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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May 14. 2020

너 백인 좋아하잖아

국제연애의 또 다른 오해 

영국인 남자 친구와 근 2년의 연애를 끝내고 지금의 남편과 썸을 타고 있을 때, 캐나다인 친구인 S가 갑자기 술자리에서 내게 말을 던졌다. 

"You like white boys, don't you?"


그 말에 마시려고 들었던 술잔을 잠시 멈추고 그녀를 봤다. 얘가 술이 취했나, 나랑 한판 뜨자는 건가.. 그런데 무슨 의도였던 간에 그녀의 표정에 다른 감정이 들어 있지 않아서, 피식 웃으며 대답해줬다.

"No, I like cute boys"


우습겠지만 백인인 남자 친구를 가지고 있으면 가끔 듣게 되는 말이었다. 마치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 그 사람의 피부색이 절대치를 차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피부색이 이상형이라도 될 수 있는 것 마냥. 물론 백인인 유럽인 남자와 결혼한 지금도 그런 오해(!)를 받곤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백인 남자랑 결혼하면 좋아요?' 하는 질문을 받지도 않을 테니. 그렇게 따지자면 '잘생긴 남자와 결혼하면 좋아요,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하면 좋아요, 의사랑 결혼하면 좋아요?' 하는 질문들처럼 '백인 남자'도 남자의 타입 중 하나에 들어가나 보다. 


그런데 나는 백인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아니 솔직히 내 이상형이 이토록 두리뭉실한 피부색 하나로 표현되는 것에, 마치 내 안목을 시험당한 것 같아서 좀 불쾌하기도 하다. 나는 내 나름 좋아하는 이상형이 확고한 편임에도. 굳이 말하자면 나는 귀여운 얼굴이지만 마르고 근육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 그런 사람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한다면, 나도 그런 흔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껏 그런 사람들에게 끌렸고, 그런 남자들과 연애했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영국에 나온 다음부터는 아무래도 동양인보다 백인의 수가 많은 그룹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상형에 맞는 사람들이 어쩌다 보니 백인이 된 셈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면 또 가끔 내 외모에 대해 묻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네 외모는 생각도 안 하고'라든지, '넌 얼마나 잘났길래 그런 남자를'하는 말을 한다든지. 그런데 난 그 상관관계를 잘 모르겠다. 왜 내 외모가 내 이상형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어야 하는지. 어차피 두 사람이 통해야 되는 게 연애인데, 내 외모에 대한 평가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이 하는 거지, 내가 사귈 마음도 없는 제삼자가 나설 만한 문제는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되지도 않을 관계 아닌가. '감히 너 같은 게 어떻게 나를 좋아해'하는 남자가 있으면 안 만나면 되는 일이다. 그러니 내게 있어 내 외모는 내 이상형과는 아주 무관한 문제다 (뭐, 그래도 꿋꿋하게 내 남자 친구들에게 '너 쟤 뭐가 좋아서 만나? 왜 만나?'하고 묻는 사람들이 존재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연애를 했고, 국제결혼을 했기 때문에 여전히 내가 '백인에게 좀 더 관대하거나 우호적일 것'이라는 착각을 하거나, 은근히 '백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성을 좋아할 거라고 나름의 짐작을 하는 분들을 여전히 만나긴 한다. 그리고 처음 국제연애를 시작했을 때는 그런 착각을 나도 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인 남자 친구의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 하고, 영국을 벗어나서도 외국인을 만나면 괜히 친근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 사람이 Rowing 할 때의 모습을 좋아하기도 했고, 그의 콧날을 좋아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실 예전에 한국에서 남자 친구들을 사귈 때도 다르진 않았다. 그들의 친구들에게 가능한 잘 보이려 했고, 그 사람을 연상케 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친근감이 느껴지고, 그 사람이 기타 치는 모습에, 그림 그리는 모습에 새삼 반하기도 했으니까. 그때는 별다를 것도 없어 보이던 행동과 마음들이 인종이 달라지니 갑자기 그 종 전체에 대한 태도가 변한 걸로 오해받는다고 할까.  


웃긴 건 그런 오해(!)를 받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나와 만나던 피부색이 다른 남자들도 비슷한 오해를 받곤 했다. 그 사람이 나와 만난다는 이유만으로 'Asian Fever'가 있는 건 아니냐고 오해받는다던지, '너와 만나고 있으니 한국인/동양인들에게 우호적이겠지'하는 마음으로 "네 남자 친구한테 부탁 좀 하면 안 될까?"하고 접근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마치 그가 이제 공공재라도 된 것 마냥 영어 교정을 해줄 수 있는지, 공짜 영어 수업을 해달라느니, 영국인 이름이 필요한데 해줄 수 없냐, 집 보증인이 될 수 있는지, 자기 대신 어디에 전화를 해줄 순 있는지 등등, 뭐 다양한 요구들이 나를 통해 들어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랑 만난다고 호구란 소린 안 했는데?' 하고 답해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내 선에서 처리하긴 했지만. 뭐 비슷하게 나도 그 사람을 통해 이런저런 요구를 받기도 했다. 중국인 여자 친구를 새로 사귀게 된 영국인 친구가 있는데 그 여자 친구랑 좀 만나주면 안 될까, 라든지, 다짜고짜 한자를 들이대며 번역을 부탁한다든지, 하는 내 능력 밖의 요구들부터 한국에 대한 관광정보 같은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해서 때로는 숙소 예약, 안내문 번역 같은 공짜 노동이 요구되는 일, 심지어 동양인 여자의 특성(?) 따위를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뭐 그럴 수 있지. 사람은 돕고 사는 거니까. 다만 연애는 아주 사적이고 개인적인 일인데, 그 사적인 선택 하나만 보고 그 사람의 전체 성향을 판단하는 건 좀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거다. 특히 그 사람과 전체 집단을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연애 당사자'인 한 사람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한국인과 연애를 하는 영국인을 만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한국에 우호적이라는 보장도 없고, 더 나아가 동양인에게 우호적일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 반대편에 있는 나도 비슷하다. 어쩌다 한 명 이상의 백인 유럽인과 연애를 했다고 해서 내가 그들에게 우호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들이 속한 인종집단 전체를 좋아할 거라는 가능성은 더욱더 희박하고 (아니, 단 한 명과 연애를 해도 싸우다 헤어지거나, 헤어지지 않아도 싫어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집단 전체라니;; 전인류를 사랑하시는 그분들이 아닌 이상에야 그럴 수가 있나;;).



 

늘 그렇듯 비슷한 소릴 하고 있는 겁니다. 어차피 사람 사는 건 비슷하고, 연애가 인생을 바꾸기도,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도 하지만, 그게 섣불리 사람을 판단할 기준도 되지 않고, 괜한 우호감을 점칠 수단도 되지 않는다는 것 말이죠. 그게 국제연애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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