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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Apr 15. 2021

이직 준비는 늘 힘들다

그걸 성공한 뒤에는 잊고 살아서 그렇지..

예전에 쓴 "평생직장은 없다"라는 글에서 그런 말을 했었다. 평생 직장이란 건 없으니 가능하면 징검다리 건너는 기분으로 뛰어다니라고.


그런데 최근에 메뚜기가 되어 또 뛸 준비를 하는 동안 미처 말하지 못했던 걸 떠올렸다. 이직 준비가 얼마나 사람 피 말리고 기 빨리게 하는 짓인지. 그 과정이 말처럼 ‘뛰는’ 준비만 하는게 아니라 몇번이고 탈피하는 과정도 포함된다는 걸 (물론 단번에 성공하면 최고겠지만)


영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취업 준비 혹은 이직 준비를 꽤 많이 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4번의 이직에 성공한 거지만 그 동안 실패했던 경험은 그것보다 몇 십배는 많다. 가장 괴로웠던 시간은 박사 과정을 마무리 지으면서 첫 취업을 걱정할 때와 육아 휴직이 영구 휴직이 될까봐 두려워 새 일자리를 찾을 때.


박사 과정 마지막에는 이제 더 할 공부도 없으니 그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과 비자 문제 때문에 초조했었다.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넣고 자기 소개서를 쓰고, 인터뷰를 하고, 마지막에 “Thank you very much for..”로 시작했다가 바로 뒷 문장쯤에 “Unfortunately..”하고 이어지는 불합격 통지서/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가슴에 누가 추를 하나씩 올려 놓는 그 기분.


그러다 혼자 있는 시간이 되거나 밤이 되면 잠 못 이루고 뒤척일 때도 많았다. 그 때 그렇게 적지 말았어야 했나, 이걸 쓸걸 그랬나, 이렇게 답했어야 했나, 하는 사소한 되새김부터 자존감을 날카롭게 잘라내고 무너뜨리는 그런 생각들까지.. 또 어느날에는 이걸 지원하면 뭐하나 어차피 떨어질거, 하는 부정적인 생각부터 들면서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지는 무력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일을 하면서 이직 준비를 하는게 조금 더 쉬웠냐고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이직 준비가 취업 준비보다 나은건 실패해도 현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즉, 통장에는 여전히 돈이 들어오니까) 경제적 부담이 덜 했기는 했지만, 과정 자체가 쉬웠던 건 아니다.


일단 본업인 일이 있으니 따로 시간을 내서 이직 준비를 해야 하는데, 본업인 일 외에 다른 의무들도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대체로 시간이 부족하고 그래서 몸이 피곤했다 (퇴근한 뒤 육아와 집안일까지 마친 뒤 쉬는 대신 이직 준비를 했으니까). 그러다 또 불합격 통지를 여러번 받으면 그 좌절감이 현업에도 영향을 줬다.


‘알고 보면 나란 사람 그렇게 능력 있는게 아닌가. 혹시 지금 이 일과 직장이 내 최대 한계치인가.’


그러면 갑자기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이 갑갑하게 느껴지는 거다. 비유를 하자면, 새장에 들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언제든 뛰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난 갇혀 있는게 아니라며 느긋하게 있다가, 막상 나갈려고 하니 문을 열 수 없어 그제야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그 새장이 내 맘에 꼭 드는 곳이라면 어차피 나갈려는 시도도 하지 않을테니 해당사항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혹은 나처럼 오래 한 곳에 머물러서 익숙해지는 상황을 지겨워하는 사람이라면 그 패닉 같은 좌절감이 어떤 건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거다.


그리고 요즘 내가 살짝 그런 상황에 빠져 있다.




지금 일이 싫은가, 하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이미 거쳐온 사기업, 학회와 비교했을 때 영국에서의 공무원 생활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업무량이 많아져서 가끔은 ‘Wellbeing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럼 일을 줄여주든가’ 하고 욕이 나올 때도 있지만, 그 욕을 정제해서 들려주면 일단 공무원 사회에서는 듣는 척이라도 하니 그건 좋다 (학회나 사기업에서는 그런 거 없다. ‘일이 많은 데 뭐, 그럼 프로젝트를 빨리 끝내든가/ 학기 끝날 때까지 기다리든가’  그런 식이고, 학회에서도 학생들의 웰빙은 중요할 지언정 교수진들이 그걸 보장하기 위해 얼마나 자신들의 웰빙을 갈아넣는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으니까)


듣는 척에서 가끔 더 나가면 얼마나 실용성이 있는지 몰라도 일단 뭐라도 해주려는 시도라도 하니 좋다는 거다. 업무시간 조절도 자유로운 편이고, 육아 때문에 오후 2시에  퇴근한다고 해서 눈치주는 사람도 없으며, 차별적 혹은 모욕적 언사에 대한 제재로 확실해서 왠만하지 않는 이상 일적인 것 외의 것들로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은 훨씬 적다.


그럼 왜 이직을 하려고 하냐.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무원 시스템 내에서의 이직,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승진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 공무원 제도에서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따로 승진 제도라는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공무원 기관, 혹은 같은 조직이라도 다른 업무로의 이동을 원한다면, 일반 이직 준비와 비슷하게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 등을 준비해서 절차에 따라 지원해야 한다. 공고는 보통 외부인 (External - 그러나 내/외부인 모두 지원 가능) 혹은 내부인 (Internal - 보통 같은 조직내 속한 사람들만 대상)을 상대로 공시 되는데, 외부인 대상일 경우에는 말 그대로 공무원 출신 뿐 아닌 다른 업계 종사자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나도 그렇게 들어간거니까).


솔직히 지금 상황을 봤을 때 좀 이른 감이 없진 않다. 그런데 이번에 현재 조직에 억대 단위의 프로젝트가 하나 들어오면서 테스트 팀이 꾸려졌는데, 거기 속해 있다보니 욕심이 좀 났다. 덩달아 테스트 기간을 거쳐 본격적인 팀 구성이 시작되길래 승진을 하기 위한 적절한 기회라고 생각하긴 했고. 다만, 이직 준비를 막상 하려니 그 어마어마한 준비를 해야 할 일이 걱정되었고, 괜히 ‘내가 진짜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소심해져서 조금 더 오래 고민하긴 했다.


그 때 날 부추겨준게 코치와 멘토분들이었는데,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내게 뭐라고 했냐면,


“You are not deciding whether you should take that job or not, you are only deciding whether or not to apply for that job” (넌 그 일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게 아니라, 그 일에 지원하고 싶은 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Applying for a job also needs practice” (지원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내가 김칫국을 마셔도 아주 크게 마시고 있었구나 싶어서 일단 경험을 쌓는셈 치고 이곳 저곳에 지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대략 3주의 저녁 시간을 갈아넣어서 몇군데에 지원서를 넣고 나니, 홀가분하다는 생각도 잠시, 결과가 하나씩 나오면서 아주 감정의 널뛰기를 하고 있다.


처음 지원한 곳에서 서류전형에 떨어졌을 때는 ‘그래, 연습이었다’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서류 준비를 해서 넣은 두번 째 곳에서 서류전형 심사 통과 소식을 들었을 땐, ‘드디어!’하며 김칫국을 살짝 끓일 생각까지 했다. 면접을 보고 나서는 기분이 꽤 상쾌해서 이대로면 혹시? 하는 들뜬 생각에 잠겨 본격적인 ‘이직 성공 후’를 생각하다가 딱 3시간만에 그 생각을 내 기분과 함께 시궁창에 집어넣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다른 지원 마감 날짜가 다가와서, 꾸역꾸역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나, 하는 생각에 결심한 곳들까지 다 지원하긴 했는데... 솔직히 몸이 피곤한 것도 피곤한 거지만 정신이 피폐해져 간다.


이번에는 또 어떤 결과가 나올까. 또 안될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실망 대신 빠른 체념을 학습시키려다가, ‘혹시?’ 하는 희망고문에 휘둘리는 그런 마음이다.

그러다가 ‘다 떨어져도 원래 있던 자리로 오는 것 뿐인데, 뭐. 경험했다 치지 뭐’ 하고 마음을 미리 도닥이지만, 문제는 그 후에 닥칠 자괴감이라는 것쯤은 이젠 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 하지 않으면 변하는 건 없으니까, 변화에 대한 대가쯤으로 치부하면 좀 나으려나. 그래도 가능하면 좀 적게 내고 얻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건 도둑놈 심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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