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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Jul 06. 2020

생일을 누릴 권리

어차피 일 년에 하루인데... 


7월 초에는 둘째 아이와 남편의 생일 둘 다 몰려 있는 바람에 정신이 없다.

우리 집에는 올해부터 생일을 보내는 새로운 룰이 하나 생겼는데, 그건 바로...


 ‘생일에는 생일 당사자가 원하는 걸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한다’


원래부터 이런 룰이 있었던 건 아니고 사실 내게만 한정 적용되다가 올해부터 가족들 모두로 해당 범위를 넓힌 거다.


나 역시 이걸 매해 해왔던 건 아니었고, 둘째를 낳고 나서 우울증이 한 번 정점을 찍은 적이 있는데... 그 해 내 생일에 남편이 내게 생일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었을 때, “I want to be alone for a whole day”하고 대답한 게 시작이었다.


나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고 싶었고, 느긋하게 tea cake과 커피를 마시며 내 아침을 시작하고 싶었고, 아침을 먹으며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내가 좋아하는 프로나 책을 보고 싶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글을 읽거나 쓰고 싶었고, 무엇보다 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에는 3시간을 얻었고, 아이들이 커갈수록 남편이 내 생일날 보장해 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올해 생일에는 긴 주말과 겹치는 바람에 전날 밤부터 손님방에서 따로 자며 느긋하게 새벽까지 혼자 놀다가 다음날 저녁까지 혼자 있을 호사(!)를 누렸다.


그러다 보니 이젠 제법 커진 아이들이 패턴을 발견하고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나도 내 생일에 엄마처럼 침대에서 아침 먹어도 돼요?”

“그럼 나도 내 생일에 엄마처럼 하루 종일 내가 하고 싶은 거 해도 돼요?”

등등... 


평등의 원칙에 입각해, 대부분의 요청에 ‘그래, 그래라’하다 보니 아이들은 아주 들떠서 내 생일에는 이걸 할 거야, 저걸 할 거야 하며 분주하게 종알거렸다 (내 생일이 봄에 먼저 있고, 남편과 아이들 모두 여름 생일이다).

그러다가 혹시 우리가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하고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 “But it’s MY birthday!”하며 요구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아이들은 자기의 생일이 축하받는걸 당연히 여기며 자라겠구나. 이대로라면 이 아이들은 자기의 생일을 온전히 자기가 원하는 대로 누리면서, 그리고 그걸 당연하다고 여기며 자라겠구나.


어떤 이들에게는 당연한 그걸 누리지 못하고 자라온 내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늘 반쯤 신기하게 반쯤 부럽게 바라봤었는데... 내 아이들이 그들 중 한 사람으로 자랄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묘하다고 해야 하나... 


굳이 내 어린 시절을 얘기하자면, 가정의 불화, 가난, 아들 선호 등의 복합적 요소들이 겹쳐 대부분 내 생일 자체를 잊고 넘어가거나 기억했다 해도 미역국을 먹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그런 정도의 날이었다. 나름 나를 오래 괴롭힌 개인의 불행이었지만, 매체마다 비슷한 사연을 가진 많은 이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그저 그런 시대의 불행이었는지, 사회의 불행에 휩쓸린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그런 시간들을 보내왔던 까닭에 내게 생일은 '기대하지 않는 날 (기대했다가는 더 우울해 질게 뻔하니)', '불행의 정도가 약하기를 바라는 날' 정도였다. 오빠와 생일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까닭에 나도 오빠 생일 때 먹었던 초콜릿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조른 적이 한 번 있는데, 안 그래도 날짜가 비슷한데 또 비싼 케이크를 조른다며 야단을 맞고, 뒤늦게 아빠가 사 온 하얀 크림으로 덮인 작은 케이크 (생크림이 아니라 예전에는 하얀색 아이싱도 아닌 크림으로 덮인 케이크가 기본이었다 - 혹시 기억하시는 분?)을 보고 내가 실망하자, 철이 없다며 온갖 소릴 들었다. 눈물이 뚝뚝 나왔는데, 비싼 케이크 사주니까 이젠 울면서 지랄한다며 더 화내시는 바람에 울음을 삼키며 먹었던 첫 케이크. 

그리고 집에서는 아빠와 오빠가 좋아하는 까닭에 생일 때마다 콩밥을 따로 하곤 했는데, 난 콩밥이 싫다고 내 생일에는 먹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챙겨주는 게 어딘데 투정을 한다며 욕을 들어먹고 결국 생일날 콩을 약 삼키듯 꾸역꾸역 넘겼던 기억도 있다. 


그러다 보니 생일날이 가까워지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누군가는 기억하고 챙겨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 중간에서 시달리다가 결국 생일날이 다가오면 이럴 줄 알았다고 실망하거나, 아니면 왜 생일날만이라도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거냐고 원망하거나... 


영국에 나온 뒤 나아진 거라면 나만 조용히 있으면 최대한 조용히 넘어갈 수 있다는 거랄까.. (한국의 가족들도 내가 영국에 나온 뒤부터는 종종 내 생일을 잊곤 했으니까...)


그랬는데 박사 2년 차에 새로 1년 차로 들어온 박사생 중에 나와 생일이 같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심지어 쌍둥이였는데, 자기 생일 파티를 거대하게 하는 걸 좋아했고. 거기다 같이 몰려다니는 그룹에 나와 같은 달에 생일이 있는 친구들이 여럿 끼어 있어 그 달이 되기도 전에 주위가 떠들썩해지곤 했다. 내 생일이 자신과 같다는 걸 안 뒤 그녀는 '대형 파티를 벌이자'하고 신나 했지만, 나는 정말 괴로웠다. 그런 생일 파티 자체가 부담스러운 건 둘째 치고, 같은 생일인데 온갖 축하와 선물을 받고 당연한 듯 즐기는 그녀와 내가 비교되어서 불행이 가중되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질투가 나서 그랬던 거겠지만... 


그 뒤로도 생일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꽤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왔다. 날 위해 미쉘린 스타의 비싼 레스토랑을 예약해 데리고 간 남자 친구에게는 고마웠지만 내 생일이 이 비싼 음식을 먹을 정도의 가치가 있긴 한가, 하는 쓸데없는 고민에 즐기지 못한 적도 있고, 친구들이 깜짝 파티를 위해 가지고 온 케이크 - 내가 좋아하지 않는 케이크 -을 보면서 어린 시절에 울음을 삼키며 먹었던 케이크가 생각나 괴로웠던 적도 있고, 전혀 내 취향이 아닌 선물을 받고 '왜 저 사람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걸까'하는 애꿎은 원망을 한 적도 있고... 하여간 생일날이 다가오면 난 '뭘 원하는지 표현을 하지도 않고, 마치 불행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그런 좀 별로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일을 떠들썩하게 보낼 성격은 갖추지 못했다. 그래도 최소한 내가 원하는 걸 말하고 요구할 용기는 생겼으니 어쩌면 조금은 진화한 건가.... 


나야 그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지만, 나는 내 아이들이 자신의 탄생을 마음껏 축하받고, 그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마음껏 즐기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 내가 케이크를 굽느라 요리를 하느라 노동력을 쓰게 된다 하더라도!)


그러니 마음껏 원하렴, 그리고 누구의 눈치도 받지 말고 마음껏 축하받고, 그 날 만큼은 네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해라. 어차리 일 년에 하루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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