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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Oct 30. 2020

이 남자, 나한테 관심 있는 걸까요?

그래도 이런 사람은 조심하자

"그 사람 혹시 저한테 관심 있는 걸까요?"

"언니.. 언니는 영국 남자 좋아한 적 있어요?"

"외국 남자랑 연애하면 어때요?"


헷갈린다는 표정으로, 심각한 목소리로, 혹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녀들이 내게 묻곤 했다. 내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왜?"하고 되물으면 그녀들은 수줍게, 때론 어색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렇게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상황에 대한 파악보다 그녀들의 마음을 먼저 알 수 있게 되어 대답하기가 조금은 편해지곤 했으니까. 예를 들어, 상황을 보면 전혀 가망 없는 관계지만 그녀가 이미 상대방에게 마음이 푹 빠져 있을 때. 그러면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한들 듣지 않거나 도리어 애꿎게 화살을 나한테 날리기도 하니, 그저 되돌릴 수 없는 길로 가지 않도록 적절히 말을 해주는 게 좋고. 반대로 상대방은 넘쳐나는 연애감정을 가지고 있어 보여도 그걸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영 껄끄럽다면 대화의 초점도 관계를 피하는 쪽으로 맞추게 된다.


외국에 오래 나와있으면 당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현지인이나 같이 유학하면서 만나는 외국인들이 많다. 유학을 아예 애인/배우자와 함께 와서 시작했거나, 아니면 한국에 두고 온 애인에 대한 감정이 아주 절절해서 장거리와 시차 따위 가뿐히 무시하고 연애를 이어나가는 것도 아니라면, 당연히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그 파란 눈의 남자, 혹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그 금발의 사람에게 끌리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면 또 궁금할 수도 있을 거다.  


'저 사람, 진짜 나한테 관심 있어서 그러는 건가? 어떻게 알지? 어떻게 믿지? 우리 썸 타는 건가? 아니면 사귀는 건가?' 등등


한국은 연애의 시작이 꽤 확실한 편이다. 예를 들어, 좋아한다는 낌새가 있고 분명히 서로 데이트 비슷한 걸 몇 번 했더라도, 한국에서는 누가 '고백'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귀자)을 하거나 '선언' (우리 오늘부터 1일, 너 내 남자/여자 친구)을 하지 않으면 연애관계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웬만한 경우, 한국에서는 '좋아하기 때문에 사귄다'라는 법칙이 대부분 적용되기 때문에, 연애 관계에 들어선 뒤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게 그다지 놀라울 일도 아니고. 


그런데 적어도 영국에서는 그런 확실한 선이 잘 없다. "We are seeing each other", "we are going out together"라는 말은 대충 우리 데이트하는 사이라는 걸 말해주지만 그렇다고, 둘이 사귄다는 걸 뜻하진 않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서로를 지인들에게 'boy/girl friend'라고 소개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뜻하지도 않는다. 영국인과 연애를 시작한 캐나다인 친구가 몇 달이 지나서야 그가 날 사랑 (love)한다고 말했다며 들떴던 것처럼, 연애의 시작과 사랑을 확인하는 것에는 종종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물론 둘 다 서로 모르는 짝사랑만 하고 있다가 마침내 감정을 확인하고 연애를 시작한 거라면 그 시차가 아주 적겠지만.


관계의 시작점도 가지각색이라서, 그들에게 '너희 언제부터 1일이야?'하고 묻는다면 대답을 딱히 못하는 커플들이 대다수일 거다. 그런 까닭에 여기서 한국처럼 ‘100일 기념일' 하고 챙기는 커플은 거의 없다. 위에서 말한 이유로 연애가 사랑과 이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솔직히 그런 연애의 시작을 따지는 게 별로 의미 없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다가오는 저 푸른 눈의 남자가 진심인지 아닌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연애를 하든지 말든지 하지.


그래서 한번 재미 삼아 적어봤다. 저 남자가 너에게 관심 있는지는 확실히 알려 줄 수 없지만, 조심해야 할 종류의 남자는 대충 알려줄 수 있으니.


이런 남자 조심하렴.




1. 가볍게 말을 흘리거나 스킨십을 시도하지만, 그뿐인 타입


어학연수 온 그녀가 말했다.  어학연수원에는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꽤 있고 그런 까닭에 학생들과 종종 사귀는 걸로도 유명한 젊고 활달한 영국인 선생이 있다고. 최근에 그 선생은 자신과 같은 반에 있던 브라질에서 온 여학생과 사귀었었는데, 그 여학생이 자기 나라로 돌아간 뒤 자기에게 이런저런 친근함을 표하는 일이 많아졌단다. 그녀 역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선생이 자주 하는 말 때문에 아 마음이 심란하다는 거였다.


"너도 곧 돌아간다니 너무 아쉽다. 이제야 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너 가고 나면 정말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예전 (브라질) 여자 친구는 자기 멋대로 하는 게 많아서 너무 힘들었는데, 널 만나면 정말 편하다. 가능하면 좀 더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말을 내게 전하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도 들떠있어서, 차마 '그 상습범은 내다 버리렴'이라고 하질 못하고, 좀 더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다. 네 한국에서의 계획을 생각해라, 정말 인연이라면 어차피 한국에 가도 이어질 수 있다, 등등.. 그녀의 로맨스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 같아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상습범 때문에 비자 연장까지 고민하는 걸 두고 볼 순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같은 말을 쓰는데도 그 사람의 진짜 의중을 파악하는 건 좀 어렵다. 거기에 사용하는 말에, 문화까지 달라져 버리면 그 말 뒤에 숨은 게 진짜 꿀인지 똥인지 알기는 더 힘들어진다. 그렇게 말로 의중을 파악하는 게 힘들다면 그 말을 하는 상황이나 행동을 보자. 


둘만 있을 때, 혹은 술이 좀 들어갔을 때는 저렇게 꿀 떨어지는 말과 눈빛을 보내면서 개인적으로는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정작 자기 얘기를 잘하지는 않고, 농담 혹은 다른 이들에 관한 걸로 말의 여백을 채운다.


그러다가 관계가 진전되면서 (보통 육체관계로) 자주 보고 만나고 밥 먹고 집에도 가고 그런 사이가 되어서도 정작 태도에는 별 변화가 없다. 무엇보다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다. 


이쯤 되면 감이 올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 잘 모르겠다면 그 사람이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소개하는지 보면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데이트 비슷한 걸 하다가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 너를 'Girl friend'라고 하는 대신, 'My student/ friend/ colleague' 혹은 'She's from my school/ we work together/ we live close by/ we go to the same gym' 뭐 그런 식으로 소개하고 마친다면, 안타깝게도 그(녀)와 너는 (아직은) 사귀는 사이가 아니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2. 내가 '동양인'이라 좋은 남자 


대학 동아리 활동 중에 유달리 내게 친절하고 잘 대해주던 영국 남자가 있었다. 영국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던 동아리에서 동양인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건 인도 여자분과 나뿐이었는데, 그런 그의 호의가 마냥 좋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건 뭐랄까.. 그저 친근함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거북한 태도 때문이었다. 


일단 만남의 시작부터 그 남자는 내게 두 손을 합장한 체 꾸벅하고 인사했다. 그리고 첫 대화에서 그는 내게 일본인 여자 친구를 사귄 적이 있다고 밝혔고, 동양 여자는 이래서 좋다며 칭찬했다. 술을 마시면서는 내 까만 머리카락이 맘에 든다고 했고, 심지어 동양인 여자의 피부는 정말 부드럽고 좋은 것 같다며 한번 만져도 되겠냐는 소리까지 했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지만 대충 일본과 중국 어디일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고, 동양의 예의 바름과 조용함, 뭐 하여간 볼 때마다 다 좋다고 얘기하면서 다가오는데, 솔직히 들을 때마다 난 도리어 더 멀어지고 싶어 졌다. 


그러다 결국 술자리에서 그 남자가 역시나 머리카락 타령을 하다가 불쑥 얼굴을 들이대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날 따라 나온 그 인도 여자분이 작게 웃으며 그랬다.


 "He didn't mean anything bad - He just has Asian fever"


즉, 동양인 여자에 대한 동경이나 환상을 품고 있는 남자란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왜 그의 친절이 불편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나를 보는 눈빛이 나라는 사람과 소통하고 있다기보다, 신기한 인형 보는 듯했던 거다. 


혼자 여행을 다녀본 여자라면 아마 한 두 번은 그런 남자 꼭 만나봤을 거다. 그들은 동양인의 특징인 까만 머리카락, 눈동자, 작은 손발, 속쌍꺼풀 진 눈 등을 칭찬하며 다가오거나, 좀 가까워진 후에도 착하다, 예의가 바르다, 이해심이 많다, 수줍음이 많다, 등등 내 실제 성격과 좀 다른 칭찬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British girls are too fat and loud'라고 같은 나라 여자들을 깍아내리는 발언을 하면서 'I like Asian girls because... '하는 말을 종종 하기도 한다.


그것도 사람 취향이니 그러다가 정말 인연 만나서 잘되면 좋겠지만... 그런 남자의 환상을 자신에 대한 순수한 관심으로 받아들이는 건 위험하다. 그리고 진짜 관계가 진전되려면, 먼저 남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동양 여자에 대한 환상 등을 버리고 여자를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런 면을 가진 남자를 여럿 본 결과, 대부분 여러 동양 여자를 만나고 헤어지다가, 정말 그런 스테레오 타입의 동양인 여자를 만나 정착하더라. 하긴 정착이라도 하면 다행이지, 최악은 결혼까지 하고서도 다른 동양 여자에게 들이대는 남자였지만. 


3. 동양인, 혹은 동양 문화를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태도를 가진 남자


위의 케이스와 정반대의 경우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남자를 만나나 싶은데.. 이런 남자 만나는 여자들 좀 봤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부분을 무시하려 하거나,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브라이튼에서 알게 된 일본 여자인 친구 I는 영국인 남자 친구와 동거 중이었는데.. 그 남자는 쌀이나 동양식 면으로 된 요리 자체를 다 싫어했다. 젓가락질은 우습다고 시도하려 하지도 않았고, 그녀가 마시는 녹차나 다른 일본 음식들을 보곤 그런 걸 어떻게 먹냐며 핀잔을 줬으며, 심지어 그녀의 걷는 모습이 웃긴다고 대놓고 조롱을 하거나, 그녀의 일본어 억양이 섞인 영어를 비웃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와 함께 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어떻게든 영국에 머물고 싶어 했고, 어학원을 여러 군데 등록하면서 비자를 몇 번이고 연장하다가 그 생활이 지치자 어쩌다 술자리에서 만나게 된 그 남자와 관계를 맺기로 한 거다. 그의 친구가 비슷한 태도로 내게 아주 지분거렸기 때문에 결국 그녀와의 연락도 끊어져 버렸지만, 지금은 그녀가 그녀를 이해하는 남자 만나 그 어색하게 감추려던 웃음 말고 진짜로 웃으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쨌건, 우리가 영국인 혹은 다른 외국인에 대한 모든 걸 좋아할 수 없듯이 상대방이 한국에 대한 모든 걸 좋아할 거라고 기대할 순 없다 (무조건 다 좋다,라고 하면 그것도 위의 경우처럼 의심스럽다). 그런데 그냥 '그건 나와 안 맞는 거 같다, 내 취향이 아니다,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하는 것과, '야만적이다, 웃긴다, 어이없다, 말도 안 되는 짓이다', 등등의 말을 하며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건 절대적으로 다르다. 


그런 말을 듣고 반박했을 때, 네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흘려보낸다면 그런 관계 미리 잘라내는 게 가장 좋긴 하다. 그 외 그 사람이 '넌 어차피 한국에 안 사니까 너와 상관없는 거 아니냐, 네가 그런 한국인 같은 모습만 안 보이면 된다' 등등의 말을 한다면, 거기에 대해서 '그래 그렇지'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 확실히 말해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내 인생의 몇 년을 보낸 곳이다, 그런 문화, 환경 같은 게 지금의 내 모습을 형성시킨 중요한 부분인데, 그건 아무리 내가 영국에 오래 살아도 잘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그러니 그런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건 무례하고 내게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조심해 주면 좋겠다, 등등.. 그런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도 콧방귀를 뀌며, 도리어 무시하거나 짜증 내는 태도를 보인다면, 바로 아웃시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사람 사이에 존중을 빼면 도대체 뭐가 남는가.


물론 그렇다고 한국에 대해 안 좋은 말 하는 걸 다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잘못된 태도나 방식을 봤을 때, 같이 얘기하고, 설명하고, 이해하고, 뭐 그런 게 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드는 거니까.  그렇지만, 무조건 영국이 한국보다 선진국이라서 한국건 안 좋은 거다, 라는 생각으로 움츠러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하고 있는 건 사람대 사람의 연애지, 국력 겨루기가 아니니까. 


4. 그 외...


내 말을 존중해주지 않는 남자, 성의가 없는 남자, 스킨십이나 육체적 관계에서도 내 의견/기분/상태보다 자신 내키는 대로만 하는 남자, 등등...


특히, 육체적 관계에서 때로 '외국 - 서양 - 남자들은 개방적이니까', 하면서 스킨십에 대한 걸 무척 관대하게 받아들이려는 분들이 있는 걸 봤는데.. 대체적으로 이곳 문화가 섹스 등에 대해 개방적이긴 하지만 피임이라든지 그런 부분을 지키는 것 역시 철저하다. 그게 아니라면 그 사람의 기본 성교육 유무를 심각하게 따져봐야 하고. 그건 문화를 떠나서 그냥 그 사람이 무관심하거나 아주 이기적이라는 소리니까. 


그리고 결국은 내 몸이다. 문화 차이고 뭐고 간에 내가 싫으면 거절하는 게 당연하다. 내 몸은 내 소속이지 특정 나라나 문화 소속이 아니지 않은가. 




읽어보면 알겠지만, 어떻게 보면 좀 뻔하고 당연한 소릴 한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갑자기 안갯속으로 뛰어든 것 마냥 헤매는 경우들이 있다. 한국에서라면 저런 남자들 웬만하면 알아서 필터링했을 텐데 말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분명 신선하고 기분 좋은 경험이다. 그러다가 정말 자기 인연 만날 수도 있지만, 스스로도 아는 '아닌 걸'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세뇌시키진 않았으면 좋겠다. 국적, 언어, 인종 같은 거 다 제외하고, 정말 솔직하게 '내가 소중히 대해지는가, 저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는가, 난 행복한가, '등등의 기본적 질문만 던져봐도 대략 답은 나올 테니까. 


그리고 하나 더. 가끔씩 외국 나온 걸 기회삼아 작정하고 즐기다 가는 분들 (남녀 불구) 계시는데.. '어차피 여기선 아는 사람도 없는데..', '한국 가서 그런 적 없었다고 하면 되지', 등등의 생각을 가지시는 분들... 그러지 말자. 세상 생각보다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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