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열받음
Throw the cat amongst the pigeons
오늘 들은 말이다. 영국에서 쓰는 관용적 표현인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a disturbance caused by an undesirable person from a perspective of a group'이라는 뜻으로, 비둘기 떼 사이에 난입한 고양이 같이 그룹 입장에서는 원하지 않는 상황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오늘 바로 내가 그 고양이 같다는 소릴 들었다;;;
내가 진짜... 일을 개(!)같이 해놨기 때문에 이런 소릴 들었으면 뭐라고 자책이라도 할 텐데... 우습게도 그 반대였기 때문에 이렇게 한탄하듯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속한 부서에는 전에 말했듯이 큰 구조조정이 있었다. 부서는 저조한 업무 효율성 때문에 비난을 많이 받았고, 급기야 위에서 부서의 최고 수장부터 갈아치우는 극단 조치가 내려졌다. 그 대대적 구조조정의 피바람으로 예전 부서의 80% 이상 인력이 잘려 나가고 새로운 피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내가 들어온 거다. 피바람이 불던 마지막 즈음에 들어온 까닭에 나 역시 입사한 지 1달 만에 80%가 넘는 내 팀원들을 잃었고, 3달이 지난 후에는 나 홀로 선장이 되어 고독한 항해를 1달 이상 해야 했다.
내가 맡은 배는 사람들만 없는 게 아니라 문서도 도구도 뭐하나 제대로 남아있는 게 없었는데 (사실 그러니까 망한 거긴 하지만....) 그래서 초반에 내가 한 일은 모든 것들을 체계화시키는 거였다. 기록을 남기고 정책을 짜고, 구조를 만들고... 급기야 사람들이 농담처럼 '네가 문서 하나 만들 때마다 돈을 받으면 보너스가 넘쳐나겠다' 할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속한 부서에는 우리가 'customer'라고 부르는 우리에게 일을 요청하는 다른 부서들이 있는데, 초반에 부서 내부의 피바람을 피해 대신 외부로 많이 돌아다닌 덕분에 피바람이 그쳤을 때는 나름 내 팀 전용의 고객들도 만들어 놓은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황량했던 배를 내 입맛대로 고쳐서 항해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 놨을 때 우리 팀에게 들어오는 일의 양과 문의는 꾸준히 늘어났고, 그만큼 실적과 사람들의 신뢰도 쌓였다. 지금은 몇 번의 채용을 통해 거의 예전만큼 선원들을 확보한데다가 당연히 선원들 교육도 내가 짜 놓은 방식대로 했기 때문에, 나는 내 배가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던 중이었다. 물론 그것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지금은 미칠 만큼 일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런데도 왜 조직의 분위기를 흩트리는 고양이 같단 소릴 들었느냐...
배를 계속 예로 들자면, 내가 속한 부서를 함대라고 했을 때, 함대에는 총 3개의 부대가 있고, 내가 속한 부대에는 4개의 배가 속해 있는데, 1호선은 혼자 거친 구조조정의 풍랑을 뚫고 살아남았지만, 최근에 그때 살아남았던 선장과 선원들이 다 이탈하는 바람에 지금은 선장 없이 새로운 선원들만 남았고, 3호선은 선장이 없었지만 믿을 만한 부선장으로 그나마 아무 탈없이 돌아가고 있다가 올해 초에 새로운 선장을 영입하면서 굳건해졌고, 4호선은 텅텅 비었다가 새로운 선장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선원들이 다 차지 않았고, 내가 속한 건 2호선이다.
우리 부대의 공통된 목적이 새로운 섬을 발견해서 무역을 성립하는 거라고 한다면, 목적은 비슷하지만 서로의 타깃이 조금씩 다르다. 1호선과 3호선의 목적이 이미 잘 알려진, 그래서 까다로울 수 있는 대형 섬들과의 지속적인 무역을 성립시키는 거라면, 4호선은 특정 물품들만 취급하고, 내가 있는 2호선은 탐험선에 가깝다. 우리는 잘 알려진 대형 섬들과도 거래하지만 요구에 따라 알려지지 않은 섬을 찾아 나서거나 크기에 상관없이 무역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내 배는 신속하고 정확한 항해/ 운반을 목적으로 하고, 다른 배들은 가능한 오래 정박하며 천천히 그 섬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관계를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손님들이 우릴 찾을 때인데... 예전에는 부대 전체를 통틀어 항해가 불가능한 배도 많고, 항해를 한다 해도 속도가 느리거나 제대로 무역을 성사시키지 못하니 사람들이 찾질 않았는데, 재정비를 한 후, 다른 배들은 여전히 다른 섬에 정박해서 천천히 관계 맺기를 하고 있는데, 내 배만 혼자 분주하게 물건을 실어 나르고 있으니 사람들이 내 배로 몰리기 시작한 거다.
초반에는 부대에서도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잘한다'하고 내버려 뒀는데... 정박해서 '우리 그거 그 시기까지 못해준다. 우리 그거 날라줄 인력도, 시간도 없다', 하면서 손님들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 배가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하니 문제가 생긴 거다.
그러다 오늘 회의에서 일이 터졌다.... 오늘 회의는 다시 배를 예로 들자면, 우리 배가 속한 부대와 주된 고객들이 다 같이 모여서 다음 달 무역 내용을 의논하는 자리였는데... 회의 순서 중 하나가 '새로 들어온 일'에 대한 거였다. 1호선의 임시 선장과 3호선의 선장은 새로운 일거리를 하나씩 제안받고 '우리 이거 받을지 말지 고려해 볼게'라고 했는데, 내 배가 제안받은 건 총 13건이었다. 그리고 그중 이미 4건의 거래가 성사되고 있는 중이었고, 3건의 탐색도 이미 끝난 상태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 회의에 '거래 내용 확인과 출항' 결정을 받기 위해 참석한 건데, 다른 선장들은 '거래 사항 고려'를 위해 참가한 거였다.
그 상황에서 부대장과 다른 선장들이 '못 받을 이유'를 말하고 있는 동안 나는 침묵했지만, 결국 내 배의 항해 결정에 이르러서는 당연히 내 의견을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까닭에 내가 속한 부대에서는 고양이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거다.... 그 와중에 고객들에게는 환영받으면서....
... 솔직히 이해는 한다. 내 배가 그리 분주히 움직이고 있으면 정박하고 있는 배들의 입장에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을 거란 거. 그래, 그래서 조직의 입장에서는 다 같이 'No'라고 말하는 게 좋다는 거..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나도 할 말은 있다. 내가 내 배의 항해 사실을 숨긴 것도 아니고 그렇게나 보고를 하면서 떠들었는데도, '어차피 너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시시한 섬들이랑만 거래하잖아'하면서 그동안 무시한 건 누구였냐 말이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최선을 다해서 내게 맡겨진 배를 수리했고, 모든 정비과정을 기록했고, 다른 배의 선원들에게도 정보를 아낌없이 나눴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말했다시피 내 사람도 여럿 뺏겼다. 그래도 내 사람들을 위해 최대한 배려하면서 애쓰고 있다고 믿어왔고, 그 결과로 나를 비롯한 내 선원들 대부분 다른 고객들에게 보너스를 여러 번 따로 받았다.
조직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건데, 조직에서 고양이 취급을 받다니 (사실 고양이를 상당히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비둘기들에게 갈굼 당하는 고양이라니!)
마음이 아주 복잡하다. 그리고 이럴 때 내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도대체 내가 뭘 위해 이 조직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건가, 이러다가 진짜 나중에 불이익을 당하는 건 아닐까... 아니 어쩌면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내 자만이고, 사실 나는 정말 조직에 위해가 되는 인간인 건 아닐까. 내가 운영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예전에 대학에 있을 때는 사실 잘 못 느꼈던 감정이기도 하다. 조직이 돌아가는 것에 불만을 가진 적이 있긴 해도, 내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초조하거나 답답한 적도 있고, 사람 때문에 열 받은 적도 있지만... 솔직히 내가 신경 끄면 끌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어차피 대학은 개인플레이니까...
그런데 공무원이라는, 개인보다 조직이 핵심인 이 곳에 와서부터는 이런 것들 때문에 많이 지친다. 이 애매한 사내정치. 위계질서, 도저히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우선순위, 등등... (솔직히 날더러 '너무 헤프게 고객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거 아니냐'하고 지적했던 부대장도 함대 대장이 던졌다는 말 한마디 때문에 나를 오지의 섬에 혼자 항해 보낸 적도 있으면서!)
가능하면 사내정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가능한 걸 하겠다,라고 밀고 나가는 중이긴 한데... 이렇게 항해 잘한다고 욕(!)을 듣고 나니... 갑자기 의욕이 뚝 떨어지는 건 물론 마음도 흔들린다...
이것도 배움의 과정이겠지. 이 시기를 지나고 나면 여우로 업그레이드하길. 비둘기들한테 갈굼 당하는 일 없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