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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Jul 17. 2021

나이가 왜 궁금한데요?

무례하네요

현재 영국에서의 내 직업 상, 살고 있는 지역 상 내가 한국인을 어쩌다 만날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한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사람을 만날 기회가 두 번 있었다.


처음에는 운동 모임에 갔다가, 두 번째는 일을 통해서.


그렇게 한국 사람을 어쩌다 만나게 될 때는 일단 설레고 들뜬다. 이런 인연이 있나 싶고, 저 사람이 이곳에 있게 된 사정은 뭘까 궁금해지고, 한국말을 한다는 사실에 그냥 들뜨기도 한다.


상대방 역시 한국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장소에서 내가 나타다 보니, 으레 날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혹시 내가 한국인이라고 밝혀도 영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이민 몇 세대쯤일 거라 짐작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내가 한국말을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런 분들에게 반갑게,


“아뇨, 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에요.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와서 당연히 한국말도 할 줄 안답니다”


하고 인사하면, 대략 반응이 나눠진다. 반갑게 (간혹 신기하다는 눈빛을 곁들여서) 같이 인사해주시거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왜? 어쩌다가?”하는 질문을 던지시거나. 이 정도는 대충 예상 범위에 들어가니 보통 첫 만남의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늘 끊임없이 날 당황하게 하는 질문이 있는데.. 첫인사에 대뜸,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묻는 거다.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 다 있는데. 당신과 내가 친구도 아니고, 사적으로 친분 교류를 위해 만난 것도 아닌데.


최근의 두 경우 (웃기게도 한 번은 스페인에서 오프라인 상으로, 다른 한 번은 온라인상에서 일하던 중 영국 일터에서 겪었다) 상대방 한국인이 내게 이렇게 대뜸 나이를 물었다. 내가 좀 황당해하며 대답을 바로 하지 않자, 내가 말을 못 알아 들었다고 생각한 건지, 친절하게 두 분 다 스페인/영어로 되물어주는 집요함(!) 마저 보였다


“Cuantos años tienes?”

“How old are you?”


스페인의 경우는 아주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날 콕 집어 묻는 바람에 내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주위 사람들 (스페인 사람들) 마저 내가 그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한 건지 주위에서 스페인어로, 영어로 그 질문을 내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온갖 시선이 내게 쏟아지고, 결국 압박을 견디지 못한 내가 나이를 실토(!)하고 나자 질문을 한 당사자는,


“나보다 어리네”


한 마디만 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나만 쿨하게 넘어가지 못하고 꾸욱 속으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운동을 망쳐버렸지만.


그리고 최근 영국. 재택근무가 기본이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화상 회의를 하는데, 여러 정부기관의 사람들이 모인 미팅에 참가자 중 한 명의 초대로 한국인이 등장했다. 갑자기 만나게 된 한국인이 반가워,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과 함께 인사를 했는데, 또 그 사람이 나이를 묻는 거다.


영상 통화라 그래도 표정관리를 하며 “하하, 정말 한국 방식이네요”하고 우회적으로 ‘그러니 그만하시죠’라는 의미를 전했는데, 역시 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대신 또 영어로 되묻기 시작했다. 다른 영국인들이 모두 참여해서 우리의 대화를 생중계로 보고 듣고 있는 그 와중에.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래야 존칭을 할지 안 할지 알죠”


하며 굳이 나이를 들어야겠다는 의사는 전하는 거다.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불쾌했다.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우린 일적으로 처음 만난 관계다. 그런 경우 우린 어차피 서로 존칭을 써야 하는 관계 아닌가? 우리가 만난 게 한국이라 해도 다른 회사 사람을 처음 만나서,


"김 아무개 씨,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나보다 어리시네. 그럼 말 놓을게"


하진 않으니까 (혹시 요즘 한국 문화가 그렇게 바뀐 거라면 몰라도! 바뀌었나요, 여러분?)


그런데 왜 다짜고짜 영국에서, 그것도 일터에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 내 나이가 당신이 알아야 할 필수 정보라도 되는 것처럼 마구 물어되느냔 말이다. 당신의 정보도 아닌 내 개인 정보인데!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답도 대부분 얌체스럽다.


"아, 나보다 어리네(요)" (그래 놓고 자기 나이는 안 밝힘. 은근슬쩍 말 놓는 건 덤)


"아, 저보다 나이 많으시네요" (그렇다고 딱히 더 공손 해지지도 않음. 그리고 선심 쓰듯 "나이도 저보다 많으신데 말 편하게 하세요" 하고 덧붙임. 죄송하지만 전 나이불문 초면부터 남에게 반말하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그래, 그 사람이 딱히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질문이 아니란 걸 알겠다. 그냥 호기심이었거나, 자기도 눈치 못 챈 습관이거나, 혹은 자기는 그런 질문받아도 상관없으니 상대방도 그렇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것도 아니면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일 수도 있겠다. 혹은 영국 물이 너무 들어서 이런 질문 자체에 적응이 안된 거라든가 (솔직히 적응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게 질문 한  최근의 그분들은 나보다 훨씬 오래 외국 생활을 한 분들이었다).


이걸 '한국에서는 원래 그래요"하고 문화 차이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히 그런 거 한국에서만 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최소 나랑 두세 번은 만나본 다음에 하든지.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게 왜? 그냥 숫자잖아' 할 수도 있겠다. 혹은 내가 늙었다는 티를 내기 싫은 거라고 (e.g. 네가 스무 살이어도 그렇게 기분 나빠했을까?") 그래서 괜한 자격지심에 예민하게 구는 거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스물에도 누가 내 나이를 묻는 게 싫었다. 그 '숫자'로 자꾸만 사람들이 제멋대로 내 인생이 어떨 거라고 짐작하는 것도 (예, '스물이면 좋을 때다'), 내가 어때야 한다고 (예, '네가 벌써 xx살이야? 그럼 00 할 때 아냐?) 훈수 두는 것도 싫었으니까. 이런 내가 예민한 거라고 한다면... 그래요, 저 예민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묻지 마세요.




다시 말하지만 나도 타지에서 같은 한국 사람 만나면 반갑다. 설레고 그 사람이 궁금하다. 혹시 이러다 좋은 인연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김칫국까지 들이마시며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미소도 한번 더 짓고, 괜히 옷매무새도 한번 더 가다듬는다.


그런데 상대방이 이렇게 다짜고짜 나이를 물으며 들어오면 기분이 팍 상한다. 마치 집에 초대했더니, 손님이 들어오자마자 "이 집 얼마예요?" 하고 물은 것처럼.


그리고 왜 나이가 당신과 나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내가 처음 만난 낯선 타인이고, 난 당신이 나보다 어리다고 당신을 하대할 마음도 없고, 당신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딱히 더 존중하거나 혹은 내게 무례해도 되는 면죄부를 줄 마음도 없는데.


그러니 당신과 내가 병원 혹은 경찰서 같은 곳에서 스크린 바를 사이에 두고 만난 관계가 아니라면 제발 나이에 대한 궁금함은 접어주길. 뭐 나와의 관계 따위보다 당신 개인의 호기심이 더 중요하다면 물어도 된다. 어차피 그 관계 나도 필요 없고 나이도 말해주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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