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아이들의 운동 경기를 대하는 자세

마음 수양이 필요하다

by 민토리

일요일 오전 10시. 근처 마을에서 아이들 축구 경기가 열렸다.


10시지만 스페인의 6월답게 내리쬐는 햇빛. 동네 축구경기장이라지만 인조잔디가 쫙 깔린 그 웅장한 자태에 감탄했다. 입구에서 체온을 체크한 뒤 들어가니 바로 옆에 바(Bar)가 열려있다. 하긴 스페인에서 사람이 모이는 곳에 바가 없으면 안 되지.


관중석에는 이미 부모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이 포진해있었다. 두 마을 아이들의 경기이니 대충 부모들도 두 편으로 나눠져 있어 눈어림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 사람들 곁에 섞여 들었다.


보통 아이들의 축구 수업에는 부모들이 참가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경기들이 열리면 부모들의 친선모임 혹은 탐색 장소가 된다. 영국만큼은 아니지만 스페인에서도 대충 옷차림이나 행동으로 그 사람들의 배경을 유추할 수 있는데, 영국에선 워킹 클래스를 구분하기 더 쉬웠다면 스페인에서는 중상위층을 구분하기가 훨씬 쉽다.


남자는 폴로셔츠에 파스텔톤의 면 반바지, 여자 역시 비슷한 계열에 몸매가 잘 드러나지 않는 스마트 캐주얼에 해당하는 옷을 입고 있다던지. 당연히 문신은 없고. (아이들의 옷차림도 대충 비슷하다. 거기다 스페인 국기 색의 팔찌 같은 것도 차고 있으면 거의 백퍼다).


그리고 그룹에 그런 옷차림의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 사람들과의 교류 상황을 보고 그 동네나 학부모들의 분위기를 짐작하곤 한다.


어쨌든 그렇게 대충 스캔을 끝내고 나면 아이들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같은 팀에는 누가 나왔나, 아, 저 애가 그 애구나, 저 애 부모가 저 사람들이구나. 저 중에 우리 집 애가 제일 어리구나. 등등

그 뒤에는 다른 팀의 전력도 살펴본다. 저 팀보다 우리 쪽 팀 애들이 좀 더 크구나, 그런데도 연습하는 폼이 더 잡혀있는데? 저 팀에는 남자애들 밖에 없구나 등등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면 대충 견적이 나온다. 재미로 혹은 그냥 운동삼아 설렁설렁 뛰고 있는 아이와 나이/사이즈 상관없이 열성적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는 아이. 아이의 능력 혹은 열정과 상관없이 목소리를 높이며 훈수를 두기 시작하는 부모들과 잠자코 앉아있거나 폰을 보는 부모들. 그 와중에 어린 동생들은 옆에서 알아서 뛰어다니고 그 뒤를 엄마 혹은 조부모가 쫓아다닌다. 큰 아이들은 구석에 앉아 폰만 쳐다보고 있고...


경기에 참여하는 아이가 있는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경기장 안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중에 제 아이를 찾을 수밖에 없는데, 내 아이가 스타처럼 눈에 띄는, 알고 보니 운동 천재, 뭐 이런 시나리오라면 나도 좀 열을 내면서, 혹은 좀 우쭐한 마음으로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솔직히 보는 것도 나름의 정신 수양이 필요하다.


내 아이 혼자 있을 때는 모르던 걸 다른 아이들과 같이 있으니 당연히 비교되어 보이기 때문에.


왜 내 아이는 좀 더 열심히 뛰지 않는 걸까. 저 보다 작은 아이도 저렇게 죽자 사자 공을 잡으려고 매달리는데 왜 저 애는 저렇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방관자의 태도를 유지하는 거지? 재미가 없나? 혹시 너무 더운 걸까. 축구가 좀 안 맞나?

너무 의욕이 없는 거 아닌가. 아니, 그 비싼 돈 들여 일주일에 두 번씩 보내 놨더니 저런 기본적인 룰도 안 배우고 도대체 뭘 한 거지? 다음 학기에는 축구 말고 다른 운동을 시켜볼까....


그러다 아이가 하프타임을 맞춰 올라오면 바로 '왜 넌..'하고 말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 아이에게 물을 건네며 수고했다고 말한다. 괜찮냐고, 힘들진 않냐고, 잘하고 있다고 토닥거리면서.


이제껏 아이들은 수영, 럭비, 축구, 태권도, 테니스, 체조까지 다양한 운동 종목을 배웠고 배우고 있지만, 뭐 딱히 이런 경기 혹은 대회 같은 곳에서 난 놀라게 하게 할 만큼의 재주나 열성을 보이진 않았다.


원래 경쟁적인 데다가 어렸을 때 사교육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나는 그런 까닭에 경기가 끝나고 나면 복잡한 기분이 든다. 아이가 너무 태연하면 '아니 쟤는 왜 저렇게 욕심이 없어' 싶고, 아이가 안 좋은 결과에 대해 우울해하면 '그러게, 왜 노력을 안 하고!' 하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다가 꾹 누르는 거다.


직접 상황을 겪은 건 아이인데 내가 옆에서 훈수 두는 게 얼마나 배려 없는 짓인가 싶어서.

특히 결과에 대해 속상해하는 애더러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 그러게 좀 더 빨리 뛰지 그랬냐, 연습하랄 때 안 하고 뭐했냐, 그런 소릴 늘어놓으면 듣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짜증 나겠냔 말이다.


어쨌든 그런 이유들로 난 주말에 아이들 운동 경기에 따라가서 마음 수양만 잔뜩 하고 온다.


아이들은 집에 돌아와서 바로 수영장에 뛰어들어 노느라 축구 경기는 까맣게 잊었지만 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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