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토리 Oct 30. 2020

해외 취업은 어떻게 하나요?

다양한 길을 알려주마 

유학 생활의 끝이 보일 때가 되면 대충 두 가지 생각이 들 거다.


‘아, 드디어 끝이구나’

‘이제 뭘 하지?’


난 솔직히 내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잘 몰라서 늘 고민하는 타입이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지만 좋아해서라기 보다 그것밖에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 외에 따로 방과 후 활동이나 사교육을 받은 적도 없어서 내게 다른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발견할 기회도 별로 없었다.


대외적으로 그냥 무난한 사람의 행색을 하고 살아왔는데, 난 그게 불만이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이 그런 무던한 회색이라는 걸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고, 그래서 어떻게든 색을 섞으려고 발버둥 친 게 내 이십 대였다. 대학 때는 공대 전공 외에 교직 이수도 했고, 복수전공을 시도했다가 웹디자인 공부를 했다가, 보석 감정사의 길을 갔다가, 수화를 배우고, 수영을 배우고, 프랑스어를 배우고, 피아노나 기타를 배우는 등 마치 십 대 시절의 받지 못했던 배움의 한을 풀려는 것처럼 분주히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딱히 다채로워지진 않았고, 아예 도화지를 바꿀 생각으로 유학을 결심했다. 유학을 하면서도 다양한 색을 얻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되었는데, 예를 들어 전공 공부 외에 두 개의 동아리 활동, 조정 (rowing) 클럽, 대학원 전체 학생회 임원, 대학 라디오 방송, 벨리댄스, 대학 매거진 편집 디자인 등 아주 시간을 쪼개 만큼 잡다했다.


그렇게 후회 없이 지냈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박사를 마칠 때가 다가오니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할까.


처음에는 케임브리지 박사 졸업생들이 으레 그렇듯 학회에 남는 방법을 찾아봤고, 동시에 금융, 컨설팅 쪽도 알아봤다. 그러다가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고, 그다음에는 대학에 임시 교수로 들어갔다가, 전공을 바꿔 관련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일했고, 육아 휴직 후 정교수로 다른 대학에 갔다가, 지금은 영국 중앙 정부 기관에서 일한다. 사기업, 대학, 공공기관으로 이직을 여러 번 한 거다.


그래서 준비해봤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놓는 영국에서 직장 찾는 법.




준비 단계


유학 후 취업준비를 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건 아무래도 비자 문제다. 그 나라에 Post study visa처럼 유학 후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임시 취업 비자 같은 걸 주는 게 아니라면 외국인이 직장을 구하는 방법은 한정적이다. 입사지원서를 낼 때 대부분 바로 처음에 ‘이 나라에서 일을 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 있기 때문에, 비자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바로 서류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특히 요즘처럼 이민 문제가 민감한 시기에는 갈수록 외국인이 현지에 남아있을 수 있는 방법도 줄어들고 있고. 그럼 아예 방법이 없느냐, 그건 아니다.


영국의 예를 들자면, 가장 좋은 방법은 대형 국제 회사에 취업하는 거고, 그 외에 돈이 아주 많아서 사업자 비자를 받거나, 영국인과 결혼하거나, 영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피붙이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대신 계속 배움의 길을 가며 학생비자를 갱신하거나. 그런데 읽기만 해도 알겠지만, 그렇게 만만하고 쉬운 길은 잘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당장 닥쳤을 때 해결할 문제들은 아니니 미리미리 준비해두자는 말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말하자면, 석사는 사실 그냥 입관 문 같은 거였고 박사를 하면서 숨을 좀 돌릴 여유가 있었다. 영국의 석사는 1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학부 졸업생들과 취업전선에서 경쟁하기에 별다른 메리트를 받진 못한다. 거기다 요즘에는 학부/석사 통합과정도 많이 나오니까. 박사 때는 실험실 연구를 도와주거나, 학부생들을 가르치고, 시험 감독, 채점, 조교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이전에 말한 것처럼 이렇게 대학에서 일을 하고 돈을 받게 되면, 대학이 알아서 national insurance number도 만들어주고, 박사과정 3년 동안 세금을 환급받거나 그에 관련된 조언을 대학에 요청할 수도 있기 때문에 편하다.


무엇보다 이렇게 일을 하면 일단 영국 세금 시스템에 내 정보가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나중에 취업할 때도, 영주권을 신청하거나 다른 비자를 신청할 때도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러니 장기 계획을 생각한다면 어설프게 현금으로 돈 받으면서 일할 생각보다, 차라리 대학 내의 일자리나 회사의 단기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세금 시스템에 발 담글 준비를 하는 게 낫다는 것.


취업의 기회들


유학생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대학에서 오래 머무는 게 가장 안전하긴 하다. 계약직으로 강의 전담 강사를 하면서 교수 채용 공고를 노리거나, 예전부터 일하던 실험실 정식 조교가 되거나, 학부에서 이미 진행 중이거나 시작단계에 있는 프로젝트의 연구원이 되거나, 아니면 본인 스스로 열심히 프로젝트 기획서를 써서 연구비용을 받던가.


만약 대학에 오래 머물 수 없다면, 혹은 대학에 남고 싶지 않다면, 다음 취업 타깃은 대형 국제회사다. 컨설팅, 금융권, 국제 기업, 대형 제조 업체 등등. 컨설팅이나 금융권의 장점은 일단 국적/전공 관련 없이 사람을 뽑기 때문에 자기 전공이 상업성과 떨어지더라도 기회가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이 쪽으로 간 친구들의 전공은 물리, 수학, 우주 공학 전공부터 음악, 역사, 언어까지 아주 다양했으니까. 대신 단점이라면, 아주 경쟁적이고 스펙, 대학 이름을 본다는 거. 대신 뽑히면 비자고 뭐고 알아서 다 해결해준다.


이 쪽을 타깃으로 한다면 준비해야 할 게 좀 많다. 컨설팅 회사 같은 경우는 Case study, Group work 등 한국의 대기업에서도 종종 한다는 그런 입사 시험을 본다. 나 같은 경우, 물리/수학 시험을 친 적도 있고, 그룹별로 여러 명이 모여 모의 토론을 하거나, 주어진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해결점을 도출하거나, 신청자들에게 같은 시나리오 다른 입장을 주고 협상을 하라고 한다든지 등등 여러 가지 경우를 겪어 봤다. 그 후 또 면접을 봐야 하고. 그리고 일 년에 많아야 두 번 정도 공채 기간이 있으니 시기도 잘 맞춰야 한다.


그 외 국제 기업이나 대형 제조업체 같은 곳은 채용공고가 난 곳과 전공이 일단 맞아야 한다. 대신 여기도 일단 합격하면 비자 같은 걸 해결해주기도 하는데, 역시 스펙이나 대학 이름을 보고, 외국인을 뽑을 때 그 외국인의 모국에 있는 지사로 발령하기 위해 뽑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같은 동양인이라도 중국, 홍콩, 싱가포르 쪽은 수요가 많은데 한국인이라는 사실 자체는 잘 도움이 안 된달까. 중국어도 유창하게 잘한다면 모르겠지만. 이런 회사들은 대부분 Graduate scheme이라고 대학을 막 졸업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학부/석사 졸업생이라면 이 기회를 노려봐도 좋다.


이것도 아니라면, 영국에 기반을 둔 한국 회사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한국계 회사의 해외지점은 거의 현지 사람을 쓰거나 한국인도 본사에서 엄중히 고른 사람을 보내거나 하기 때문에 바로 입사하는 건 좀 힘들 수 있지만,  영국에 아예 기반을 둔 한국 회사, 예를 들어 물품 배달업체라든지, 식료품 수출입 업체라든지, 구모가 큰 한국 슈퍼마켓, 음식점 체인이라든지, 이런 쪽이라면 기회가 있을 수 있다. 물론 비자 신청을 해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회사라는 전제 아래서.


반대로 이미 한국의 외국계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유학을 왔거나, 유학을 생각하고 있다면, 유학을 가려고 하는 나라에 그 회사의 지사 혹은 본사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괜찮다. 그렇게 교환 학생처럼 지사를 바꿔서 일할 수 있다면 비자나 취업에 대한 걱정 자체를 안 해도 되니까. 회사에서 학비도 내준다고 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고. 물론 이러려면 현재 있는 직장에서의 평판이라든지 성과가 좋아야겠지만.


대학에 취업하기


영국 대학에서의 일자리는 대략 두 가지 길로 나눠진다. 연구의 길을 가거나 강의도 하는 교수의 길로 가거나.


연구원 (Researcher)은 보통 연구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계약직인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 기간에 따라 최소 1년에서 2-3년 정도. 아주 가끔 5년짜리가 나오기도 하는데 대충 2년을 평균이라고 보면 된다. 계약직이긴 하지만 대부분 프로젝트가 하나 끝나도 다른 연구로 갈아타거나 하면서 계약을 연장하며 연구실에 소속되는 경우가 많긴 하다. 다만, 그것도 연구실 나름이라서 만약 다른 프로젝트가 없거나 연구 비용이 줄어들면 일순위로 잘리는 것도 연구원이다. 영국에서는 박사를 막 마친 학생들이 가장 많이 가는 루트이기도 하다.


연구원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연구만 주로 한다면, 교수 (lecturer 등)는 연구는 물론 강의를 해야 한다. Module leader가 되면 강의 계획서를 짜는 건 물론, 시험 문제도 직접 내야 하고, 과제 채점, 학생들 강의 외 지도 등도 담당한다. 그 외 논문 지도도 해야 하고, Course leader가 되면 한 과목이 아닌 학과/학부 과정 전체를 디자인해야 하고, 자기가 담당한 학부/학과 학생들 지도, 추천서 써주기, 면담하기, 학생들 성적 총 관리, 최종 논문 지도교수 섭외, 배정, 입학 설명회 준비, 졸업식 준비 등, 강의와 연구를 제외한 일들이 아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나 같은 경우 전공과목 4개 담당에 170명이 넘는 학부 학생들 course leader까지 했었는데, 아주 시간과 영혼, 건강을 갈아 넣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건 대학마다 다르긴 한데, Russell Group처럼 상위권에 있는 대학일수록 교수들에게 연구 업적을 많이 요구하는 한편 강의 전담 강사를 붙여주거나 학생들의 과제 지도나 채점을 도와주는 조교들을 많이 채용하는 편이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교수들에게 연구보다 강의의 질이나 학생들의 긍정적 피드백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럼 어떻게 취업할 수 있느냐.


위에서 말했듯 그나마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이 유학한 대학에 남는 거다. 물론 그러려면 유학생활 동안 밑밥을 아주 열심히 깔아 둬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보통 대학 홈페이지나 jobs.ac.uk 같은 곳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대학 내 시스템을 이용해서 지원할 때는 시스템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개인정보, 이력서의 내용들을 일일이 시스템에 적어 넣은 뒤 따로 이력서, 자기소개서 (cover letter) 혹은 연구 계획서, 강의 계획서, 학회지 논문 목록 등을 따로 적어서 올린다. 1차 서류심사가 끝나고 나면 인터뷰에 초대받는데, 인터뷰에는 한 자리를 두고 보통 3-5명 정도가 선택된다. 대체로 2차 인터뷰로 결정이 나기도 하지만 - 특히 연구원일 경우 - 강의를 해야 하는 강사나 교수 같은 경우 맛보기 강의를 준비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맛보기 강의는 대략 10분에서 많아야 질문을 포함한 30분 정도인데, 이럴 때는 주제를 미리 던져준다. 그리고 시간이 잡히면 대학에서는 메일을 교수진들에게 단체로 돌린다. 이런 자리를 두고 맛보기 강의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있을 예정이니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달라, 뭐 이런 식으로. 그런 까닭에 맛보기 강의에는 적으면 10명 안팎, 많으면 30명 정도 되는 사람이 오기도 하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둘 것.


인터뷰는 대충 2-3명 정도의 면접관이 참여하는데 교수 자리라면 그중 한 명은 너의 보스, 혹은 보스의 보스가 될 사람, 한 명은 너의 전공 관련 교수, 또 한 명은 인사과에서 오기도 하고, 아니면 드물게 다른 학과, 혹은 아예 학장 같은 높은 분일 때도 있다. 연구직 관련 인터뷰에는 프로젝트에 따라 2명에서 많게는 다섯 명 정도 참가하기도 한다. 프로젝트가 한 학과에 집중되어 있으면 너의 보스가 될 사람 (프로젝트 총책임자)와 공정성을 위해 대학의 누군가가 참가하는 게 일반적이고, 여러 학과가 연계된 프로젝트라면 그만큼 면접관의 수도 늘어난다.


공무원 되기


영국에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따로 국가시험을 칠 필요가 없다. 영국 정부기관의 모든 공고는 대부분 www.civilservicejobs.service.gov.uk를 통해 알 수 있는데, 대신 유의해야 할 점은 지원자격 부분. 크게 영국 정부기관에는 영국인, 유럽인, 영국인이나 유럽인의 가족이 지원할 수 있지만, 어떤 자리는 영국인만 지원 가능하니 미리 확인하고 지원하자. (반대로 말하면 영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영국인, 유럽인과 결혼한 게 아니라면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말. Brexit이 확고히 결정된 지금 - 2020년 - 은 유럽인이라도 EU settlement scheme을 통해 settled status를 얻어야 한다)


일단 지원 자격이 되고 원하는 공고를 봤다면 위에서 말한 홈페이지에 등록한 뒤 마음에 드는 자리가 나면 지원하면 된다. 이 과정이 꽤나 까다로운데... 일단 적어야 할게 많고 스펙보다는 얼마나 규정에 잘 맞춰서 스스로를 증명했는가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여기도 공무원의 경쟁률은 상당해서 어떤 자리는 한자리를 두고 적게는 30, 많게는 30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리기도 한다.




이건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거라 네 전공 분야의 취업 전선과 맞는 부분이 있을 수도, 아예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 거다. 대신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준비를 철저히 할수록 실패율도 적어진다는 것.


그 외 이력서는 하나 완벽하게 만들어놓으면 여러 곳에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Cover letter는 하나 만들어 놓고 우려먹을 생각을 안 하는 게 좋다. 커버레터는 개인의 경험과 그 자리와 관련된 내용을 반씩 절묘하게 섞고, 가능하면 Essential criteria에 적힌 단어, 문장을 재사용하는 게 좋다. 면접관들이 서류를 심사할 때 처음에는 양식에 맞는지를 보고 (대학은 이력서와 논문 목록 쪽을 먼저 본다), 다음에는 대충 서류에 원하는 내용이 담겨있는지 보고, 그 후에야 자세히 읽어보기 때문에, 그들이 찾고 있는 단어를 재사용하면 두 번째 과정에서 눈에 띄기 훨씬 유리하기 때문.


그리고 마지막.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지자. "Thank you"로 시작했다가, "Unfortunately/ we are sorry that.."으로 시작하는 메일을 받는 건 꽤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런 메일에 매번 심장이 찔리면 나중에는 스스로가 못 견딘다. 에너지가 좀 남아있다면 피드백을 요청하고 (보통 1차 때 떨어지면 피드백을 안 해준다는 원칙을 가진 곳도 많긴 하지만), 아니라면 그냥 다음으로 넘어가자. 거절에는 의도적으로 무던해지고, 우울해질 때 쓸 에너지를 아꼈다가 1-2차 합격 통보가 오면 최종 심사까지 갈 수 있는 추진력으로 쓸 수 있도록.


취업은 네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과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의 교집합을 찾는 과정이니 필요 이상으로 주눅 들지도 말고!  

이전 13화 취업에 대한 고민은 가능하면 유학 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