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어찌하면 효과적으로 처리할까
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600통의 메일이 쌓여있었다. 보통 하루에 50-70통 정도의 이메일을 받았던 걸 생각하면 놀랄 만한 숫자가 아닌데도 솔직히 좀 질렸다;;; 당장 온라인으로 접속하자마자 뜨는 회의 알림들이 띵띵 울리며 내 하루를 다 점령해놨는데 이 메일들은 언제 처리할 것인가..
그런 의미로 아주 개인적으로 머릿속에 쌓여있는 방법들을 정리하는 겸 써보는 글.
1. 일단 메일을 종류별로 분류한다.
분류법은 사람마다 다른데, 어떤 이들은 보낸 사람에 따라서, 업무 종류에 따라서, 마감일에 따라서 카테고리별로 분류해놓거나, 아예 폴더를 따로 만들어 관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카테고리별로 마크를 해놓긴 하지만, 이렇게 다량의 이메일을 처리해야 할 때는 전체적으로 그 메일을 처리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 로 대충 분류해서 우선순위를 정하곤 한다.
내가 받는 메일들 중 가장 처리시간이 짧게 걸리는 건 'Meeting invites'. 회의 요청 메일인데, 말 그대로 다양한 사람들이 나를 회의/미팅에 초대하는 메일이다. 내가 있는 공공기관에서는 그 기관에 속한 사람들의 달력 (calendar)를 다 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A, B, C와 함께 회의를 해야 한다면 그들의 달력을 다 열어서 비는 시간을 골라 회의를 잡고, 그러면 시스템이 알아서 회의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회의 요청 이메일을 보낸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내 칼렌더를 확인해서 미팅을 요청하는 메일이 'meeting invites'인데, 이럴 때는 그냥 간단하게 내 일정과 비교해서 요청을 'accept' 혹은 'decline' 하면 된다. 혹은 다른 시간대를 제안할 수도 있고. 여기서는 대부분의 미팅이 30분 간격으로 이루어지는데, 직급이 올라갈수록 미팅의 빈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심지어 1대 1 약속도 (그게 사적이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공식적으로 약속을 잡는 경우가 많다. 안 그러면 누군가 당신의 빈 시간을 냉큼 잡아서 회의를 요청할 수 있으니..
다음으로 처리시간이 짧은 건 내가 'cc' (참조)로 들어가 있고, 내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메일. 대표적으로 내 팀원들이 일을 처리하면서 날보고 프로젝트 상황을 보라고 참조로 넣은 이메일들이다. 이런 경우 시간의 흐름대로 메일을 보다 보면 대충 일이 처리되었는지 아닌지 알기 때문에,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 이상 내가 별로 할 건 없다.
상대방이 나에게 뭘 요청하거나 내 의견을 묻는 메일들이 이제 본격적인 내 일에 해당하는 메일들인데, 이 때는 답을 보내기 위한 정보를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처리 속도가 달라진다. 가장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메일들은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들, 그다음은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좀 더 정보가 필요하거나 사실 확인을 해야 하는 것들, 그리고 마지막은 문서 등을 읽어가, 검토하거나, 피드백을 해줘야 하는 경우다.
2. 분류가 끝나면 바로 '읽음' (read) 할 수 있는 건 다 읽는다.
회의 요청 메일들은 메일의 분류 기능을 사용해서 먼저 다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면서 'new mail' 숫자를 줄인다. 그다음, 내가 참조로 들어간 이메일들은 메일 제목으로 연결된 메일을 다 선택해서 불러온다. 그렇게 시간상 순서대로 훑어보면 대충 지금 상황이 어떤지 파악되기 때문에 나중에 처리하기가 편해진다.
그렇게 현재 상태를 확인한 후 내가 끼어들 일이 없으면,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고, 만약 내가 끼어들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으면 마지막 메일 - 시간상 가장 최근의 메일 - 만 빨간 깃발로 표시해 둔다 (아웃룩 쓰시는 분들은 알겠죠;;).
3. 내가 바로 답할 수 있는 메일은 즉시 답한다.
위에 말한 종류들 중 내게 뭘 요청하거나 내 의견을 묻는 이메일의 경우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을 때에 해당한다. 내가 만난 이들 중에는 메일을 받으면 일부러 하루 이틀 뜸을 들여 답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특히 대학에 있을 때 가장 많이 봤는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 빨리 대답해주면 사람들(정확히는 학생들)이 거기에 익숙해져서 자꾸 대답을 독촉하기 때문에 그걸 미리 방지하기 위한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은 어차피 답이 좀 늦어'라고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하면 답을 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좋다는 거였는데... 이해를 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솔직히 답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에서는 속 터지기도 하고..)
나는 도리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메일이 요청한 답을 내가 이미 알고 있으면 바로 답메일을 보내버리는 편이다. 메일의 수가 순식간에 쌓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의미하는 '빨간 깃발'이 달린 메일의 수를 줄이기 위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나중에 다른 새로운 메일에 치여서 답메일을 보내야 한다는 걸 까먹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거다.
이 방법에도 나름의 좋은 점이 있는데, 이렇게 즉시 답을 보내게 되면 일단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일을 신속하게 처리한다'라는 신뢰를 줄 수 있고, 내가 답을 바로 보내지 않을 때는 '아, 저 사람은 정말 바쁘구나'하고 생각하게 된다는 거다. 그래서 답이 좀 느려져도 이미 쌓아온 공덕(!)이 있어 그런지 사람들의 독촉도 그리 심하지는 않은 편이고..
무엇보다 이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한 시간 후의 나를 구제한다, 그런 마음이 크다. 지금 안 하고 빨간 깃발 꽂아놓으면 한 시간 후의 내가 늘어나는 깃발들에 머리를 쥐어뜯게 될 것이기 때문에...
4. 다른 사람의 답이 필요한 메일도 즉시 보낸다.
가끔 메일을 읽다 보면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의 정보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주 주저 없이 바로 그 사람에게 메일을 보낸다. 이 경우, 다른 이들이 정보를 제공하기까지 또 걸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잡고 있으면 그 시간만큼 전체 업무 처리 시간도 늘어나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바통 터치하고 나면 상대방이 일을 처리해서 내게 답을 보낼 때까지 시간을 벌 수도 있고, 그동안은 '내 일'이 아니게 된다는 아주 실리적인 이유도 있긴 하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일적으로 정보 처리의 블랙홀이 되는 사람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최소한 난 그런 블랙홀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크고.
5. 빨간 깃발은 꼭 필요할 때만
어떤 이들은 메일을 읽으면서 답메일이 필요한 건 무조건 빨간 깃발부터 꽂고 넘어간다고 했다. 그러면 일단 '안 읽음'표시가 된 메일은 줄일 수 있으니 좋다는 거였는데.. 순전히 내 경험으로만 보자면 그렇게 하게 되면 나중에 빨간 깃발의 늪 + 새로운 이메일 사이에서 정신을 못 차리게 되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빨간 깃발은 답메일을 보내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경우에만 꼽아놓는다.
빨간 깃발을 꼽을 때도 대충 일의 중요도와 시간, 마감일에 맞춰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필요하긴 하다. 대략 답을 보내야 하는 마감일을 먼저 고려하고, 그다음에는 정보처리에 걸리는 시간과 일의 중요도로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5. 빨간 깃발을 처리할 때 새로운 이메일은 무시한다.
정보를 모으고 정리해야 할 때, 문서를 작성해야 할 때, 문서에 대한 피드백을 줘야 할 때 등등. 빨간 깃발을 해결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새로운 메일 알람 따위는 다 무시한다 (그 메일이 내가 지금 해결하고 있는 것과 관련된 게 아닌 이상). 안 그러면 진도가 나가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달력에 일부러 'Email' 혹은 'No meeting'하는 식으로 아예 시간을 잡아 놓는 사람들도 있다. 미팅 없는 시간을 확보해서 일에만 열중하기 위해서다 (이 정도면 회의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하시겠죠;;;)
6. 처리한 빨간 깃발은 얼른 뽑는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처리해서 넘겼다면 일단 빨간 깃발은 얼른 뽑는다. 그 일이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해도 걱정할 건 없다. 어차피 다음 단계와 관련된 메일은 또 오기 마련이니까.
휴가에서 돌아온 지 또 2주일. 아직도 매일의 메일이 어느 정도 쌓이긴 하지만 웬만한 이메일은 다 '읽었'습니다. 물론 빨간 깃발들이 엄청나게 쌓이긴 했지만, 뭐 내일은 또 새로운 하루니까요 하하하...
이메일과의 전투를 치르시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처리하시나요.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