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토리 Oct 30. 2020

동거해도 될까요?

혼전 동거의 경험을 말해주마

나는 결혼 전에 두 번의 동거를 했다.


아마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동거 경험에 대해 오픈하는 글을 쓰지 못했을 것 같지만, 뭐 난 이제 애 둘 딸린 아줌마란 타이틀을 달았으니 아주 부담 없이 혼전동거를 고민하는 네게 글을 써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적어봤다 - 시작부터 그 후유증까지.




1. 동거의 시작


유학생활을 시작하고 박사 과정 2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영국인 남자 친구가 생겼다.


당시 난 케임브리지 북쪽에 살았고, 남자 친구는 남쪽에 살았는데, 그래서 Formal Hall이라든지 행사, 파티, 술자리가 있다가 시간이 늦어지면 취한 상태로 자전거를 타고 집까지 가는 대신 그냥 가까운 사람 방에서 자고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 친구와 내 숙소 계약 기간 만료 시기가 겹치면서 처음으로 “동거할까”하는 말이 나왔다. 좀 더 정확히는 “같이 집을 구할까?”에 가까웠지만.


만약 한국이었다면, 혹은 누군가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던지 했다면 집을 나와서 이성과 동거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을 텐데, 어차피 메뚜기처럼 학기가 바뀔 때마다 숙소를 바꾸던 유학 생활이라 그다지 크게 다가오진 않았다. 솔직히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것과 마음껏 쓸 수 있는 주방이 생긴다는 것, 더 이상 빨래방에 가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더 들떴다고 할까. 


그 들뜸도 잠시 집을 막상 구하려니 부동산은 물론 세금, 전기세 등등 신경 쓸게 생각보다 많아 잠깐 후회하기도 했다. 다행히 남자 친구가 이미 자취해 본 경험이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렇게 우린 가구 등이 다 구비된 (fully furnished) 방 2개짜리 flat을 얻어 첫 번째 동거를 시작했다.


두 번째 동거는 지금의 남편과 연애할 때  했는데, 처음에는 남편의 집 하우스 메이트가 나가는 바람에 빈자리를 채우러 갔다가 재계약 기간에 둘만 따로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둘만의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는 이렇게 둘 다 따로 집을 렌트해서 살다가 합치거나, 부모네 집에서 혹은 하우스 셰어를 하던 사람이 혼자 살고 있는 사람 집으로 들어가거나, 둘 다 집을 소유한 경우 한 명의 집은 월세로 내주고 다른 사람 집으로 들어가거나, 둘 다 팔거나 월세를 주고 새로운 집으로 들어가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2. 동거 전에 미리 생각하고 의논할 것들


일단 동거할 때는 둘 다 비슷한 마음일 때 실패가 적다. 그 실패라는 게 꼭 관계의 끝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랄까. 관계가 한쪽으로 기운 상태에서 함께 살기 시작하면 관계에서 감정적이든 물질적이든 을인 사람이 갑인 사람 눈치를 보고, 가정부처럼 일을 도맡아 하고, 나중에는 집에 가는 것 자체가 고문처럼 느껴지는 그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거다. 친구나 그냥 남이면 한판 대놓고 싸우거나 그냥 딴 집 알아서 나가면 되는데, 이건 연인관계가 얽히다 보니 스스로 행복하지 않더라도 그게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헷갈릴 때도 많으니까.  


그래서 차라리 동거를 하기 전에 모든 걸 하나하나 따져서 생각해보고 의논한 후, 결정하는 게 좋다. 집세 등 금전문제는 어떻게 할 건지, 상대방은 어떤 하루의 패턴으로 사는지 (기상/취침시간 등), 특별히 따지는 건 없는지 (예, 옷이 아무 데나 널려있는 건 못 본다. 설거지는 밥 먹자마자 해야 한다, 잘 때는 완전히 어두워야 한다, 등등) 그런 거에 대해 둘이 얘길 많이 해보는 거다.


특히 내가 상대방의 집으로 들어가는 경우, 그런 건 좀 더 확실히 따져야 한다. 내가 들어가는 대신 집세나 생활비 얼마를 내겠다, 그런데 난 꼭 저녁마다 목욕을 해야 한다, 등 이런 식으로 내가 얹혀살러 가는 게 아니라 같이 살러 간다는 걸 둘 모두에게 상기시키는 거다.


3. 같이 산다는 것


친구든 타인이든 같이 자취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차라리 별 감정 없는 남이면 내 공간, 네 공간 나눠 쓸 수라도 있지만, 연인이다 보니 공간 구분이 잘 없어지기 때문에, 혹시 싸우기라도 하거나 혼자 생각할 공간이 필요할 때 그런 개인 공간이 없다는 건 꽤 힘들니까.

 

특히 영국처럼 저녁이면 모든 가게 등이 문을 닫아서 펍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경우, 괜히 밖에 나가서 거리를 서성이는 게 더 무서운 경우, 아니면 날씨가 아주 엉망이라 나갈 엄두도 나지 않는 경우, 근처에 막 찾아가도 되는 친구가 살지 않는 경우 등등 싸우고 나면 정말 힘들다. 그래서 이런 얘기하는 게 좀 웃기긴 하지만, 미리 싸웠을 때 우린 이렇게 풀자 하는 타협을 해두거나, 비상 탈출 공간을 미리 알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다. 아니면 화장실 밖에 갈 곳이 없는 순간도 올 수 있으니.


4. 동거가 결혼은 아니다


가능하면 동거할 때는 신혼부부 흉내 내려하려 말고, 연애와 하우스 셰어의 중간 정도를 유지하라고 하고 싶다. 연인이라는 달달함으로 같이 요리해서 밥 먹고, 주말에는 아침 커피 향기와 함께 오래 침대에서 늦장 부린다던지, 잠옷 상태로 하루 종일 같이 영화를 보며 논다는지, 그런 연인 사이에서만 가능한 건 누리되, 다른 현실적인 부분은 하우스 셰어 하듯 적당한 선에서 나누라는 거다.


즉, 원래 일찍 일어나는 타입도 아니면서, 괜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챙긴다던지, 요리 솜씨를 뽐내기 위해 매일 다양한 음식들을 만든다던지, 등등 원래 안 하던 짓을 동거한다고 괜히 해보려 하지 말란 말이다. 나도 첫 동거 때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요리는 물론 청소도 매일 하면서 부지런을 떨었는데, 얼마 가지 못해 성질이 폭발했다. 나도 쉬고 싶은데 왜 내 집에서 쉬지도 못하나 싶고, 왜 나만 혼자 집안일에 신경 쓰는지 짜증도 나고, 남자 친구에게 너 내가 하는 일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거 아니냐고 싸움도 걸고.


그런데 당시 남자 친구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 줄 알았다는 거다.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하나 보다, 매일 청소하는 타입인가 보다, 그럼 난 어지르지나 말자, 뭐 그런 식으로 자기 역시 내 방식에 맞추기 위해 나름의 적응과 배려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왜 진작 대화를 하지 않았는지 속으로 한탄한 뒤,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일상생활의 조정을 마쳤다. 그러고 나니 스트레스가 줄어든 건 말할 것도 없고. 그러고 나니 두 번째 동거 때는 좀 더 체계적으로 집안일과 생활 패턴을 분배했다.  


마지막으로 금전관계는 철저히 해야 한다. 부부는 경제 공동체라도 되지만, 동거인 연애관계는 엄연히 아직 남인 관계니까.


5. 동거를 하면 사람이 보이고 관계의 미래가 보인다.


보통 연애를 할 때, 가능하면 이런저런 모습을 다 보라고 하지 않는가. 특히 만취했을 때의 모습이라든지. 그런데 정말 같이 살아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제대로 된다. 연애 때야 얼마든지 꾸미고 포장할 수 있지만, 그런 식으로 집에서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몇 안되니까.


매일 같이 생활하면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나눠하다 보면, 그 사람의 여러 가지 면을 다 발견할 수 있는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재발견도 가능하다. 그런 일상의 면들이 잘 맞아떨어지면 좋은 거고, 아니면 그것 때문에 갈수록 정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동거를 좀 해보면 내가 받아줄 수 있는 한계점 같은 걸 찾을 수도 있게 된다.


나 같은 경우, 첫 번째 동거를 통해 알게 된 한계점이라면, ‘말뿐인 사람은 정말 싫다'였다. 예를 들면, 언제까지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그걸 남자 친구가 자기가 하겠다고 하더니 계속 미루면서 하지 않는 거다. 그래서 언제 할 거냐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미안, 오늘 바빠서” 그러다가, 나중에는 “왜 꼭 내가 해야 돼?” 이런 소릴 했다. 차라리 못할 거 같으니 대신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으면 그렇게까지 열이 받진 않았을 텐데, 이게 반복되니 나중에는 진짜 불신이 쌓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서서히 관계는 끝이 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말 나랑 딱 맞다, 라는 관계가 얼마나 될지, 아니 있기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같이 살다 보면 이 관계가 어디로 갈지 대략 감이 온다. 동거에서 보이는 모습이 결혼했을 때 볼 수 있는 현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특히 앞에서 말한 한계점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조율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면 그 관계는 대략 결론 난 거니까.


특히 동거하다가 ‘정말 얘랑 뭐가 안 맞는 거 같아, 자꾸 싸우네, 우리 왜 이러지, 권태기인가’, 등등의 생각이 들면 그건 ‘사랑이 식어서' 그런 거라기보다, 그 사람과 정말 사는 방식이 안 맞아서 그런 경우가 많은 거니, 어떻게든 다시 사랑을 불태워보겠다고 와인에 촛불 같은 거 준비하는 것보다 차라리 냉정하게 관계를 돌아보는 게 나을지도.  


6. 동거의 끝은 때로 복잡하고 후유증은 크다 


동거에서 가장 안 좋은 점이라면 바로 헤어질 때다. 물론 이혼할 때도 그렇겠지만, 이혼할 때는 뭐랄까, 법적 절차 같은 게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이혼 소리 나올 정도면 가족들까지 다 아는 상황일 때가 많으니 임시로 예전에 살던 집이나 가족들 집으로 대피도 가능하고, 신세 한탄도 해볼 수 있고, 상대방에 대한 욕도 할 수 있고. 그런데 동거는 철저하게 두 사람이 알아서 끝을 지어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동거를 쉬쉬하는 경향이 있거나, 친한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라면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도 어디 가서 뭐라고 속도 못 푼다.  


가장 큰 문제는 누가 나가느냐, 나가면 어딜 가느냐, 하는 건데, 대충 뭐라 딱 정해지진 않았지만 규칙 같은 규칙이 있긴 하다. 예를 들어, 보증금과 월세를 내면 월세를 내는 사람이 따로 집을 구해 나간다, 한 사람이 원래 살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 경우 들어온 사람이 다시 나간다, 둘이 같이 반반 부담으로 동거를 시작한 경우 먼저 '헤어지자'라고 말한 사람이 나간다, 혹은 그 관계를 더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나간다, 등등.


그러면 남아 있는 사람이 집세를 다 감당해야 하느냐, 그게 아니고 여전히 집세를 반씩 낸다면 나간 사람은 새로 방을 구해야 하니 돈이 두배로 나가는 거 아니냐, 등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는데, 그건 사람마다 관계마다 다르다. 어쨌건 관계가 파탄 났는데 현실적인 문제까지 뒤엉켜 아주 시궁창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다는 것만 알아두길..


이런 물질적인 것들 외에 동거의 진정한 단점은 바로 정신적인 후유증이 크다는 거다. 특히 같이 살던 집에 남게 되는 사람일 경우 이별의 타격이 더 크게 다가온다. 떠난 사람이야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 시작하니 어찌어찌 마음 정리라도 한다지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한 사람이 나가버린 빈 공간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건 지옥 같은 경험이니까.


그냥 연애하다 헤어져도 같이 자주 갔던 카페나 공원 앞을 지나치며 가슴이 아파 운다는데, 같이 살다 헤어지면 이건 뭐... 혼자 이별을 곱씹을 공간조차 박탈당한 것과 같다. 집에서 밥을 먹어도, 심지어 이를 닦을 때에도 그 사람의 빈자리가 확 느껴질 테니. 만약 내 집에 상대방이 들어와 살다가 그 사람을 보는 것조차 끔찍해져서 내가 헤어지자고 한 후 쫒아내 버린 거라면 뭐 그나마 후유증이 적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앞서 말했듯이 보통 헤어지자고 말한 사람이 나가기 때문에, 남겨진 사람은 이별을 당함과 동시에 이별의 잔재들도 다 끌어안아야 하니까 상처가 배가 된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인도 빨리 다른 집을 찾아 이사 가는 거지만, 이사가 그리 쉬운 일인가.


그래서 동거하다 헤어지는 게 그냥 연애하다 헤어지는 것보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훨씬 타격이 크다.




난 꼭 결혼 전에 동거를 해봐야 한다, 하는 편도 아니고, 결혼이 전제가 아니라면 동거는 절대 안 된다, 하는 편도 아니지만, 만약 동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딱 두 가지는 미리 생각했으면 좋겠다.


첫째. 동거를 시작하기 전 미리 ‘비상시 대비책'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좋다. 이 관계가 틀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다, 라는 것에 대한 대비랄까. 당장 나가야 할 상황이 왔을 때 갈 수 있는 친한 친구 집이라든가, 그게 아니면 호텔에서 며칠이라도 머물 수 있는 돈이라든가. 그런 것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두면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아도 현실에 휘둘리는 일을 조금은 막을 수 있다.  


둘째. 동거를 정말 주위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시작하는 건 좀 위험하다. 최소한 믿을 만한 친구 한 사람이라도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살고 있다, 정도는 알아두는 게 안전(!)하달까. 그런 경우가 절대 없길 바라지만, 어떤 이유로든 동거를 시작했는데 막상 그게 악몽 같은 상황으로 변할 수도 있으니까. 특히 원하지 않는데도 같이 산다는 이유로 성적 관계를 강요당하거나, 물리적 폭력이든 언어폭력이든 그런 경우가 한 번이라도 발생했을 경우, 너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함과 동시에 위에서 말한 비상시 대비책을 쓰자.  


정말 마지막으로.. 만약 둘 다 동거로만 관계가 이어져도 상관없다, 라는 입장이 아니라면, 특히 동거를 시작한 한쪽이 ‘결론은 결혼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반면 상대방은 1년이 넘어도 별 반응이 없다면,  ‘이렇게 몇 년 같이 살았는데 내년에는 결혼하자고 하겠지' 하는 기대 따윈 버리라고 하고 싶다. 차라리 딱 까놓고, '우리 이만큼 같이 살았는데 결혼하는 건 어때?'라고 묻든지.


그런 의미에서 '이 사람이다'하는 확신이나 '이 사람에게 한번 투자해보고 싶다'하는 열정이 없다면, 시간과 물질 투자가 요구되는 동거는 가급적 피하라고 하고 싶긴 하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