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posh 하게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

by 민토리

스페인은 날이 빨리 더워지기 때문에 초등학교는 6월부터 1시까지만 수업하다가 여름 방학을 20일 전후에 시작한다. 새 학기가 9월에 시작하니 대략 여름 방학이 2달 넘게 있는 셈이다.

7월부터는 한 달 동안 여름학교를 예약해뒀지만 그전까지 시간이 비는 까닭에 일찍 여름휴가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생긴 1주일 반의 휴가.


처음 5일은 남편을 제외하고 아이들만 데리고 바닷가 근처에 실외 수영장이 있는 apartamento (주방, 거실, 침실이 따로 있는 콘도 형식의 숙소)를 빌려서 갔다 왔고, 그다음에는 남편을 포함해서 같이 2박 3일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남편과 같이 가는 가족여행 때 예약을 잘못하는 바람에 졸지에 개인 수영장이 딸린 초호화 스위트룸에서 머물게 됐다.


스페인의 고성이 보이는 바로 아래 숲 속에 자리 잡은 분위기 좋은 호텔. 원래 수도원이었던 곳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도시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잘 가꿔진 정원, 그리고 그 정원의 가장 구석에 자리 잡은 통나무 집 같은 숙소. 방 두 개, 욕실 두 개, 거실을 지나면 고즈넉한 테라스가 나오고 잘 가꿔진 정원의 중앙에 수영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수영장을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 잡은 자쿠지 (jacuzzi)까지.


뭐 하나 나무랄 게 없는 최고의 숙소였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서면서 첫째 아이가 한 말.


“This is very posh, isn’t it?”


//Posh: Elegant or stylishly luxurious. 우아한, 화려한, 상류층의//


남편과 나는 눈짓을 교환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저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가능하면 이 숙소를 예약한 걸 깨닫고 미쳤다며 취소하기 위해 발버둥 치던 노력도 잊으려 하면서.


그리고 점심.

먹는 것에 있어서 스페인은 영국보다 실패가 적은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맛집을 찾아보고 가는 편인데, 그러다 가게 된 곳은 확실히 분위기가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보통 스페인의 레스토랑은 El menú del día 라고 해서 점심 세트가 있는 곳이 많은데 (전채, 메인, 후식, 음료까지 보통 포함된 메뉴, 싼 곳은 9유로에서 보통 15유로 전후, 비싼 곳은 20유로가 넘는다), 거긴 그런 메뉴가 없어서 일단 되는대로 전채 (aperitivo) 두 개, 메인 (plato principal) 세 개, 아이들 음료수, 와인을 시켰다.


구글 평점 5점 만점에 4.7을 자랑하는 곳답게 음식들은 맛이 있었고, 서비스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예를 들어, 와인이 좀 빈다 싶으면 시키기도 전에 와서 채워주고 간다던지. 물론 정중한 자세로 다가와 리필해줄 때 속으로 리필은 가격이 어떻게 되지,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Gracias’하고 답하면서… 마지막에 디저트에 커피까지 다 시켜 먹고, 계산을 하려 하니 아니나 다를까 100유로를 훌쩍 넘긴 계산서가 날아왔다;;


이번에도 남편과 나는 눈짓만 교환하고 태연하게 계산을 한 뒤 나왔다. 그리고 차를 향해 걸어오면서 둘 다 ‘와…’ 하며 웃기만 했다. 맛있긴 했지만, 그 가격이 어이없어서, 한 식사에 그만큼의 돈을 썼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둘 다 정신이 좀 나갔었나, 하는 생각도 하면서..


그런데 아이들이 우리 반응을 보고 묻는 거다. 왜 그러냐고. 그래서 점심이 너무 비싸서 그랬다,라고 말해줬더니, 얼마였냐, 하고 묻길래 총금액을 말해줬더니,


“That wasn’t much” (얼마 안 하네요)


하는 거다;; 그 태연한 반응에 실소가 나왔다. 도대체 돈의 가치를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싶어서. 아이들에게 매주 1파운드씩 용돈을 주는데, 방금 먹은 점심값이 너희의 일 년 치 용돈이다, 했더니 그제야 조용해졌다. 역시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에 빗대어야 이해도가 높아지는 건가, 싶으면서도 그렇게 말해놓고 나니 정말 미쳤었네,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랬는데, 첫째 아이가 뭔가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우리한테는 비싸지만 엄마 아빠한테는 비싼 게 아니잖아요”


하는 거다. 그 말에 다시 말문이 막혔다. 당연히 부모인 우리가 일주일에 1파운드씩 받는 아이들보다 돈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한 끼 식사에 100유로가 넘는 돈을 쓰고도 멀쩡할 대인배들은 아닌데 말이다. 아무리 경제관념이 아직 자리 잡히지 않은 아이들이라지만, 문득 저 아이들은 부모인 우릴 어떻게 보는 걸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 말을 생각하다가 자연스레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나 역시 아주 어릴 때는 부모님이 만능인 줄 알았다. 좁은 단칸방에 5인 가족이 몰려 살았던, 부유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뭐랄까 그런 미신 같은 믿음이 있었다. 이 정도는 부모님이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는 부모님이 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믿음 혹은 기대들.


물론 내 부모님에게 그런 반전은 없었고, 난 그 사실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일찍 깨달았다. 가난의 흔적들은 발에 치일 만큼 많았지만, 그 와중에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일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근사한 커피숍에 가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랐다가 입구에서 제지당한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경양식점에 들어갔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 아무것도 시키지 못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일이다.


사적인 공간 속에 숨겨져 있던 가난과 외부에서 확인시켜준 가난은 그 온도차가 너무도 생생해서 지금도 그때 일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커피숍과 경양식점의 위치가 어디였는지, 커피숍 입구에 서있던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 직원이 어떤 표정으로 우리를 막아섰는지, 경양식점에서 돈가스 하나가 얼마를 했는지까지.


그렇게 아등바등 가난의 옷을 입고 자란 나는 그 옷을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아도 될 만큼 자랐다. 아니, 도리어 내 아이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여행이 익숙한 아이들로 자라고 있다. 나는 반에서 나보다 못 가진 아이들을 세는 게 훨씬 빠른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내 아이들은 자신들보다 더 많은 걸 가진 아이들을 찾는 게 더 빠른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예전의 버릇이 어디 가는 건 아닌지, 가끔 그런 현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안함과 금전적 쪼잔함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유독스레 전기값이 비싼 스페인에서 겨울 한 달 전기값이 400유로가 나왔을 때라든지, 환율 변동 때문에 20파운드의 손해를 봤을 때라든지, 저번 주에 산 물건이 다른 가게에서 이번 주에 몇 유로 더 싸게 할인하는 걸 봤을 때라든지, 아이들과 저 장난감에게 2유로의 가치가 있는가를 놓고 다툴 때라든지, 등등.


그런 까닭에 나는 언제나 우아하고 귀품 있는 posh 한 인간은 되지 못하고, 대신 상황에 따라 차이가 극심한 인간이 되었다. 어디 가게에서는 내가 더럽게 돈이 없어 보였는지, 점원이 매의 눈으로 날 따라다니며 내가 상품을 보려고 할 때마다 초조하게, “Be careful, they are very expensive” 하며 눈치를 주는가 하면, 어디 레스토랑에서는 “Madam”소리를 들으며 정중히 모셔지는…


뭐 그런다고 내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조금은 우스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역시 돈지랄은 겉으로 보이게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가난이 남긴 그 강한 흔적에 대해 경의도 표하게 되는 그런 마음.


난 아무래도 매 삶의 순간이 posh 한 인간이 되긴 글러먹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가 가장 감사하는 건 그 ‘선택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다. 늘 그렇게 우아하게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인간은 될 수 없지만, 그런 순간이 찾아왔을 때 속으로는 쪼잔하게 계산을 하고 있더라도 일단 그 사치를 부릴 수는 있게 되었다는 것.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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