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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Nov 10. 2024

영국 중산층의 외식문화

한국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기 위해 만난다고 하자. 그러면 보통은 '메뉴'를 정한다. 

"오늘 뭐 먹을래?"

이때 보통 나오는 대답은 한식, 중식, 파스타, 피자, 고깃집, 등등 음식의 종류가 나올 거다. 날씨와 기분, 모임의 종류에 따라 뭘 먹을 것인가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장소가 정해진다. 


영국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기 위해 만난다고 하자. 그러면 뭘 정할까? 

메뉴(What)가 아니라 어디(Where)에서 만날 지부터 정한다. 그리고 장소를 정하기 위해서는 언제(When)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오전에 만나 가벼운 아침 식사를 할 것인가, 늦은 오전에 만나 브런치를 먹을 것인가, 점심때 만나 식사를 할 것인가, 아니면 늦은 오후에 만나 차를 같이 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저녁 식사를 위해 만날 것인가. 

그렇게 시간 때가 정해지면 그다음에 장소를 물색한다. 

메뉴는 사실 그 장소에 따라 따라오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만약 어디 음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만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한국에서는 외식의 종류가 음식의 타입이나 종류에 따라 나눠진다면 영국에서는 대체로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Cheap food vs. Proper food. 

싼 음식과 제대로 된 음식. 


싼 음식에는 영국의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Chip shop (감자칩을 파는 가게, Fish n' chips take-away 점도 포함된다.), 샌드위치 가게, 길거리 음식 (Gxxxgs 같은 곳에서 파는 소세지롤, pasty 등등 다 포함한다), Chinese/Indian takeaway (레스토랑이 아니라 주문배달 전문점), 케밥/치킨/피자 주문배달점, 그 외 패스트푸드 전문점 (Mcxx 같은 곳)도 다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곳의 특징이라면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하거나 없고, 테이크아웃 (take-away)인 경우가 많으며,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더라도 보통 줄을 서서 주문한 뒤 앉아서 먹는 셀프서비스 방식이다. 


보통 10파운드 이내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리거나 (보통 테이크어웨이 해서 사무실에 가서 먹는다), 어린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거나, 아니면 저소득층이 주로 외식할 때 사용하는 장소들이다. 


Cheap food라고 부르는 그 이면에는 가격이 싸다는 뜻도 있지만, 음식 재료의 품질이나 서비스 같은 게 굳이 나쁘다기보다 말 그대로 'cheap - 싸다',라고 그 수준을 낮춰보는 뜻도 있다. 


그럼 Proper food - 제대로 된 음식이란 뭘까? 


위에서 말한 음식들을 제외하고, 요리 과정이 들어간 음식을 말하고, 그 외 먹을 수 있는 분위기가 제대로 된 곳을 말한다. 

사람들끼리 부대끼면서 줄을 서지 않고, 자리에 앉아 제대로 된 서빙을 받으며, 음식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곳에서 먹는 음식 말이다. 


만약 같은 피자전문점이라도 치킨, 피자, 케밥, 등을 취급하는 테이크어웨이 가게라면 싼 음식에 속하지만, 제대로 된 레스토랑의 화덕에서 직접 구워주는 피자, 제대로 된 식기에 담아져 나오는 치킨을 파는 곳이라면 제대로 된 음식으로 취급받는다는 거다. 


즉, 영국의 외식 문화에서 중요한 건 음식의 종류가 아니라 그 음식을 소비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다.  




웨일스 남부에 살 때 아이들 방과 후 활동을 기다리다가 어쩌다 말을 트게 된 아주머니와 대화 도중에 Fish 'n' chips 얘기를 하게 됐다. 영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던 요리였기 때문에 몇 번 먹어봤지만 솔직히 내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기름지고, 그렇다고 튀김옷이 바삭한 것도 아니고, 거기다 같이 나오는 감자칩도 눅눅한 데다가 소금과 함께 뿌려먹는 식초의 향이 역했으니까.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하자 아주머니가 왜 그걸 안 좋아하냐고 안타까워하시더니 가게 한 군데를 추천해 주셨다. 정말 맛있고 싼 곳이라고. 


그분의 말을 듣고, 옆을 지나가던 가족들까지 동의하며 추천했기 때문에 나는 그 가게의 이름과 주소를 받아다가, 그날 저녁 그곳에 들렸다. 

주거지역의 초입에 있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테이크어웨이 가게였는데, 맛있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이미 다섯 명 정도가 내 앞에 줄을 서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근처의 주거환경을 봤을 때 이미 감이 왔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숨어 있는 보석이라도 발견할지, 그런 기대를 가지고 묵묵히 기다렸다. 


그렇게 대략 20분가량을 기다린 다음에 종이에 둘둘 싸인 피시 앤 칩스 2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네가 웬일로 이런 걸 사 왔냐고 의아해했고, 나는 남편에게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며 포장을 풀었다. 

"...."

한입을 먹고 둘 다 말이 없었다. 

또 한입을 먹고 남편이 말했다. 

"... it's alright."

거기다 내가 말했다. 

"No, it's awful"

괜찮기는 개뿔. 맛있기는 무슨. 크기만 클 뿐 똑같이 눅눅한 튀김옷에 식초향만 역했다. 피시 앤 칩스 두 개에 6파운드 (만천 원 정도) 정도밖에 주지 않았으니, 크기에 비하면 싸긴 쌌다. 


그 뒤로 2년 뒤. 브리스톨 근처에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또 피시 앤 칩스 소리가 나왔다. 

친구네 부부가 말했다. 집 근처에 정말 괜찮은 피시 앤 칩스를 파는 곳이 있다고. 

흥미가 생기진 않았지만, 친구네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점심을 거기서 먹자며 예약까지 하는 바람에 갔다 (맞다, 예약했다). 


그 레스토랑은 바닷가 근처 옹기종기 귀여운 휴가용 별장들이 들어선 작은 타운에 있었는데, 겉으로 볼 때부터 평범한 피시 앤 칩스 가게가 아님을 알아챘다. 

거기서 파는 피시 앤 칩스는 무려 16파운드짜리. 다양한 해산물로 된 starter, side dish가 하나에 기본 5파운드가 넘었으니, 정확히는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이라고 하는 게 맞았다. 


우리는 거기서 화이트 와인을 시키고, 전채를 두어 개 시켜 나눠 먹은 뒤, 피시 앤 칩스를 시켰다. 

그때 먹은 피시 앤 칩스는 단연코 훌륭했다. 바삭바삭한 튀김옷에 생선의 부드러운 하얀 살. 거기다 세 번 튀겨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감자칩. 레스토랑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Tartar 소스. 


돈값을 했다고 하기에는 비싸면서 맛도 없는 곳도 많이 가봤기에 바로 동의할 순 없지만, 그래도 영국 생활 10년이 넘어서야 처음 맛보는 괜찮은 fsh 'n' chips였다.  




만약 영국의 워킹클래스들이 값이 싸고, 접근성이 용이하며, 양도 만족스러운 외식을 선호한다면, 영국의 중산층에게 외식이란 단순히 한 끼 식사를 때우는 용도로만 쓰이지 않는다. 가족끼리 여행하면서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하게 되는 외식을 제외한다면, 외식은 보통 어떤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혹은 사교활동을 위해 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장소의 선정은 위에서 말했듯이 보통 레스토랑이나 펍 등이 주로 이용되는데 (낮에 만나는 약속에는 보통 분위기 좋은 카페를 이용한다), 여기에도 급이 나눠진다. 

펍이라도 Wexxxspoon 같은 체인점이나, 좀 그런 동네에 있는 펍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영국 드라마 Eastenders에 자주 나오는 펍 같은 걸 생각하시면 된다. 주로 동네 사람들이 저녁에 가볍게 맥주를 한잔하기 위해 들리며, 커다란 티브이가 있어 스포츠 경기 중계를 주로 해주고, 메뉴가 천편일률적이며, 간혹 찌든 술 냄새 같은 게 풍기고, 무엇보다 들어가면 서부영화에 이방인이 등장했을 때 시선이 쏠리는 것처럼 딱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등은 모두 중산층의 외식 장소에서 제외된다. 


그들은 차가 있기 때문에 30분이 걸리더라도 분위기나 서비스 질이 좋은 펍이나 레스토랑으로 가는 걸 선호한다. 그렇다고 한 코스에 30파운드가 넘는 파인 다이닝을 선택하진 않지만 (결혼기념일 등 로맨틱하거나 특별한 경우 제외), 그렇다고 가격이 장소 선택에 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거기 싼데 맛있다더라'라는 이유가 통용되지 않는 것). 

 

외식비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전만 해도 메인메뉴가 10파운드 (1만 8천 원 정도) 안팎이었는데, 요즘에는 기본으로 다 15파운드 (2만 7천 원 정도) 이상은 되는 것 같다. 

물가가 이 정도로 올랐으니 밖에 나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한 끼 하면 기본으로 한 사람당 30-40파운드 (5만 4천 원에서 7만 2천 원 정도)는 나오고, 이러니 어떻게 보면 외식 문화조차 계급이나 소득 수준에 따라 나눠지는 건지도. 


여기에 더해서 그들은 외식할 때도 티가 난다. 


그 장소에 갈 때 입는 옷차림,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 식기를 다루는 모습이나 식사하는 태도 등에서 말이다. 


중산층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식사 예절 (table manner) -  허리를 곧게 세우고 팔꿈치를 탁자에서 내리고 (Elbows off the table), 쩝쩝 소리를 내지 말고, 음식이 입이 있을 때는 말하지 말고, 말을 해야 한다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양해를 구해라,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음식을 제대로 잘라먹고, 식사가 끝났으면 접시 한쪽으로 가지런히 모아둬라, 등등 - 을 엄격하게 가르치기 때문에 그게 커서도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 


참고로 더 궁금하신 분들은 이런 것들도 한번 보세요. 

- Elbows off the table: https://review.gale.com/2016/11/30/elbows-off-the-table/

- Is there still a link between social class and food? https://foodmatterslive.com/podcast/is-there-still-a-link-between-social-class-and-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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