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열외자
케임브리지에서 유학을 할 때 어쩌다 Gentlemen's Club에 속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18세기 영국 사회에 그런 게 있었다더라 하고 내려오는 민화/Tale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클럽에 실제로 초대받아 갔을 때, 그게 옛날 얘기가 아님을, 그리고 동양권에서 돈 좀 있다는 자제들이 '재현'시켰다는 그 수준이 아님을 깨달았다.
입구부터 철저하게 경비망이 처져있고, 클럽 멤버의 동행 없이는 갈 수 없는 곳. 입구부터 걸려 있던 여러 초상화들 (8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케임브리지를 생각했을 때 예전 학생들의 모습이 실제로 담긴, 따지고 보면 허구/장식의 의미를 가진 그림이 아니라 기록용의 사진에 가까운 의미를 지니는 그런 그림들), 나이가 지긋하신 Butler분이 입구에서 정중히 우릴 맞이하며 재킷 등을 받아 주었고, 수업 시간에 보거나 했던 많아봐야 20대 초중반의 남자 학생들이 시가를 피고, 위스키를 마시며 대화하던 곳. 그리고 모든 음료는 전용 바의 바텐더가 만들어 주던 곳.
웃긴 건 케임브리지 컬리지에는 Porter라고 입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컬리지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나이가 좀 있는 남자분들. 가끔 신사모를 쓰고 있는 분들도 있다), 그 젠틀맨 클럽 사람들과 같이 컬리지에 들어가게 될 때면 늘 그분들이 'Hello/ Good day, Sir'하고 그들에게 인사한다는 거였다. Sir라는 존칭을 다른 학생들에게는 붙이지 않으면서...
그러다 웨일스로 이사오니 또 다른 종류의 계급이 있었다. 젊은 시절 유명한 호텔의 벨 보이였던 게 자랑인 사람, 꽤 이름 있는 가문의 집사였던 사실에 대한 긍지를 품고 있는 사람. 그리고 mining 탄광 산업이 한창이던 시절을 인생의 황금기라 떠올리던 사람 등등.
영국 한쪽에서는 저녁 식사 후 시가와 위스키가 당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부 보조금 (benefit)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당연한 곳. 현재 본인의 재력과 별개로 Sir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한 사람과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Upper middle class 이상이 되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곳.
그게 내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영국의 계급 사회다. 재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계급의 장벽이 있는 곳. 어느 사회든 Upper Class, Middle Class, Working Class 가 존재하긴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 계급 간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게 재력과 교육 수준이라면, 영국이 특이한 건 출생, 가족 배경이 크게 작용한다는 거다. 같은 케임브리지 학생인데도 부모는 물론, 조상의 직업들까지 따져서 계급이 나눠지는 걸 본 것처럼.
그럼 이 영국의 계급 사회에서 이방인/외국인인 우리는 어디에 속할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영국인과 결혼했다면 당신의 파트너가 속한 계급에 속해지고, 영국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열외'에 속한다.
콜롬비아에서 부모가 판사/의사에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도 있고, 어려서부터 집에서 상주하는 Nanny의 손에 자란 친구 J가 있다. 그녀는 당연히 콜롬비아 내에서 상위 1%에 속하고, 다양한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분들 덕분에 집안일을 안 한 건 물론, 매일 아침 직접 침대로 배달되는 신선한 주스를 마시며 자랐고,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그녀는 자기 명의 집은 물론 가족 사업의 지분도 소유한 부유한 귀족 자녀였다.
그런데 그녀가 런던에 단기 유학을 왔다가 웨일스 농장 출신의 T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콜롬비아까지 찾아가 구애한 T의 마음에 감동하여 결혼을 결심한다. 신혼을 콜롬비아에서 보낸 둘은 자녀들 교육을 위해 영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던 T는 영국에 돌아와 비슷한 직종에 취업했고, 그녀는 스페인어 교사가 되었다. 둘은 육아를 위해 시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웨일스로 이사 왔고, 남편인 T는 얼마 되지 않아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었다. 남편은 J 친정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고, J는 사립학교의 스페인어 교사가 되었다.
그럼 이들이 속한 영국의 계급은 어딜까? 부유한 친정을 가진 Middle class 다 (Upper middle class는 될 수 없는..)
현지인과 결혼한 이방인이 현지인 파트너가 속한 계급에 속해지는 건, 아마 어딜 가도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영국에서라면 진짜 귀족과 결혼하지 않는 한 upper class에 드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겠지만...
그럼 영국인과 결혼하지도 않았지만 이제 막 이민 와서 자리 잡으려는 외국인들은?
대체적으로 클래스 시스템에서 제외된다. 당신의 직업이 단순 업무 중심이라면, 외국인 노동자, 당신의 직업이 전문 직종이라면 전문직 이민자. 당신이 영국 사회에서도 알아주는 상위 몇 프로의 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돈 많은 외국인...
물론 이 인식도 달라질 순 있다. 다만 당신의 세대가 아니라 당신 이후의 세대부터..
그리고 슬픈 건 외모의 다름 때문에 당신이 무얼 하든 어찌할 수 없이 Second class citizen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거고...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주저리 쓴 글입니다. 한쪽 귀로 흘리셔도 상관없고, 이쪽 분야로 연구를 하고 계신 분이라면 반박도 충분히 가능한 그런 이야기죠. 사실 영국의 계급 문화는 학계에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니까요. 전 이쪽 분야가 전혀 아니지만, 영국에 살면서 꽤 극과 극을 겪어 온 까닭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전 영국인이 아닌 이방인과 결혼한, 시스템 '열외자'라서 그럴 수도 있구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