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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May 09. 2020

내 길과 맞는 연애

연애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닌

요즘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사람들과 메신저로 미팅을 많이 한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의도치 않게 그 사람의 사생활도 더불어 알게 될 때가 있다. 아이가 있는지, 개를 키우는지, 고양이를 키우는지, 아이는 몇 명인지, 아이들 나이는 몇인지, 파트너는 있는지, 그들의 직업은 뭔지 등등... 근무 패턴을 얘기하다가 파트너의 유무와 그들의 직업을 알게 되고, 통화하다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든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든지, 갑자기 대화를 하다가, 'sorry', 하고는 'Come on, I'm on the call' 하고 누군가에게 소리친다던지, 그런 일들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 많이 생각하는 건데... 생각보다 싱글맘이나 재혼한 이들이 많다. 그리고 어쩌다 듣게 된 그들의 사정은 꽤 익숙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친한 직장상사이자 고위 공무원이신 P 씨는 기관의 다른 고위 공무원인 G 씨와 부부이신데, 재혼한 사이라고 하셨다. P 씨는 20대에 대학에서 만나 연애한 남자 친구와 이른 결혼을 했다. 그 후 공무원으로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기관으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으셨단다. 대학원 진학도 지원해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그런데 그 당시 남편이 그녀를 대신해 거절했다. 그 당시 살고 있는 곳 (그 사람과 P 씨의 고향이기도 한 지역)에서 이사 가기 싫다고. 그녀는 그 당시 남편과 싸우면서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기회를 포기했다. 그 대신(?) 임신을 했고 이후 세명의 아이를 출산하셨다. 임신과 육아 휴직, 복직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역시 이직이나 승진의 기회가 있었지만, 남편은 변화가 생기는 걸 싫어했고, 그렇게 생활이 지속되다가 그분의 막내가 큰 사고를 당하고 세 달간 휴직까지 하며 아이들을 돌보다가 결국 이혼을 결심하셨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들 학교 때문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갈 엄두는 못 내고, 혼자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는 싱글맘 생활을 하시다가 아이들이 정규 교육을 마치고 하나씩 독립한 뒤에야 옮긴 정부기관에서 지금의 남편을 동료로 만나셨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들은 뒤에, "I know it was your choice, but if I were your friend then, I would have told you to go when you were first offered a job in X"하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녀의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운 건 아니었다. 이미 이전에도 비슷한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남자 친구의 요구로 유학 자체를 포기한 케이스, 남편 때문에 혹은 아이 때문에 유학을 중단한 케이스, 유학을 마치고 취업의 길이 열렸는데도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놓친 케이스, 등등. 그뿐이랴, 승진의 기회가 왔는데도 엄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결국 거절한 케이스, 남편의 직장 패턴을 맞추기 위해 도리어 직장에서의 강등 조건을 받아들인 사람... 한국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국적 불문하고 여기 살면서 만나고 본 케이스들이다. 그렇게 본 여자들의 수가 훨씬 많긴 했지만, 남자들 역시 계속 직장을 바꾸는 아내 따라 직장 패턴을 바꾸면서 생활을 유지하다 결국 지쳐서 이혼을 요구했거나, 계속 자기 직업을 무시하는 아내가 결국에는 바람이 나서 헤어진 케이스, 육아방식이 도저히 맞지 않아 이혼한 후 계속 양육권을 두고 재판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 등등, 여러 경우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서는 이혼한 사람들도, 재혼한 사람들도,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step-brother/sister/mother/father가 있는 게 그렇게 놀라운 것도 쉬쉬할 것도 아니다. 한창 연애가 관심사였던 시기를 지나, 그렇다고 노후를 바라보는 것도 아닌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내 주위에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도, 이혼하고 다시 연애를 시작한 친구들도, 이혼을 위해 법정 싸움을 하는 친구들도, 한쪽이 바람나 난데없이 이혼을 당한 친구들도 있고, 그런 결혼 생활의 위기는 아니라도 나름의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진로에 대한 뒤늦은 후회와 고민, 갈등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뜬금없게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하는 게 얼마나 인생에 중요한가,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모든 연애가 다 신중하고 그럴 필요는 없다. 만남의 종류야 다양하고, 그 만남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바도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런데, 만약 그 연애가 내 삶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의 비중을 가지게 된다면 그때는 좀 심각하게 그 사람과 내가 얼마나 맞는지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은 거다. 성격, 취미, 그런 것들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장기적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길과 얼마나 맞는가, 하는 질문.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 남편과 딱 한번 이혼이란 말까지 나올 만큼 대판 싸운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일과 육아, 가사 분담 병행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그렇지만) 둘 다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아침과 저녁에는 아이들을 챙기고,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에 주중에 못한 아이들과의 놀이와 육아 등을 하느라 늘 바쁘고, 그래서 지쳐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내가 대학에서 일했던 까닭에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재택근무를 했고 대학이 방학 중일 때는 집에서 일하는 기간도 길곤 했는데, 어느 날 저녁에 퇴근길에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남편이 내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집안 꼴이 이게 뭐냐고, 저녁도 준비하지 않은 거냐고, 지금 시간이 몇신 줄 아느냐고.. 순간 어이가 없었다. 나라고 집에서 탱자탱자 논게 아니라 하루 종일 학생들 과제 채점에 행정처리에 이메일에 바빴는데, 집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걸 내게 기대하고 있었다는 게 어이없어서. 거기다 우린 며칠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은 순식간에 큰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내가 말했다. 내가 일하는 거 모르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너 올 때 맞춰서 식사 준비하고 너 신경안 쓰게 집안 청소하고 말끔히 정리해 놓고 그럴 여자 원하면 난 못하니까 이혼하자고. (물론 그러다가, 넌 이혼이란 말이 쉽냐, 라는 주제로 이 차전을 맞이하긴 했지만...) 이전에도 남편은 내가 육아휴직 기간 중에 갑작스러운 생활 변화와 육아전담이라는 새로운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증을 앓고 있을 때, '난 너 일 안 해도, 돈 안 벌어와도 괜찮으니까, 너 하고 싶은 거 해라'하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너한테 허락받는 게 아니라, 내가 그냥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하고 대답해줬지만. 남편은 가사분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전업주부이신 어머니가 집안일 전반을 담당하시고 아버지가 생계비 담당이자 집안의 최고 결정권자인 걸 보며 자랐기 때문에 생각보다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줄 때가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집안에서 자랐지만, 거기에 보수적 사회환경까지 더해진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는 그런 구조나 사고방식에 반발심이 더 강한 편이고. 우리는 그 후 다행히도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아 지금도 여전히 같이 길을 걷고 있지만, 만약 이 부분이 타협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끊임없이 부딪치며 결국 이혼이 말뿐이 아닌 현실이 되는 상황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 


부부가 되면 (정확히는 같이 오래 살게 되면) 생활의 공유점이 서서히 늘어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될 때가 생긴다. 사소하게 잠잘 때 불을 켜놓느냐 아니냐부터 개인의 취미, 시간 관리까지 얽히기 때문에. 거기다 아이까지 생기면 밸런스는 거의 100% 무너진다 (육아를 남한테 맡겨 실질적 부모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게 아닌 이상). 그 무너진 밸런스 속에서 어떻게든 부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자기 삶도 유지하려면 진짜 서로가 맞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있든 없든 내 커리어를 포기할 순 없다. 일 하는 건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라고 생각하는 여자는, '아이는 여자가 키워야지'하는 생각을 하는 남자와 만나면 안 된다. 반대로 아이가 있든 없는 내 커리어를, 내 취미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 하고 생각하는 남자는 육아와 가사에 만족하는 여자를 만나야 한다. 이런 남자가 나처럼 같이 야망을 가지고 달리는 여자가 좋다고 만나 결혼하면, 그 와중에 둘 중 한 명이 심경의 변화를 겪지 않는 이상 나중에는 결국 부딪친다. '네 인생만 중요하냐, 내 인생은!', 하는 인기 주제를 가지고... 알콩달콩 집을 꾸미며 육아를 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반대로 생계비를 전담할 수 있고 그러면서 본인이 맡고 있는 집안일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안 그러면 '집에만 있는 네가 뭘 알아', 혹은 '그럼 네가 돈 벌어 오든가'하는 소릴 듣게 될 수 있으니. 돈 많은 사람 만나 그 사람 돈 덕을 누리며 아무것도 안 하고 호화롭게 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걸 보장해 주면서 당신이라는 존재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뭐 상대방이 당신이라는 존재만이 아니라 당신의 외모, 학벌, 가사 능력 등을 요구하는 조건을 걸었다면 그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유지할 수 있으면 되고. 

그리고 간혹 가다 정말 나와 맞지 않는 한 부분이 있는데도 다른 걸 핑계로 덮어두며 연애하는 사람들도 봤는데... '그 사람이 언젠간 변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상대방도 당신을 상대로 '언젠간 익숙해지겠지, 언젠간 신경 안 쓰겠지'하고 바라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니 상대방의 그런 점에 무던해질 자신도, 그걸로 스트레스받지 않을 자신도 없다면 관계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어차피 지금 아니면 나중에 터질 시한폭탄 하나 안고 가는 것과 같으니. 


이런 소릴 하고 있으니 나 역시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싶다. 예전에는 그냥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할까 말까, 그런 것만으로도 고민은 충분했는데... 그러니 그렇게 나이 든 입장(!)에서 허공에 그냥 흘러가듯 (그래서 당신 귀를 스쳐 지나가도 괜찮은), 아주 개인적인 바람 같은 말을 하나 던지자면.... 당신 곁에 누가 있는데, 동시에 당신의 인생에도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면... 당연코 당신의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하길 바란다. 그 결정 때문에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을 놓치게 된다면.. 안타깝지만 어차피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라도 잃게 될 인연이었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진 않는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위한 결정을 했다 하더라도 결국 그 결정의 대가는 온전히 내 인생으로 치러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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