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토리 Jun 10. 2020

나를 규정하는 것들

그리고 그게 때론 부당함의 이유가 되는 것들 

한국에 살 때 나를 규정하던 수식어가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작해야 학교 이름 정도나 혹은 학생, 정도였을까. 대학 과정을 마치고 바로 영국으로 넘어와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한국에서 보냈던 시간 동안 나는 남들과 별다를 것 없는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대학문을 통과한 대학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단한 집안 출신도 아니고, 남들에게 딱히 자랑할 만한 스펙도 재주도 별로 없는, 외모도 고만고만한 그냥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그런 여자 사람. 첫 만남에 어떤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딱히 초반부터 호감을 주지도, 그렇다고 거부감을 일으키지도 않는, 그냥 무난한, 그래도 알고 보면 좋은 점 몇 개, 싫은 점도 몇 개 있는 그런 사람. 


그랬던 평균의 고만고만한 한국 여자였던 나는 영국에 살면서부터,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나를 규정짓는 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Asian, Migrant, Ethic Minority, Other, Foreigner, Overseas, 등등. 거기에 내 성별까지 곁들여져 그냥 평범한 여자 사람인 나는 뜬금없이 '순하다, 착하다'라는 이미지로 인식되고, 내가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행동을 할 거라는 기대치까지 받게 되었다. 


'너도 젓가락으로 국을 먹겠지, 너는 이런 말을 쓰고, 늘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겠지, 너는 예의 바르겠지, 너는 조용하겠지, 너는 거절하는 게 어렵겠지, 너는 타지 생활이 외롭겠지, 너는 영어가 어렵겠지, 너는 가족이 그립겠지, 너는 이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겠지, 너는 우리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너는 내가 조금만 잘해주면 넘어오겠지, 너는 남들보다 친절하겠지, 너는 동양인들과 있는 게 더 편하겠지, 너는 목소리가 작겠지, 너는 자기 의견을 말하기 어려워하겠지, 너는 도움이 필요하겠지' 등등... 


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는 그들이 가진 그런 잠재적 생각들로 가끔은 내 의견을 표현할 기회를 빼앗기고,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끼게 되고, 때론 내가 부정당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건 여기 오래 산다고 바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바뀔 문제도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이런 경험을 반복한다. 그 정도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어떤 이와는 초반의 이 시기를 빨리 지나서 친해지고, 어떤 이와는 초반의 이 시기가 극복되지 않아 가까워지지 못한다. 그 사람과 친분을 만들 의도가 있든 없든, 어떤 이는 내 외모만으로 이미 판단을 짓고 나를 대하고, 가끔은 그걸 교정할 시간도 반박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냥 똥 밟았다, 하고 참고 넘겨야 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가까운 이가 그렇게 상처를 입혀 속앓이를 하기도 한다. 나름으로 문화 차이라는 말로 가까스로 이해하려 하면서. 


요즘 'Black lives matter' 운동으로 여기도 뜨겁다. 지금 있는 공무원 사회에서도 말이 많다. 그래서 BAME (Black Asian Minority Ethinc) Network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그렇게 그들의 말을 듣다 보면 딱 한 가지 생각만 떠오른다.  


우리가 우리의 원래 나라를 떠난 순간부터 우리에게 나라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여기서 태어나서 자란 수많은 이민자의 자식들이 말했다. 자기가 자라면서부터 겪었던 차별에 대해서. 여전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Go home'이라는 소릴 듣는 사실에 대해서. 여전히 자신의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는 현실에 대해서. 그들은 말한다. 나는 영국 사람인데, 영국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면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냐고. 


물론 그들과 나는 입장이 다르다. 나는 확실하게 이방인이고 영국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어떤 이들은 나에게 '지 좋다고 나갈 때는 언제고, 세금도 안 내면서 어디서 한국사람이야'하는 소릴 할지도 모른다. 내 아이들이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사람들에게 '한국애가 아니네, 외국애네'하는 소릴 듣는 것처럼. 그렇다고 남편의 국적인 스페인 사람이 될 수도 없다. 그렇게 서서히 내가 속할 나라를 잃어가는 거다. 그리고 아무리 법적으로 그 나라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해도, 그게 사람들까지 바꾸지도 못한다. 어떤 이들에게 나는 내가 설사 영국인 국적을 취득해서 그들과 똑같이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외국인으로 보이는 것처럼.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겼으니까. 그들과 똑같이 이 땅에서 태어나 그들이 겪어온 모든 문화를 보고 겪으며 자란 내 아이들에게도 어떤 이들은 'Chinese!' 하는 소릴 퍼붓기도 하니, 아이들이 설사 영국에서 계속 살아서 영국인 국적을 갖게 된다 해도, 지금의 사람들이 겪은 것처럼 어떤 날에는 'go home'하는 소릴 듣게 되겠지. 


이건 굳이 인종 문제가 아니다, 인간 사회가 어찌나 늦게 바뀌는지. 거의 백 년 전에 있었던 노예제도, 그런데도 그 뿌리가 아직 뽑히지 않고 버젓이 거리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여전히 성별로, 성적 지향성으로도 차별받고 죽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 얻은 건 '견디기'밖에 없는 건지, 우리는 가끔 아주 쉽게 수긍한다. 그래, 이런 게 한두 번이야, 저런 인간 본 게 한두 번이야, 오늘 재수 없었다고 생각하자, 저런 인간 어차피 얼마 안 되는 소수잖아,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 그렇게 그들을 위한 합리화를 대신해 주면서. 


작가의 이전글 여자애가 그게 뭐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