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토리 Apr 08. 2020

스스로를 잘 파는 법

How to sell yourself

다른 부서에서 일하고 있지만 일적으로 종종 만나 사적인 얘기도 곧잘 하는 S가 있다. 그녀는 늦은 오후에 내게 뜬금없이 전화를 해서 자기 부서에 x직급 (현재 내 직급)에 공백이 생겨 자기가 임시 승진을 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 말에 축하한다고 말하며, 그럼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채용 공고가 났을 텐데 지원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당연히 할 거지만 아주 떨린다고, 막상 스스로 지원을 하자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있는 곳이 홍보 관련 부서였기에, "Surely you know how to sell yourself"하고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I know how to sell others, but I don't know how to sell myself!"하고 대답했다. 


스스로를 잘 파는 법이라... 내가 아주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이기도 했다. 사실 내가 안 팔릴 이유는 아주 많은데, 도대체 뭘 팔아야 할지, 아니, 뭘 팔아야 팔릴 수 있는지는 그렇게 분명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어딜 가나 나보다 조건 좋은 사람들은 넘치고 넘쳐났으니, 도대체 나란 인간이 뭘 할 수 있는지, 아니 뭐 하나 괜찮은 게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매일 샘솟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서울 출신이 아니라는 것에, 수도권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주눅 들고, 케임브리지에 나오고 나니 어떤 컬리지 소속인지부터 시작해서, 학부부터 한 사람인지, 대학원부터 시작한 사람인지, 대학원생이라면 한국에서의 학부는 어딜 나왔는지, 같은 외국인이라도 영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본국에서는 어떤 수준의 삶을 사는 사람인지 등등... 비교당할 건 많고 많아서, 한국에 20년 넘게 살면서 겪었던 차별과 비교의 순간들은 유학생활 초반 1-2년 동안 거뜬히 넘길 만큼 겪었다. 


학생회 간부 생활을 2년 동안 하고, rowing club를 비롯한 동아리 활동 3개, 라디오 방송 등등 나름 유학생활을 꽤 알차게 보냈다고 생각하는 나이긴 하지만, 논문을 마무리 짓고 취업준비도 해야 했던 박사과정 마지막 1년은 정말 고되고 우울했다. 그동안 아주 사교성 넘치던 사람으로 평가받던 나는 박사과정 말년부터 초조한 마음에 은둔형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무수히 보낸 이력서들에 대한 거절이 매번 내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고,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지고 나면 면접의 순간들이 꿈속에서 무수히 반복되면서 자존감을 끌어내렸다. 내 영어실력이 부끄러웠고, 언젠가부터는 영어를 말하는 내 목소리가 듣기 싫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졌고, 스스로가 초라해 더 이상 사람들 많은 모임에 가고 싶지도 않아졌다. 역시 나란 인간은 뭘 해도 안 되는구나, 여기까지 온 게 용하다, 이대로 어딜 갈 수 있을까, 날 받아줄 곳이 있긴 할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돌아가서는 뭘 하지, 다시 원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건가, 나도 다른 이들처럼 영어 과외 같은 것도 어릴 때부터 받고 그런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면, 등등... 우울한 마음은 아주 끝도 없이 나를 밑으로 잡아당겼다. 모든 게 원망스러웠고,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스스로가 미치도록 싫어졌다. 멍청하고 게으른 X, 하고 스스로에게 욕을 해가며... 


그렇게 시작된 우울증은 해묵은 모든 감정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내가 자살까지 기도했던 아주 어두웠던 과거의 시간들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보다 못한 당시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이 내게 심리상담을 받을 걸 권했고, 그 말에 나는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거냐고 네가 알긴 뭘 아냐고, 가시를 세워 발악을 하다가 결국 다시 밑바닥까지 친 다음에, 대학 내 심리상담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심리상담 서비스는... 그냥 그랬다. 입 밖으로 내뱉는다고 속 시원하지도 않았고, 어떤 날은 '당신이 알긴 뭘 알아'하는 독기 어린 마음으로 상담사를 대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마음이 더 어지러워졌고, 또 어떤 날은 그냥 지쳤다. 그리고 상담은 내가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고, 마침내 직장을 구하고 나서 그만뒀다. 이제는 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물론 그게 끝은 아니었다. 그토록 원하던 영국에서의 첫 직장생활이었는데, 반복되는 일상에 나는 조금씩 지쳐갔고, 참 웃기게도, 이럴라고 그 고생을 해가며 여기까지 와서 공부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박사 동기인 친구들이 나보다 더 잘난 곳에 취업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아주 널뛰기를 했다. 그래서 이직 준비를 하다가 실패를 번복할 때마다 다시 우울의 늪에 빠지고, 이직을 한 다음 반짝 좋아졌다가, 어느 순간 또 우울의 늪에 빠지고... 사실 계속 그랬다. 그러다가 전에 말했듯이 육아휴직의 공백이 있었고, 그때는 바닥을 치고, 치고, 또 치다가, 아주 악에 받쳐서 마음을 바꿔 먹기로 했다. 


그래서 그때 얻은 결론을 말하자면... 스스로를 잘 팔려면, 나는 잘 팔릴 만하다고 스스로 믿어야 한다. 원하는 직장에 자리가 났으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직장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아본 후, 스스로가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느껴야 한다. 그래서 당장 내일 출근하더라도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끼어들어갈 수 있게 스스로를 그 조각 퍼즐처럼 바꿀 수 있어야 하고, 그걸 증명하면 된다. 입사지원서를 쓸 때, 가능한 자세하게 맞춤형으로 자기소개서를 준비해야 하고, 면접을 보게 되면 나는 이미 이 직장에 다니고 있는 당신의 동료다, 뭐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동화시키면 된다. 적어도 내게는 이게 정답이었다. 그렇게 육아휴직 후 대학으로 복직을 했고, 지금의 정부기관으로 이직을 했다. 


한국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국의 공무원 조직은 꽤나 수직적이고, 직급이 아주 철저히 나뉜다. 사내 채팅 망이나 이메일에 나오는 본인의 이름 뒤에는 직급이 또렷이 적혀있고, 프로필에는 자신의 상사가 누구인지 위계적 조직 사회에서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늘 정확히 알려주니까... 그 공무원 사회에서 내 직급은 나름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런 까닭에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영국인들의 조직 사회에서 복잡한 위계질서까지 신경 써가며 일해야 하는 건 아주 지치는 일이고, 나는 매일 내 안에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 5%는 늘 지닌 체 출근하지만 회사 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때로는 발음이 꼬이고, 말이 제대로 안 나와서 당장 '오늘 여기까지'하고 퇴근하고 싶은 심정이 간절할 때도 있지만, 회의에 들어가서는 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걱정이 마음 한컨에서 향 피우듯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아래 팀원과 일대일 면담을 할 때는 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걱정과 불안들은 어차피 퇴근길에, 저녁 식사 도중에, 아니면 잠자기 전에 떠오를 테니까, 정작 일을 할 때는 그냥 입고 있는 옷처럼 취급하려고 한다. 당연히 내게 있는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내 업무의 주가 되는 건 아닌 것들. 그 대신 철저하게 업무를 생각한다.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여기 있는 사람이고, 나는 이 일에 적합하다, 그런 주문 담긴 향수 같은 걸 이 곳에 입사신청서를 넣을 때부터 스스로에게 뿌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그 향수가 옅어지고, 지금 일이 질리기 시작하거나 내게 더 이상 안 맞는다고 느껴지면, 아마 그때 난 또 비슷한 방법을 되풀이할 거다. 새로운 직장과 일자리를 찾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그에 맞는 향수를 제조하겠지. 적어도 그게 내게는 스스로를 잘 파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게 내가 S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You should believe that you fit into that job and show that to them" 




매거진의 이전글 계획적(이어야 하는) 인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