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토리 Oct 30. 2020

우리 국제 연애해요!

이런 편견들

남편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 같이 들어갔을 때다.


둘이 번화가에서 데이트하다가 옷을 보러 한 가게에 들어갔다. 남편은 내가 옷을 고르는 동안 내 가방과 재킷, 자기 재킷을 손에 들고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마침내 살 것을 결정한 뒤 눈짓을 보내자 들고 있던 옷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습에 근처에 모여있던 점원들 몇몇이 수선스레 반응했다.


"어머, 진짜 자상하다"

"한국 남자들은 사달라고 눈치를 줘야 사주는데.."


정작 남편이 주려 던 건 내 지갑이었는데. 이 남자를 처음 본 그분들이 어디서 그런 단정적인 결과를 도출해 낸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처음 들어본 소리도 아니었다.


한국인이 아닌 남자들과 연애를 하게 되면 의외로 사람들 머릿속에 박힌 고정관념들이 꽤 많은 걸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외국 남자 (특히 유럽/북미 계열 백인 남자)는 로맨틱하다, 자상하다'라는 말부터, '외국 남자는 가정적이고 집안일도 잘 도와준다', '언어와 문화 차이 때문에 많이 싸울 거다', '현지인 남자와 연애하니 먹고살 걱정은 없겠다', '시집살이 같은 거 고민할 필요 없어 좋겠다' 등등.


그래서 한번 생각해봤다. 한국인이 아닌 남자와 연애하는 것. 뭐가 다르고 비슷한지.




1. 외국 남자가 한국 남자보다 자상하고 로맨틱하다?


외국 남자와 한국 남자를 비교하는 건... 뭐랄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국민성'같은 걸 먼저 살펴봐야 하지 않나 싶다. 예를 들면, 언젠가 여성 매거진에서 영국 남자와 미국 남자의 데이트 방식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소개팅 후 미국 남자는 맘에 들면 바로 연락처를 묻고 차후 연락도 빨리 오는 편이지만, 영국 남자는 설사 상대가 마음에 들었다 하더라도 다음 연락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뭐 이런 거였다. 그건 일적으로 만나지 않는 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바로 손을 내밀며 "Hi, I'm John"하고 말하는 미국인과, 한동안 날씨와 다른 화제들에 대해 얘기한 후에야 마지막에 "By the way, my name is John"하고 소개하는 영국인의 근본적인 성향 차이 같은 거다.


한국 남자들은 여전히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유교 사상 때문인지, ‘남자는 과묵해야 한다’ 그런 사회적 인식 때문인지 대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반면 유럽 남자들은 - 이것도 사람마다 편차야 있지만,  예를 들어 영국인들이 스페인, 이탈리아 사람에 비해 훨씬 무뚝뚝하다든지 - 대체로 감정 표현이 자연스럽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쓰다듬는다든지, 굿바이 키스를 한다든지, 꽃을 보내거나 사준다던지, 직접 요리를 해서 식사를 대접해준다든지, 등등.


아마도 그런 행동들이 표현이 어색한 한국 남자들과 비교되어 대체로 ‘로맨틱하다, 자상하다’라는 식으로 보이는 것 같은데,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유럽 남자들은 연애에 올인하진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좋아하는 여자에게 선물을 해주고, 식사를 대접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하고, 그런 건 당연한 일일 지 모르지만, 자신의 취향도 아닌 커플룩을 여자 친구와 맞춰 입을 생각도 없고, 아무리 여자 친구가 사달라고 졸라도 자신의 형편이나 능력에서 벗어난 선물을 사주는 일은 거의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그들과의 연애는 대체로 ‘적당하다’. 서로의 삶, 시간, 일을 지키는 한에서 관심 있는 사람과 만나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 물론 예외야 어디든 있겠지만.


그에 비해 한국 남자들은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꽤 헌신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랑하는 여자가 원하는 선물을 사주기 위해 단기 알바를 뛰기도 하고, 자신의 취향도 적당히 타협해 자신이 연애 중임을 알리는 걸 주저하지 않고, 때론 연애가 일 혹은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 걸 방치할 때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로맨틱하다는 수식어가 한국 남자에게 굳이 따라붙지 않는 건 역시 표현의 문제인가? 잘 모르겠다.


2. 외국 남자는 가정적이다?


이것 역시 ‘가정적'이라는 것에 대한 관점에 따라 다르지 않나 싶다. 한국 남자들은 유교 사상 때문인지 2년을 저당 잡히는 군대생활 때문인지 대체로 조직 생활에 익숙하고 책임감이 강한 한편, 가정일에는 어색하다. 지금은 한국도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육아는 여자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출산 이후 이어지는 경력단절 등으로 남자에 비해 더 많은 수의 여자들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남자는 어떻게든 사회생활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로 인해 가정에 소홀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거기다 많은 수가 결혼 전까지 부모와 살기 때문에 집안일에 노출될 빈도수도 적고, 결혼을 해서도 ‘내 부모를 포함한 내 가족’과 ‘아내와 새로 만든 내 가족’에 대한 뚜렷한 선을 잘 긋지 못해 어영부영 예전에 ‘자식’으로 하던 행동 그대로를 유지하기도 한다.


반면, 유럽에서는 대부분 빨리 독립하는 편인 데다가,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많은 까닭에 '일하는 남자', '집안일하는 여자'에 대한 뚜렷한 구분도 별로 없고, '부모가 어떤 생각을 하든 내 삶은 내 삶'이라고 대체로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저녁 6시면 다들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까닭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지만 집에 일찍 오고, 집안일하는 걸 어색해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굳이 집안일에 능통하거나 가정적이라고 볼 순 없다. 진짜로 집안일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이들은 일주일에 설거지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나 요리는 무슨, 모든 건 레디 밀(ready meal)로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요리사였던 남자도 데이트할 때를 제외하면 집에서 요리를 안했다). 그리고 집에 저녁 7시부터 같이 있는다고 다들 가정적인 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티브이를 보면서 맥주만 축내거나, 게임만 하거나, 아니며 정말 가족들과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느냐, 하는 건 정말 개인 나름이니까.


3. 외국 남자라서 언어나 문화 차이로 많이 싸운다?


내 생각에 연애를 해서 결혼에까지 이른 국제커플 같은 경우는, 웬만한 한국/한국인 커플보다 사이가 더 돈독하지 않을까 싶다. 연애 초기 때는 물론 다르다. 모든 연인들이 그렇듯,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의견이 달라 다투거나 싸우는 건 다 비슷하지만, 상대방이 외국인이고 그 관계가 진지하게 지속되면, 정작 당사자들은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보통의 연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주위 친구/가족들에게 상담을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국제커플 같은 경우는 그런 의논을 할 상대가 거의 없다. '외국인'이라는 변수 때문에 공감을 이끌어 내기도 힘들고, 아무리 바뀌고 있다고 해도 한국사회의 분위기상 외국인 남자 친구의 정체를 대놓고 드러내면서 뭐라 고민을 말하기도 좀 껄끄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국제커플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 둘이 조절을 해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려면 당연히 언어에 대한 장벽이 없어야 하고. 영어라고 생각했을 때,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얼마큼 자세히 확실하게 설명하고 그 뜻을 전달시킬 수 있느냐 하는 거다. 그런 까닭에 국제커플인 경우, 서로에게 가장 잘 통하는 '공용어'가 대부분 있다. 국제 연애를 통해 결혼한 친구들만 봐도, 독일/튀니지아인인 커플과 영국/프랑스인 커플은 프랑스어, 독일/스페인 커플은 독일어, 벨기에/스페인 커플은 영어, 영국/중국인 커플은 중국어,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었으니까. 나 역시 스페인 남편을 두고 있지만 공용어는 영어인 것처럼.  


문화 차이는 좀 더 민감한 문제인데... 가장 문제가 적은 커플은 아무래도 둘 다 서로의 문화에 익숙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오래 살았고 한국어에 익숙하며, 한국에서 계속 살아도 문제가 없는 미국인 남자와 연애 중인 미국에서 유학하고 왔거나 잦은 미국 여행의 경험이 있는 한국인 라든지. 

 

다음으로 그나마 다툼이 적은 커플은 둘 중 한 명이 상대방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다. 즉, 영국인 남자와 연애하고 있는 한국인 여자라고 했을 때, 연애 전부터 이미 여자가 영국에 와봤거나 영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혹시 결혼하게 된다 하더라도 영국에 와서 살 준비가 된 상태인 경우, 설사 남자가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하더라도 여자 쪽에서 두 문화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있기 때문에 다툼이 생겨도 조절이 가능할 수 있다.


세 번째 경우는, 둘 다 서로의 문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공통적인 어떤 이해 분야를 가지고 있는 경우. 즉, 나 같은 경우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스페인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었고, 남편 역시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지만, 둘 다 오랜 타지 생활로 서로의 나라/문화에서 파생되는 성향이 거의 희석되었기에 그걸로 부딪힐 일이 그다지 많진 않았다. 물론 문화 차이를 떠나 성격 차이로 다투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마지막으로 가장 싸울 일이 많은 커플은 서로의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떠나서 한쪽이 상대방의 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그럼 어떻게 연애하나 싶겠지만 사람 관계야 모르는 거니까. 어쨌건 만나면서도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없고, 대화도 잘 되지 않는 경우, 거기에 둘 중 한 명이라도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고, 필요성도 못 느낀다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긴 힘들겠지.


4. 현지인 남자와 연애하니 생계 걱정은 없겠다?


아주 부끄럽게도 어학연수로 영국에 처음 왔을 때 나도 저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살인적으로 높은 물가, 반대로 궁핍한 내 경제 사정, 눈칫밥 주는 호스트 맘, 등등. 진짜 내가 이렇게 배 곪고 눈치 보고 서러우려고 지구의 반대편까지 날아온 건가 싶어 정말 우울했을 때, 펍에서 만난 남자가 내게 흔쾌히 사준 술 한잔과 감자칩에 순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오래 살아보면 콩깍지가 저절로 벗겨지게 된다. 여기도 당연히 계급이 나눠지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도, 상대적으로 궁핍한 사람도 있으니까. 즉, 유럽 남자라고 해서 다 정원이 딸린 저택을 소유하고 근사한 차를 몰고 다니며 주말마다 승마를 하거나 해외여행을 다니는 건 아니란 말이다. 대신 장담할 수 있는 건 그런 경제적 상황 때문에 관계를 시작하게 되면 그 불균형 때문에 갑을 관계에 빠질 수 있다는 것.


5. 외국인 남자랑 결혼하면 시집살이 걱정 안 해서 좋겠다?


연애하다가 그 남자의 가족들을 처음 만났을 때, 혹은 집에 처음 초대받았을 때, 대부분은 손님으로서의 대접을 받는다. 즉, 초대한 쪽에서 요리부터 대접과 정리까지 모든 걸 담당하는데, 이 룰은 초대받아 온 사람이 자신의 친구든, 직장동료든, 이웃이든, 내 아이의 친구나 이성친구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거기다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도 성인이 된 이상 자식의 연애에 딱히 간섭도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우리 이제 가족인데”하는 말로 급격히 가까워지려 하는 남자 친구의 가족/ 시댁과 비교했을 때 좀 더 쿨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정말 개인차가 크다. 한국에서도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시댁 가서 일하느라 후유증이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명절은 휴가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외국도 비슷하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당일에만 가족끼리 모여 점심 먹고 선물 주고받은 후 헤어지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12월 20일 전후부터 모여서 새해까지 복작대며 보내는 가족이 있는 것처럼.


위에서 말한 것처럼 초대받는 입장에서는 굳이 요리를 돕거나 설거지를 해야 하거나 그런 부담이 적은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사람들을 내가 초대해야 하는 경우 도움을 못 받는다는 말도 된다. 즉, 음식 준비부터 대접, 뒷정리, 티타임, 간식 등등 모든 걸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주위에는 크리스마스 때가 다가오면 손님 대접을 준비하느라 9월/10월부터 준비하며 스트레스받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느긋하게 자기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아침을 즐기고 점심때 시댁이나 자기 부모 혹은 형제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만찬에 갔다가 남은 휴가를 충전의 기회로 삼는 친구도 있다.


거기다 선물. 생일, 명절 때마다 용돈을 챙기는 문화가 한국에 있다면, 영국에는 선물을 챙기는 문화가 있다. 이것도 가족마다 달라서, 어떤 가족들은 생일 때는 식사를 같이 하는 대신 선물을 챙기지 않기도 하고, 어떤 가족들은 생일 때마다 다양성을 추구해서 한 사람당 여러 선물을 준비하기도 한다. 거기다 크리스마스는 어떠한가. 대부분 선물을 하나만 준비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골머리를 앓는다. 그런 까닭에 주위 영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10월부터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하더라. 지출 정도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결론을 말하자면, 외국 남자와 연애를 한다고, 결혼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족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는 거다. 그러니 미리미리 만나보고 파악해 두는 게 좋다. 괜히 나중에 깜짝 선물을 받고 싶지 않다면.




사람 사는 건 어딜 가나 비슷하다. 국제연애라고 별로 다를 것도, 좋을 것도 없고, 결국에는 둘이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면서 살아가느냐의 문제다.


대신 '이럴 거다'라는 환상에 대한 거품은 걷어내고 현실적으로 관계를 바라보자. 아무리 생긴 게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쓰는 언어가 달라도 상대방도 너와 같은 고민과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더구나 한국에서는 관계가 틀어져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있고, 도망칠 곳도 있다지만, 외국에서는 연애에서 실패했다고 당장 공항부터 갈 순 없지 않은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