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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영국 중산층에 대해 뭘 안다고?

by 민토리 Dec 29. 2024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은 이런 의문을 품으실 수 있다. 

영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영국인과 결혼한 것도 아니고, 영국인 국적을 취득한 것도 아닌 네가 영국 중산층에 대해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떠들어 대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나는 영국에서 산지 고작 20년이 좀 넘었을 뿐이고, 여전히 한국인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영국인 혈연은커녕 영국인 남편도 없다.  

그렇다고 내 전공이 인문사회학 계열인 것도 아니고, 이런 쪽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럼 도대체 뭘 믿고 이런 글을? 


‘의태 (擬態: mimicry)’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정의는 

어떤 모양이나 동작을 본떠서 흉내 냄
동물이 자신의 몸을 보호하거나 사냥하기 위해서 모양이나 색깔이 주위와 비슷하게 되는 현상 (표준국어 대사전) 


한국에 살 때 나는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삶을 살았다. 

연탄 때던 시절 아궁이가 딸린 시멘트 바닥의 작은 부엌이자 욕실 같은 다용도 공간 옆에 붙어있는 작은 방 한 칸짜리. 

'응답하라 1988' 덕선이네 집의 반도 되지 않을 것 같은 그 작은 공간이 다섯 식구의 보금자리였다. 

거기다 어릴 때 집안 사정으로 수도권을 벗어나 부산으로 이사 왔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이상한 말투를 쓰는 거지 아이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만약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면 그건 그 사람이 정말 무탈하고 무난한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내게는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꽤 선명하게 박혀 있기 때문에.  


요즘의 학교에서도 아이들끼리 서로의 가정환경이나 재력을 비교하며 따돌림을 시키거나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던데, 내가 어릴 때도 딱히 사정이 다르진 않았다.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급이 나눠졌고, 자식들의 학교 생활에 열렬히 참여하는 있는 집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향한 취급은 아이들뿐 아니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극명했다. 

그 와중에 부모의 비호도 없이 혼자 떠도는 단칸방 출신 아이의 취급은 뻔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번듯한 사회 구성인척 하려는 가면을 한두 개는 가지고 있는 법이지만, 그들이 가면을 벗는 순간이라면 아무래도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도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일 때 (집과 같은 개인적 공간), 혹은 상대방 앞에서 굳이 그런 가면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때가 아닐까 싶다.


가면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대방에는 친한 친구나 가족도 포함되겠지만, 타인이라도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되면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지는데 주저함이 없어진다. 

내가 조금 무례하게 군다고 상대방이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보다 더 약해 보이는 상대가 그 대상이라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뒷배나 어른의 보호가 없는 어린아이는 못 볼 꼴을 많이 보고 자라고, 위선이 살아남는 수단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워간다. 


물론 그렇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들장미 캔x 같은 이들도 많다.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하고 동경하는 인간상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인성을 갖추지 못했다. 

내 앞에서 내 부모까지 욕하며 내 가난을 비웃다가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 앞에서는 순식간에 태도나 말투를 바꾸는 사람들을 보는 건, 진흙탕에 처박힌 체 서커스를 관람하는 것과 같았다. 아무리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신기하고 화려해도, 결국 내가 겪게 되는 건 비참함과 허탈함이 동반된 분노인 그런 상황.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도 보호색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조금만 세게 잡아도 부서질 것 같은 별 볼 일 없는 흙수저를 은박지로 꽁꽁 싸매서 은수저는 아니라도 스테인리스 스틸인 척이라도 하려는 노력말이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비주류에 없는 취급을 받고 살다가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 도착 한 곳이 영국이었다. 그것도 케임브리지 (Cambridge).  


한국에서는 고작해야 부잣집 서울애를 보는 게 다였는데, 케임브리지 대학에 오고 나니 다른 나라 왕족도 놀라운 신분이 아니었다. 

딱히 큰 도시도 아닌데, 그곳에 영국 사회의 축소판이 있었다. 


대학에 속한 사람과 지역 주민들. 재학생들 사이에서도 컬리지의 네임값으로 나눠지고, 성 (surname)만 들어도 다들 알아주는 상류층 학생들은 버틀러 (butler - 집사)가 존재하는 자신들만의 프라이빗 클럽에서 모여 친분을 다졌다. 

중산층의 부모들은 자식의 성취를 자랑스러워했고, 방학 전후면 차를 가지고 와 자식의 이사를 도왔으며, 자식의 대학 친구들을 흔쾌히 집에 초대해 대접했다. 


그곳에서 상류층과 중산층의 생활을 엿봤다면, 그곳을 벗어나서는 중산층과 워킹클래스의 경계를 봤고, 영국의 지역차를 깨달았다.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We’와 ‘They’라고 지칭되는 두 계급 사이에 그어진 선은 분명했다. 


한국에서는 고작해야 지방 출신의 흙수저 같은 딱지가 내게 붙었지만, 영국에서는 그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수많은 딱지가 붙었다. 

내 국적조차 바꿔 버리고, 내 학력 따위는 코 푼 휴지조각 취급하며, 내 성격과 호불호는 모두 내 피부색 앞에서 정형화되어 버리는, 그럼으로써 나란 존재는 사라지고 내 위에 붙은 딱지만 남게 되는 그런 상태. 


그런 상황에서 나도 그들과 같은 사회에 속하는 동등한 인간이라는 걸 어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도 할 줄 모르는 ‘mail-order bride’ (우편으로 배달된 신부 - 실제로 길가에서 대놓고 나를 가리켜 그렇게 부르던 영국인이 있었다) 혹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좀 더 정교한 가면을 만들어 써야 한다. 

특이함보다는 익숙함을 강조해서 내가 그들과 똑같은 사람임을 먼저 상기시켜 줘야 한다. 

친분 따위는 그 후의 문제다. 


그러다 보니 눈치가 늘었을 뿐이다. 

내가 어디에 속해야 할지 결정하고, 그에 맞춰 보호색을 조절하고, 좀 더 정교하게 가면을 다듬어 쓰기 시작했을 뿐이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태
If you know others and know yourself, you will not be imperilled in a hundred battles; if you do not know others but know yourself, you win one and lose one; if you do not know others and od not know yourself, you will be imperilled in every single battle.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으나,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지며, 적을 모르고 나 조차도 모르면 싸움에서 반드시 위태롭다 
[손자병법 – The Ark of War, Ch.3. by 손무, Sun Tzu]


나는 이 말이 해외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영국이란 나라도, 그 나라의 문화도, 언어에도 서툴고, 나란 사람이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도 모르던 유학 초기. 나는 매번 실수를 반복했고, 오해는 쌓였으며, 쉽게 고립되었다.  

영국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나는 여전히 그들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었지만, 적어도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는 알았기에 적당히 그들에게 맞춰가는 법을 터득했고 (일승일부), 

이제야 나는 대충 어떻게 하면 그들 사이에 무난하게 끼어들 수 있는지 깨닫고 실천에 옮기는 중이다 (지피지기). 


상대방의 말투와 옷차림, 행동, 태도에서 단서를 찾고, 그 사람을 미러링 한다. 적당히 인사하고 웃고, 가장 공통된 화제를 찾아 대화를 이어가고, 적정선을 지키면서. 그리하여 상대방이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어떨 때는 직접 등산할 때보다 맵으로 살피는 게 지형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는 것처럼, 내가 철저한 외부자로 그 안에 섞여 들기 위해 노력했기에 영국의 이런 계급 차이를 목격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몇 번 말씀드렸지만,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분석에 가까운 글입니다. 

아마도 당신이 보는 영국의 사회는 또 다른 모습일 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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