표결이 무산되었다고 하니,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케임브리지 대학에는 10월 초에 새 학기가 시작되면 Freshers’ Fair라는 게 열린다.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의 동아리 활동을 소개하는 대규모의 행사인데, 2일에 걸쳐 진행되며 학교 동아리뿐 아니라 기업들의 후원도 받고 있어서 규모가 웬만한 컨퍼런스 뺨칠 정도다. 


나 역시 당시 신입생으로 여기에 갔었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레 앞뒤로 서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게 되는데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던 건, 바로 내 앞에 줄 서 있던 학생들이었다. 


“넌 무슨 동아리에 들 거야?”


라는 평범한 질문에, 내 앞에 서있던 학생이,


“I’m going to join the Labour party” (노동당에 들 거야)


라는 대답을 했기 때문에 (나는 이때 정당 가입이 동아리 활동의 하나로 치부되는 지도 몰랐다;;)


같이 온 친구는 아닌지, 그 대답에 그 학생의 앞에 서 있던 두 학생이 그 학생을 돌아보며, 


“Why?”


라고 물었고 (알고 보니 그들은 Conservative party – 보수당에 지원하려는 학생들이었다), 거기서 난데없이 정치 토론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내 뒤쪽에 위치해 있던 Green Party를 지지하는 학생까지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가 한국에서 학부를 다닐 때만 해도, 대학생들이 정치에 관심 있으면 다들 ‘운동권’이라고 보는 시선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운동권이라고 하면 다들 좌측 진영, 빨갱이, 혹은 좋게 봐줘서 진보라고 취급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정치 토론은 거의 터부시 되어있었고, 그런 까닭에 아직 만으로 20살도 되지 않은 영국 학생들, 특히 전공도 정치가 아닌 학생들의 정치 토론이 신기했었다. 

하긴 역대 영국 총리들을 보면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출신이 많으니 놀랄 건 아니겠지만. 


여러 나라의 사례를 봐도, 대부분의 정치 진영은 보수와 진보, 우측과 좌측으로 나눠지는데, 보수는 기득권과 자유 경제를 대표하고, 진보는 노동자 계급과 복지를 중시한다. 

여기에 나라마다 역사나 사회적 환경에 따라 특수성이 부여되기도 하는데, 분단된 한국의 상황 때문에 한국에는 ‘공산주의’라는 냉전 시대의 개념이 여전히 정치판에 짙게 묻어 있다면 (예, 종북 종자, 빨갱이 등의 언어 선택과 사용), 영국에는 왕실과 종교가 묻어 있다. 


영국의 정당 (Political parties)의 역사가 1685년 가톨릭 출신이던 제임스 2세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7세)의 즉위와 관련되어 대립하게 된 Tories (토리당 – 현 보수당의 전신에 가까운 정당. 제임스 2세의 즉위를 찬성했다 – 원래는 중세 아일랜드 말로 ‘outlaw – 무법자/강도’를 뜻하는 비하의 표현이었다)와 Whigs (휘그당 – 이후 Liberal party로 변해 집권당의 위치를 누리다가 1918년부터 퇴락하기 시작해 결국 Liberals와 Social Democrat Party가 합쳐져 현재의 Liberal Democratic이 되었다. 가톨릭 신자인 제임스 2세의 즉위를 반대했다 – 원래는 스코틀랜드의 옛말로 말 도둑 (horse thieves)을 뜻하는 비하의 표현)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해석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History of political parties)


그렇게 가톨릭과 개신교 (정확히는 Church of England)로 나눠져 대립하던 두 정당이었지만, 제임스 2세를 축출한 1688-1689년의 명예혁명 (Glorious Revolution) 때 힘을 합친 뒤 영국의 정치는 정당 체제로 좀 더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다. 


처음에는 휘그당의 세력이 좀 더 컸지만, 그 뒤 다양한 혁명 (American and French Revolutions, Industrial Revolution)과 세계 대전을 겪으며 토리당은 Conversative party (보수당)으로 새로운 부를 짊어진 중산층과 자유 경제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자리 잡았고, 동시에 대두된 빈부 격차와 노동계급의 착취로 19세기말, 20세기 초에 태동한 노동조합 운동 (trade union movement)에서 시작된 노동당 (Labour party)이 나중에는 휘그당을 누르고 보수당에 이어 영국의 대표 당으로 떠올랐다. 


이런 역사에서 알 수 있다시피 영국의 중산층은 대대로 보수당의 지지 세력이 많거나, 그게 아니면 좀 더 온건한 Liberal Democrat Party (자유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Labour party는 노동층이 많은 웨일스와 영국 북부 쪽에서 특히 강세를 보였지만, 사실 브렉시트 하면서 이들보다 더 적나라한 단어와 대놓고 반 이민주의를 내세우던 UKIP (UK Independent Party)에 표를 다 뺏겼다가, 보수당 같지 않은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던 보수당의 브렉시트 지지자들에게도 밀리면서 세력을 많이 잃었다. 

물론 그것도 보수당의 집권 기간 동안 터진 수많은 사건들로 14년이 지나서야 힘을 얻어 집권당이 되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한국의 정치판에 대한 무수한 비판이 난무하긴 하지만, 영국의 정치판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한다. 욕설이나 고성 대신 신랄한 비난과 조롱이 오고 가고,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어쩌면 저렇게 거짓말도 참신하고 뻔뻔할 수 있나 싶기도 하다. 


특히 브렉시트 (Brexit)가 결정된 뒤 보여준 영국의 정치판은 그야말로 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집권당을 유지했고, 그 결과에 취해 거리를 활보하던 건 외국인들에게 “Go back to your own country!”라고 소리치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보인 인간들이었다. (A frenzy of hatred: how to understand Brexit racism


아무리 결과가 뭣 같아도 묵묵히 제 길을 살아가는 영국인의 국민성을 생각하면, 저렇게 요란을 떠는 게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때문에 그들은 집권당 하나를 바꾸는데 14년이나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영국 수상이 5번이나 바뀌었음에도. 

(David Cameron – 브렉시트 폭탄을 던져놓고, 결과가 어떻든 나라를 이끌겠다더니, 정작 결과가 나오자 사퇴했다. 그 뒤 리더십 자리를 놓고 브렉시트를 대대적으로 옹호했던 보수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온갖 눈치싸움과 배신이 난무하더니, Theresa May가 구원 투수로 나왔고, 그다음에는 드디어 브렉시터들의 앞잡이였던 Boris Johnson이 수상직에 오르고, 코로나 사태 때부터 온갖 스캔들과 혐의에 시달리다가 드디어 가나 했더니, Liz Truss가 나왔다가 50일 만에 사퇴, Rhisi Sunak을 끝으로 보수당 집권이 막을 내렸다)


변화가 더딘 영국에서 14년에 걸쳐 이런 변화가 작게나마 이루어졌다면, 그에 비해 난데없는 계엄선포령에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온 한국의 시민들은 어떠한가. 




정치 얘기는 민감하다. 

이건 취향 정도가 아니라 각자의 신념이나 이념, 이해관계 같은 게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거기다 정치는 생활 전반을 좌우한다. 

정치는 개봉했지만 안 봐도 사는데 딱히 지장 없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영국의 중산층들의 대화주제에는 정치가 빠지질 않는다. 

거의 교양 과목의 하나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건 정말 대화 주제일 뿐, 거기에 열정 섞인 어떤 비난이나 비판이 섞이지는 않는다. 

대부분 상황이 못마땅하더라도, 또 알아서 적응해 간다고 해야 하나? 


예전 브렉시트의 결과가 나오고 ‘Vote leave’라는 붉은 슬로건으로 제 집 주위를 장식했던 이들은 바비큐니 뭐니 하며, 제 속에 담긴 외국인/이민자에 대한 분노와 경멸을 여실히 드러내며 즐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었다. 


그 원인 중 하나로 누군가는 그런 지적을 하기도 했다. 

원래 정치 활동에 잘 참여를 하는 사람들 (선거활동에도 잘 참여하고, 정치 상황에도 밝은 대다수의 중산층들)에게는 브렉시트가 워낙 말도 안 되는 소리라 도대체 이걸 누가 찍겠냐고 무시했었지만, 원래는 선거에 잘 참여하지 않고 정치에도 관심이 없는 노동층 (사실은 무직이나 일용직에 종사하며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들이 대거 선거에 참여하는 바람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참고: Why the remain campaign lost the Brexit vote)


그런 식으로 접근했을 때 확실히 정치는 무서운 부분이 있다. 

개개인으로 절대 이루지 못할 역사적 흐름을 만들어 내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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