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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Aug 16. 2020

코로나로 '근무 장소 제한'이 사라졌다

고용과 취직에 국경선이 없는 세상?

스페인으로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영국으로 돌아갈 날을 이틀 남기고 남편과 나는 스페인에서 1년 동안 재택근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주제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올해 3월, 어떠한 폐쇄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던 영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는 물론 사망자의 수가 빠르게 늘고 있었고, 3월 말에는 내가 일하는 정부 기관에서도 첫 확진자가 나왔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농담처럼 혹시 모르니 집으로 랍탑을 가지고 가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는데, 화요일부터 재택 근무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일주일 후 영국 내 모든 학교들도 문을 닫았다. 


그 후 계속 집에서 일하다가 국경이 풀렸다는 소식에 운전을 해서 영국-스페인을 운항하는 배를 타고 스페인으로 넘어왔다. 그렇게 7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스페인에서 한 달을 보냈다. 처음 2주간은 영국에서 하는 것처럼 남편과 번갈아 재택근무를 했고, 그 후 2주간은 휴가로 썼다. 


그렇게 처음 2주간 재택근무를 하다가 그런 생각이 든 거다. 어차피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에서도 일할 수 있는데 굳이 우리가 영국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나, 하고. 실제로 재택근무가 시작된 후 내 팀은 거의 2배 이상으로 그 규모가 커졌는데, 나는 새로운 팀원들을 오프라인 상에서 직접 만난 적이 없다 (면접도 모두 온라인 상에서 이뤄졌으니까). 


지금 있는 정부기관은 안 그래도 영국 내 3 지역에 걸쳐 오피스가 나눠져 있기 때문에 다른 정부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는데, 3월 이후부터 채용 공고에는 아예 장소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러니 원래라면 출퇴근의 제약으로 지원조차 하지 않았을 지역의 사람들도 지원을 하기 시작했고 (그만큼 경쟁률도 올라갔지만), 합격 후 입사하기까지의 시간도 단축되었다 (이사를 가거나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아직까지는 내부인이 아닌 이상 조건부 채용이 이뤄지고 있긴 한데, 근무 장소 제한을 아예 없애는 정규직 자리를 만들자, 그런 말도 나오고 있긴 하다. 

 

이 변화를 개인 입장에서 보자면, 출퇴근 가능한 거리에 직장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직장의 선택지가 높아질 수 있다는 소리고, 조직 입장에서 보자면 좀 더 다양한 인력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다 (물론 고용조건이 맞고 그 직장이 100% 재택근무를 지지한다는 전제하에) 


물론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데에는 현재 하는 일의 성격과 유럽이라는 특수한 문화적 상황이 적용되긴 했다. 영국에서는 유럽인과 그 가족들도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점, 지금 하는 일이 100%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이라는 점, 유럽인이 영국에서 일하는 것에 있어서 비자 제한이 없다는 점 (이것도 브렉시트가 완전히 끝나 봐야 알 수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유럽 나라들과 영국 사이에 시차가 1시간밖에 안된다는 점, 등등. 


스페인에서 영국에 있는 동료들과 일을 할 때는 시차를 좀 더 신경 써야 했고 (사람들과 내일 10시 약속을 잡으면 스페인에서는 그게 11시가 되니까), 시골이라 인터넷이 좀 버버벅 거리긴 했지만 인터넷이 문제가 되면 영국에 살아도 일을 못하는 건 똑같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럼 진짜로 스페인에 살면서 영국의 직장으로 재택근무하는 일이 가능할까. 만약 조직이 동의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다만 문제는 아이들의 학교겠지만. 스페인과 영국의 교육과정이 다르고, 스페인어를 알아듣는 대신 말하기가 아직 서툰 아이들이 얼마나 빨리 스페인 학교에 적응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그렇게 일 년을 보낸 뒤 영국에 돌아가서 아이들이 어떻게 적응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 스페인 비자도 해결해야 하고, 영국에 있는 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고민되는 부분이긴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시작된 이 강제적 재택근무의 문화가 장기적으로 조직에 끼칠 영향도 아직은 모호하다. 지금 있는 조직의 특성상 재택근무가 가능하니 아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끝나도 재택근무가 더 잦아질 거라는 예상이 있지만 (이미 그전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주일에 하루 정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걸로 조직 운영에 융통성이 생긴 반면 개인 소외라든지 일의 불균형, 정신적 고독 등에 대한 말이 안 그래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 어쩌면 다시 예전처럼 '얼굴 보고 일하기'로 돌아갈지도 모르고... 




아직까지는 뭐라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고용과 취직에 국경선이 없어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게 더 위험하고 조심스러워지는 세상, 그렇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더 많은 기회가 제공되는 세상. 원격근무/재택근무가 가능하니 조직에서는 굳이 사람을 이동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이라든지, 비자 같은 정치적 리스크도 줄일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정말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만으로 원하는 직장을 선택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유학이나 이민 갈 여력이 안 되는 사람도 외국에 있는 기업에 취업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죠). 


그런 상상을 하는 겁니다. 아침잠이 많고 야행성인 당신. 오전 10시쯤에 일어납니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다들 출근하고 한산한 거리를 산책하거나 쇼핑을 다녀오죠. 원한다면 낮동안 공부를 해도 되고 영화를 보고 와도 되고, 운동을 다녀와도 되죠. 오후 2시쯤에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고 이제 뭘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오후 4시쯤에 컴퓨터로 당신의 영국 직장에 접속하죠. 거기 사람들이 굿모닝,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동안 당신은 이미 하루를 느긋하게 시작해서 머리가 달릴 준비를 마친 상태. 그렇게 노을 지는 걸 바라보며 자정 혹은 새벽 1시까지 열심히 일합니다. 한국의 자정을 알리는 나른한 라디오 방송이 나올 때쯤이면 당신의 하루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렇게 새벽에 로그아웃을 하고 당신은 퇴근합니다. 어느덧 조용해진 새벽의 한국. (사실 도시에 살 필요도 없죠) 당신은 오늘도 열심히 일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합니다. 

당신은 오전 10시에, 11시에 일어난다고 게으른 사람 취급을 받을 일도 없으며, 그래 가지고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닐 수나 있겠냐며 구박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친구들은 주말에 만나면 됩니다. 금요일 저녁 9시부터 약속이 있으면 오후 4시에 출근하는 대신 오후 1시에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면 됩니다. 좀 과하게 술을 마시고 놀았으면 다음날 10시에 일어나는 대신 오후 1시에 일어나면 됩니다. 당신은 직장이 있는 곳 근처에서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굳이 비싼 월세를 주며 반 지하나 곰팡이 피는 원룸을 옮겨 다니며 살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인터넷 빵빵 터지는 지리산 자락에서 살 수도 있죠. 월말마다 환전되어 들어오는 월급을 받으면서. 


꽤 괜찮지 않나요? 이런 세상 언제 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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