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Most popular hobbies & activities in the UK as of September 2024)에 따르면 영국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취미 생활은 독서 (42%), 요리/제빵 (38%), 여행 (38%), 쇼핑 (33%), 비디오 게임 (32%), 애완동물 돌보기 (31%), 그 외 사람 만나기 (socialising), 야외활동, 운동, 컴퓨터 관련, 정원 가꾸기, DIY 등이다.
다른 설문 조사 (Brit's favourite hobby revealed, with almost 40% regularly doing it)에서는 요리/제빵, 정원 가꾸기, 사진 찍기, 뜨개질, 그림 그리기 같은 취미 생활이 top 5에 올랐고, 그런가 하면 최근 가장 뜨고 있는 취미 생활 (The top trending hobbies in the UK)로는 암벽 등반 (rock climbing), paddleboarding(패들보드), open air swimming(야외수영), canoeing(카누) 등이 제시되었다.
참고로 궁금해서 찾아보니, 한국 같은 경우는 여행이 43%, 쇼핑 29%, 독서 27%, 야외 활동 22%, 비디오 게임 21%, 운동 20%, 컴퓨터 관련, 애완동물 돌보기, 차 관련, 등으로 나왔다.
이걸 보면서 조금 놀랐던 건 의외로 독서가 아직도 취미 활동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거고, 대신 티브이나 영화 관람 혹은 ‘영상 보기’ 같은 게 상위권에 위치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것도 아니면 ‘핸드폰 하기’라든가.
혹시 우리 학교 다닐 때 취미, 특기 란에 별로 할 말이 없을 때 썼던 것처럼 이 사람들도 무난하게 독서하기를 선택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만큼.
아니면 핸드폰 하기는 취미 생활이 아닌 일상생활의 일부분이라 아예 고려조차 안 했다거나?
한국의 취미 생활 목록을 보면서 살짝 놀랐던 건 여행이나 야외 활동의 비율이 생각보다 높다는 거고 (혹시 등산이나 산책, 야외에서 조깅하기, 캠핑 같은 것도 다 여기에 속하기 때문일까?), 영국의 취미 생활 목록을 보면서는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이 떠올랐다.
영국의 중산층들이 얼마나 휴가에 진심인지는 예전에도 글에 적었으니 여행의 비율이 높은 거야 이해가 되고, 웹소설 같은 문화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영국에서는 여전히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독서하는 인구수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독서하는 인구수는 대체로 노년층에 분포되어 있는데, 도서관에서 활자가 크게 프린팅 된 책을 빌려 읽거나 오디오 북을 들으며 뜨개질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도서관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의 수가 상당하고, 실제로 아이들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동네 도서관에서 행사도 많이 한다.
여기까지 쓰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한국에서는 왜 도서관을 책을 빌리는 곳이 아니라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은 적도 많은데 말이다.
영국 같은 경우 대학교에 부속된 도서관이라면 몰라도, 지역 도서관은 말 그래도 책을 빌리러 오는 곳이고, 거기서 부차적으로 아이들 동화 읽어주기 같은 행사를 하거나, 어르신들을 위해 컴퓨터 교육을 하거나, 아니면 Job centre (직업센터)를 운영하기도 한다.
다시 취미 생활로 돌아와, 런던행 기차를 타면 대체로 사람들의 패턴이 보이는데, 그들은 대체로 책을 읽는 사람, 휴대폰이나 태블릿으로 영상을 보는 사람, 그리고 랩탑으로 일하는 사람 등으로 나눠진다.
50-60대 이상의 사람들은 독서를 하거나, 신문을 보거나, 신문에 실려 있는 퍼즐을 푸는 사람들이 많고, 10대에서 30대까지 어리고 젊은 연령층의 사람들은 주로 영상을 보거나 소셜미디어를 하고 있다.
그리고 30-50대의 중장년층은 대체로 랩탭이나 업무용 휴대폰으로 일을 한다.
요리/제빵 (baking) 같은 경우, 영국은 확실히 오븐을 사용한 요리의 종류가 많은 편이긴 하다. 요리보다는 케이크나 디저트 같은 걸 만드는 베이킹 쪽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더 많고.
영국에서 9월부터 11월까지 방영해 주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베이킹 프로그램인 The Great British Bake Off 같은 프로그램을 방영할 때면 슈퍼마켓에서 대대적으로 베이킹과 관련된 물품 행사를 하는 건 물론, 회사 같은 곳에서도 관련 행사를 하는 곳이 많으니까.
그리고 어느 조직을 가도 꼭 이렇게 베이킹을 좋아해서 회사에 정기적으로 자기가 만든 쿠키나 케이크 같은 걸 가져와서 나눠 먹는 분들이 있다.
그중 솜씨가 좋은 분들은 주위에 행사가 있을 때 아예 돈을 받고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정원 가꾸기 (gardening)는 중산층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취미 활동 중 하나인데, 당연히 집에 정원이 있으니 그걸 가꾸거나 식물이나 농작물을 키우는데 시간을 할애하거나, 아니면 아예 allotment라고 집 근처에 텃밭을 대여하거나 사서 농작물을 가꾸는 이들도 있다.
만약 정원이 있는데도 정원 가꾸는 게 취미가 아닌 중산층은 정원을 방치하는 대신 정원사를 고용한다. (취미 생활과 별개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운동은 종류가 나눠지는데, 야외에서 운동하는 사람들과 헬스클럽 같은 곳에 가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중산층에게 인기 있는 야외 운동의 종류로는 테니스, 패들보드, 카누, 요트, 서핑, 승마, 자전거 타기 등이 있다.
축구나 럭비 같은 운동들은 보통 남자들이 ‘한때 했었다’라고 말하는 운동 종목들이고, 여전히 체력과 열정이 넘쳐 난다면, 주말에 동네 팀에서 뛰거나 아니면 아이들 축구/ 럭비 클럽에 코치로 활동하기도 한다.
반면 테니스나 자전거 타기 같은 경우는 중장년층의 남자들도 꾸준히 즐기는 운동이고, 골프 같은 건 세일즈나 비지니스 쪽에 종사하는 남자들에게 인기 있다.
영국에는 강을 낀 도시, 타운이 많아서 의외로 물과 관련된 운동 종목 – 카누, 조깅, 요트 등이 취미 생활 중 하나로 잘 자리 잡혀 있다. 강가에 배를 정박해 두고, 주말이나 날이 좋을 때 배를 몰고 강가를 유람하는 사람들도 꽤 되고, 주말마다 바닷가로 서핑하러 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서핑하러 다니는 경우에는 젊거나 여전히 싱글인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여자들 경우 무난하게 조깅을 하거나, 헬스클럽에 다니거나, 요가/필라테스 등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외 패들 보드나 패들 보드 위에서 하는 요가 클래스도 꽤 인기 있는 종목이다.
그리고 영국에는 조금만 타운을 벗어나도 넓게 펼쳐진 벌판이나 작은 언덕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승마하는 어른이나 어린아이들도 꽤 볼 수 있다. 이 경우, 마구간에서 빌려 타거나 아니면 아예 말을 사서 근처 마구간에 관리를 맡기고 시간이 되면 가서 타곤 한다.
한국에서 ‘등산’이라고 하는 경우, 여기서는 ‘mountain climbing’ 보다 ‘hill walking’ (언덕 걷기)로 더 자주 불리는데, 영국에는 산보다 굽이치는 언덕이 이어지는 구릉지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한국의 등산 동호회처럼 각 잡고 날 잡아서 산을 오르는 행위라기보다, 주말이나 가족 여행의 일환으로 하는 행사에 가깝다.
실제로 영국에서 이렇게 언덕을 따라 걷다 보면,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아니라 어린아이들과 개를 포함한 가족 단위의 등산객을 훨씬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럼 영국의 중산층에게서 잘 볼 수 없는 취미 생활은 뭘까?
통용적으로 빙고 (Bingo) – 한국에 알려진 빙고는 미국 방식으로 영국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영국에는 Bingo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따로 있으며, 주로 나이 든 사람들에게 인기 있지만, 회사에서도 종종 파티 게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 , 다트 (Dart), 당구 (Pool) 등이 있다.
공통적으로 다들 어느 동네에나 있는 펍 (관광지가 아니라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로컬 펍)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고, 이렇게 펍에 가서 스포츠 중계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것과 합법 도박장에 가서 도박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 외 같은 티브이 보기라도, 보는 프로그램의 종류에 따라 나눠진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사실 취미 생활로 계급을 단정 짓기는 어렵다.
예전처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된 것도 아니고, 선택지를 강제하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현대 사회에서 온라인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허용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취미 생활은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비슷한 어떤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디에서 누가 주최하는 모임에 참여해 취미 생활을 할 것인가에 따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계급, 나이대, 특성 등이 정해진다.
만약 평일 낮동안에 주로 이루어지는 독서 모임, 뜨개질 모임, 그림 그리기 모임이라면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나이가 있고 이미 은퇴하신 여성분들이 많을 거고, 저녁 대학가 근처에서 이루어지는 언어 교환 모임이라면 젊은 학생들, 혹은 직장인들이 많을 거다.
그리고 의외로 일과 육아, 집안일에 시달리는 중산층들은 이렇게 주중이나 주말에 바깥에서 잘 보기 힘들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거나, 아니면 가족 단위로 할 수 있는 걸 선호하는 걸지도...
계급 간의 교류가 딱히 활발하지 않은 영국이라서, 아마 당신은 단순히 취미 생활을 하러 갔다가 갑자기 문화 충격까지 받고 올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뭐 배움의 한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과 함께 하든, 혼자 하든 그렇게 만들어 가기 시작한 나라는 사람의 한 조각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